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안 했다면 중국 땅에서 자리 잡기 힘들었을 거예요”
중국 소주 ‘상진화공’ 이은희 사장의 마음경영법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1997년 봄, 이은희씨는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운하가 흐르는 농가 사이로 농부들의 일손이 바쁜 곳, 쏘쪼우(蘇州)시 우중구 루쯔진. 너른 벌판에 이제 막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던 당시, ‘상진화공(소주)유한공사’라는이름의 화학공장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헤쳐나가야 할 일 외에는. 화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30대 초반의 한국 여성이, 낯선 중국 땅에서 화공업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것 외에는. 이 순간 이은희씨에게 가장 위안이 된 건 “공장 주변에 만발한 유채꽃이 아름답다는 것뿐”이었다. 그 후 10년, 회사는 오십 배 이상 커졌다. 그만큼 그녀의 마음도 의식도 커져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자신이 넘쳤다. 그녀가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는 것은 바로 ‘마음경영’을 가능하게 해준 마음수련이었다.
유치원생들이 찾아와 사진 찍고 가는 예쁜 공장 꼬박 10년이 흘렀다. 농촌이었던 마을은 공장지대가 되었고, 거리는 농부들의 분주함 대신 출퇴근하는 공원들의 자전거 행렬로 가득하다. 10년 전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상진화공도 그 세월만큼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열댓 명이던 직원은 오십여 명으로 늘었고, 외형상의 규모도 오십 배 이상 성장했다. 무엇보다 ‘상진화공’은 그곳의 중국인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 한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은 회사가 되었다.
화공약품의 독한 냄새보다 꽃향기가 나는 회사, 안전사고 한번 난 적 없는 회사, 사장님과 직원들 간의 거리가 없는 따듯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녀의 직업은 신문사 기자였다. 그녀가 화공업과 인연을 맺은 건 화공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가 중국에 공장을 짓게 되자 통역과 관리를 도와드리기 위해 중국에 오면서부터. 그것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장녀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기도 했다. 상해에 영업부 사무실을 개설하고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공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도와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7년 말 IMF가 터지고 한국의 본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버지로부터 중국 공장을 닫고 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아무것도 모르는 중국인들 뽑아서 한국 공장에 기술연수 보낼 준비까지 다 했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라구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열댓 명의 직원들을 모두 실업자로 만들 수도 없었다. 더 이상 본사의 지원은 없었다.
이제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했다. 이은희씨는 에폭시 바닥재 카탈로그를 달달 외우고 상대방이 던질 예상 질문을 뽑아 공부를 하며 영업을 다녔다. 어디서 건물 짓는다는 소리만 들려도 무작정 달려갔다. 중국 땅은 넓었다. 출장 한번 가면 기본이 5~6시간, 좀 멀리 가면 며칠씩 걸렸다. 하지만 ‘여자가 왔네?’ 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만 받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서기를 수없이 해야 했다. 이은희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중국인 직원들과 한마음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주 작은 것조차 알아서 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화를 내게 되더라고요. 일을 시켜도 불안하고 의심스럽고 뭐든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요.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월급날은 왜 그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여기저기 빚을 져 겨우 월급을 해결할 때면 직원들은 전부 놀고 있는데 나만 고생하고 있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어디 가서 월급쟁이를 하면 편할 텐데… 하는 약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절대 문은 닫을 수 없다는 집념 하나로 버텼다.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나 상해 사무실로, 소주 공장으로, 공사 현장으로, 중국 땅이 좁다 하고 뛰어다녔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에폭시와 화공에 대해 입시생처럼 공부했다.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없는 중국 특유의 집 구조 때문에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와도 싸워야 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 병에 걸려서야 제동이 걸려 그렇게 3년쯤 지났을 때였다. 열이 나고 피곤한 증세가 한 달이 넘게 계속되더니 어느 날 얼굴색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놀란 직원에 이끌려 간 인민제6병원. 급성간염으로 인한 황달 증세라며 당장에 전염병동으로 보내져 하루아침에 격리환자가 되었다. 참았던 설움이 몰려왔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와야 하는지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입원한 두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는 왜 중국에 와서 이런 경험을 하는 걸까. 뭔가 내 인생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기 때문이라면 우선은 내 마음부터 잘 다스려야겠다는 게 너무 간절했어요. 이번 일은 경고에 불과할 뿐, 계속 이런 식으로 산다면 몸도 마음도 정말 큰 병에 걸릴 것 같았어요.” 간절하면 통하는 법인가.
