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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에서 유럽 최초 피라미드 발굴 작업
유럽에서 처음으로 피라미드가 발견될 수 있을지를 놓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전세계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소코 마을에서는 14일 피라미드와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 2동이 파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이르는 3.8㎞의 터널파기 공사가 시작됐다고 보스니아 페나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보스니아의 탐험가인 세미르 오스마나기치는 이 지역에서 정밀 조사를 벌인 결과 땅속에 파묻혀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 2개가 원시적인 형태의 콘크리트 재질로 덮여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문명의 소산임이 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두 개의 건축물이 동서남북의 방위에 맞춰 정확히 정열돼 있으며 두 개의 건축물 중 하나는 태양을, 다른 하나는 달을 상징한다는 점 등에서 최근 멕시코에서 발견된 서기 200년경의 피라미드와 유사하다고 말해 학계를 흥분시켰다.
오스마나기치는 위성 사진을 이용한 연구 결과는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 건축물이 주변 물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냉각되는 것은 밀도의 차이 때문이며 이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비소코 역사유적 박물관의 세나드 호도비치 관장은 "이 피라미드들은 인간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누가 언제 이것을 건축했는지 대한 적절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건축물의 크기와 모양이 보스니아 중세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날 비소코 마을에는 120여명의 학자들과 보도진이 몰려 유럽 내 첫 피라미드 발굴 가능성에 집중적인 관심을 표명했으며, 조만간 이집트의 고고학자들도 탐사 작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발굴 작업은 총 200일이 소요되고 비용도 12만5천 유로 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주 후에는 첫 탐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권혁창 특파원 faith@yna.co.kr (부다페스트=연합뉴스)
기사등록 : 2006-04-15 오전 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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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 06-04-16 03:28
그랜드 캐년내의 피라밋이 있는 산악 지역이 1925년에 발견되어, "Arizona Gazette" 이라는 신문에 대서 특필되고, 그에 관련된 책도 발간되었으나, 얼마 못가서, 1926년 이후 지금까지, 이 얘기에 관한 한은 "잠잠"한 상태입니다.
이 지역은 물이 전혀 없고 굉장한 온도 때문에 특별 훈련을 받은 산악인이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미국 정부가 이 지역에서 무엇인가를 발굴해 낸 이후로 군대의 경비가 시작되었고,
그 지역 상공으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도 금지 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자, 위의 제 댓글의 포인트는, 본문의 글이 이 사이트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였습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번의 "거대한 우주선" 어쩌구 한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껏 글을 올리셨는데, 대놓고 당신 이런글 뭐하러 여기 올리냐고 무안 주는 성격이 못 됩니다. 아무리 익명이라도...
우리가 지금 그런 얘기 하기 위해 여기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근거 제시 할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독자를 위해 자료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이 곳의 독자층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지적해 주신 점은 감사하나, 여기서는 이 사이트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의 대화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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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중국 피라미드의 미스테리
내몽골, 만주, 북중국 지역에 가면 정체불명의 피라미드들이 수 없이 서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것은 100개이상이다. 평균 25 ~100 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다. 그 중에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과 맞먹는 300 m의 높이를 가진 것도 있다. ( 63 빌딩의 거의 2배 가까운 높이 )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보다 거의 2.3배 도 높고, 면적 또한 여의도보다 큰 거대한 건축물이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에 의해서이다. 그 전까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으로 알고 있었다.
