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의 굴레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었다. 가정적인 남편에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무슨 걱정이 있느냐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멀어져가는 아이들. 그런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나. 우리는 그런 속에서 억지로 짜 맞추기 가족일 뿐이었다. 가족끼리 있을 때 행복한가, 자유로운가, 서로 웃는 모습인가? 아니었다. 내 남편은 이래야 하고, 내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주어야 하고, 나는 항상 옳았기에 맘에 안 드는 걸 보면 참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각각의 지옥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나의 인생관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성실, 책임, 반듯하게 살아야 하고, 요즘 시대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피아노, 미술, 운동 등을 해야 하고, 또 어차피 하는 거라면 잘해야 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 돌아오면 새벽 1시. 그런 다람쥐 같은 생활에 어느 날 아들은 손을 들었다. 그토록 엄마 말 잘 듣고 따라오던 아들 녀석이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손을 탁 놓은 것이다.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 찼고 성격은 날이 서 있었다. 항상 수동적인 태도, 귀찮음, 부정적인 마음은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성적이 평균 10점 아래로 뚝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주변에서도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녀석이라 이게 웬일인가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구슬러도 보고 알아듣게 이야기도 해보고, 꾸중도 하고 엄포도 놓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착하고 효성스럽고 반듯했던 멋진 아들’은 점점 사라졌다. 그때는 실망과 걱정에 낙심도 컸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다행스럽다. 그런 일들로 아이들과 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수련은 남편이 먼저 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남편은 마음수련에 푸욱 빠져 사는 것 같았다. 남편은 계속 권유했지만 열심히 살기도 바쁜 시대에 그런 것들은 사치라고 여기며 난 계속 거절했었다. 하지만 아이 문제로 삶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스스로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도 방학 때 열리는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 보내고, 나도 열심히 수련을 했다. 수련하면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내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내가 많이 알고, 옳다고 믿었지만 모두가 내 욕심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놓아두면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엄마가 먼저 아이를 만들려고 해서 늘 문제였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난 남편에게 막 원망을 했다.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당신만 하고 있었어?” 하고. 그전에 수없이 권유했던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지금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는 아들 녀석. 언제 힘들었냐는 듯 해맑게 웃고 있다. 저녁 식탁을 차릴 때면 “엄마 뭐 도와드릴까요?” 하며 어느새 수저를 놓고 있다.
공부하란 얘길 하지 않으니 자기가 한다. 지금은 학원도 다니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걱정은 없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법.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지난날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밉던 가까운 인연들이 사랑으로 바뀔 수 있다니. 가까이 있어도 멀리만 느껴졌던 가족들이 이렇게 친구가 되다니.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속에 이렇게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오늘도 열심히 마음을 버린다. 하루 중에 수련을 할 때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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