그 무렵, 신문사 다닐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은희야, 마음수련이라는 거 해봤는데 너무 좋아. 정말 마음이 버려져.” 망설일 것이 없었다. 무조건 한국의 마음수련원으로 향했다. 한 3일쯤 지나자, 정말로 마음이 버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들이 버려지는 만큼 지난 삶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업에 따라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딸을 오가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간 중국어과, 그리고 대학원과 유학, 신문기자 생활, 짧았던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 하나하나 돌아볼수록 상대보다는 나만을 위해, 나의 기분에 따라, 내 중심으로만 살아온 삶이었다.
순간순간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상대방 입장은 생각 못했었구나, 다 내가 잘못한 거였구나, 참회의 눈물이 흘렀다.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건 바로 공장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혼 후 제2의 인생을 결심했던 곳이었기 때문일까. 이번만은 성공해야 된다는 절박함이 너무나 뿌리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 직원들에게도 만족하지 못할 수밖에. 좀 더 잘하길 바라고 실수를 감싸기보다는 질책이 앞섰던 것 같았다. ‘나는 너희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야’ 하는 식의 태도를 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부끄러웠다.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함께해준 고마운 직원들. 문화적 차이가 있을 뿐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새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수련하면서 경영에 대한 마음자세 완전히 바뀌어 “수련을 하고 경영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경영자로서 제가 할 일은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체크를 하는 게 아니라, 먼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안 거죠. 그러기 위해서 회사가 내 거라는 집착부터 없애야 했어요. 회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중국으로 돌아온 이은희씨가 직원들에게 한 말은 “더 열심히 하라”는 독려가 아니었다.
“이제 우리 서로 위해주고 즐겁게 일하고 함께 행복해져요”라는 말이었다. 사장이 먼저 웃자 직원들이 웃었고 공장이 환해졌다. 잘못을 지적해야 할 땐 늘 자신의 마음부터 확인했다. 진심으로 직원을 생각하고 전체를 위하는 마음인가,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것인가. 그렇게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대하자 야단을 치면 불쾌해하던 예전과 달리, 직원들도 “세세, 리종!(고마워요, 이사장님!)” 하며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이심전심, 시간이 갈수록 이은희 사장의 마음은 직원들에게 전해졌고, 직원들의 태도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서 절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안 하거든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의 탓부터 하고 증거를 들이대야만 겨우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 제 잘못입니다’ 하고 먼저 자기 탓을 하고 동료들을 감싸주는 거예요.” 그녀의 마음경영은 영업과 공사 현장에도 변화를 주었다. 바닥공사라는 게, 보는 각도에 따라 꼬투리를 잡으면 얼마든지 하자가 발생하는 법. 하지만 고객이 불평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도 정성껏 보수를 해주었다. 결국 상진화공에는 막강한 애프터서비스 팀이 있다는 소문이 났고, 그것이 가장 확실한 영업이 되어주었다.
이은희씨가 마음수련하고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로 꼽는 게 또 있다. “중소기업 사장들의 외로움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일 거예요. 의논할 사람도 없고,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며칠씩 고민을 하고 불안해하죠. 그럴 때 정말 마음수련이 도움이 되요. 지나친 욕심은 없는가, 쓸데없는 생각과 틀을 버리다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오거든요.” 경영자로서 이보다 더 든든한 백이 어디 있겠냐고 말하는 이은희씨. 그녀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직원들을 맞는다. 이은희 사장은 이 순간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보노라면, 수련하고 돌아와 ‘우리 같이 행복해지자’고 했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뿌듯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