1963년에,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들 거대한 피라미드를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img src="http://user.chollian.net/~bagsagong/haghe/pic/kinaf3.jpg">
그러나, 1973년에 실시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 수 천년 앞서 만든것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하며 중국에 의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씨는 피터 크랴샤 라는 친구와 함께 여행객으로 가장하고 평상시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의 시 관광부 장관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외국인 금지 구역으로 묶여있던 북중국 일대의 피라미드들을 몰래 사진으로 담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중국 공안당국은 촬영사실을 알아내고 하우스돌프씨와 친구를 검거하여 카메라 및 필름등을 압수하였으나, 다행히 촬영 직후 곧바로 모든 사진들을 독일로 보내, 서방세계에 북중국의 피라미드들을 알리는데 성공하였다. 세계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21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견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국과 유렵의 수 많은 서구의 고고학자들이 중국 정부에 발굴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과 압력을 수차례 보냈다. 처음에는
중국정부에서는 북중국 및 만주땅에는 옛날부터 야만민족과 기마민족들이 살았던 곳이라 진보된 문명이 없다고 말하고 , 독일학자의 사진과 보고서는 조작된것 이라고 발뺌 하였다. 하지만 야만민족이나 기마민족이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정교하고 웅장하여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img src="http://user.chollian.net/~bagsagong/haghe/pic/kinaf2.jpg">
아무튼, 그런식으로 계속 발뺌해오던 중국정부에서는, 계속되는 서구학자들의 발굴요구 및 서구 케이블 TV에서 몰래 중국에 잡입하여 카메라로 찍어 서구사회에 방송하는 노력에 힘입어 , 최근에 중국의 일부학자들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아직 발굴기술과 유물 보존기술이 부족해 다음세대로 그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는 말만 살짝 흘렸다고 한다. 그 발표와 함께 10년전부터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 자국학생에게 가르치고 전 세계에 고구려 역사가 중국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북중국의 피라미드들은 위로갈수록 낮아지고 계단식 형태의 모양을 띄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건축공법을 [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며,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고유의 건축공법이라는데 의의를 다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이 5,000년 전에 이 지역에서 이런 문명을 가진 집단은 누구일까?
중국인인가? 아니다. 중국인은 황하 유역에서 농사짓고 청동기 만들고 있었다. 몽골인인가? 아니다. 몽골인들은 당시 존재도 없었다. 거란족? 오환족? 이들은 완전 유목민으로서, 정주 문명과 관계없다. 여진족? 이들도 유목민이다. 5,000년 전에 이 지역에 관계된 국가나 민족은 누구인가? 모든 역사책에는, 이 지역에 단군 조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며 충분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 밝혀질 일이다. 아무튼, 고구려 및 고조선 등과의 연관성은 배제하더라도, 중국이 이 유적들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은 석연치 않은 일이다.
자료제공:신농
출처: 진주강씨 홈페이지(http://kangss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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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 역사
- 내몽골, 만주, 북중국 지역에 25~100m높이의 피라미드들100여기가 지난 1945년에 발견되어 중국은 진시황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1963년 발굴하던 중, 1973년 탄소 연대 측정결과 진시황보다 수 천년 앞선 것으로서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고구려 식 들여쌓기공법으로 축조된 점으로 비추어 고대 환국이나 배달국의 유물일 가능성이 보이자 중국 공안당국은 발굴을 중단, 비밀속에 감추어오고 있다 합니다.
- 또한 중국은 발해를 저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옛 선조들의 역사와 유물에 관심갖는 데에 날카로운 경계심을 보여오고 있습니다.
- 중국, 러시아, 일본등의 우리 역사 왜곡과 죽이기는 극복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나 정작 더 큰 문제는 김춘추,김부식에서 박정희까지 축소지향, 분열지향의 길을 걸어 온 옹졸함이라 여겨집니다.
- 광개토대왕의 `다물`정신을 기리고 되 찾으려 노력하지는 않고 오히려 남과 북이, 동과 서가 분열의 고착화를 꾀하고 있는 못난 후손 우리들의 DNA깊이 분열, 축소, 왕따의 근성이 각인되어 자손들에게까지 유전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 힐링 소사이어티 2002. 11. 이화영님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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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페루·볼리비아)을 지배한 고대제국의 명칭으로 동시에 그 사회적 중핵(中核)으로 되었던 부족 및 그 지배계급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잉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잉카족은 케추아족이라고도 불리며, 남방의 아이마라족이나 북방의 창카족 등과 함께 페루 인디오의 한 집단이었다.
잉카문명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치·사회의 기구 편성에
나타낸 독특한 기술이다. 사회적으로는 신성한 절대군주 잉카를
받들고, 친족인 지배층과 일반평민으로 구성되는 계층사회를 형성하여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평민을 위한 사회보장이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잉카의 정체(政體)를 ‘신권적
사회주의’라든가 ‘사회주의 제국(帝國)’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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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어 작성일 : 2006-04-19 08:43:38
다 좋은 얘기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이 축소지향적이란 말은 터무니 없는 소리다. 우리세대 즉 286세대는 학교에서 요하에서 칼갈고 만주벌판을 말타고 달리던 우리조상들의 기상을 배웠다. 지금이 문제다. 정치지도자중 최초로 한국적인것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위대한 지도자이다. 한반도의 역사유적지 복원이 거의 이시기에 이루어졌다. 감은사지 복원을 앞두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유적지복원을 아무도 이루지 못함이 한 스럽다. 다음세대는 통일후를 준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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