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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텃밭에서
코리안위클리  2021/07/22, 18:52:43   
필자가 자란 시골은 강원도의 깊은 두메산골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버스도 없고 기차도 없는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이 이따금 보일 뿐, 이십 리를 걸어 나가야만 간신히 국도를 지나다니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갈 수 있었다. 다행히 일제 시대에 세워진 초등학교가 있어 나의 유년 시절을 배움의 길로 인도하는 좋은 유산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실과 시간에 밭에 나가 김매는 작업을 한 일이 있었다. ‘김을 맨다’는 것은 밭이나 논 농사에서 곡식 주변에 나는 풀들을 뽑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잡초가 많으면 곡식이 자라지 못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김을 매는 일은 아주 중요한 농부의 일과 중 하나였다.
시골 학교에는 주로 텃밭이 있어 학생들이 실제로 김을 매는 것을 학과 중의 하나로 삼았다. 친구들은 이미 엄마 아빠를 따라 농사일을 거들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형편이었기에 김을 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는 다반사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평생 처음이라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밭머리에 앉아서 아주 작고 소복한 풀들을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한 포기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이며 뽑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병기야! 김은 그렇게 매는 것이 아니란다. 곡식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큰 풀들은 뿌리채 뽑아주고 곡식보다 더 작은 풀들은 대강 호미로 긁어 주기만 하면 된단다”라고 알려주셨다.
그 후에 나는 정말 어른들이 김 매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먼저 곡식 주변의 큰 풀들을 손으로 한번 휘감아 뿌리채 뽑아 내고 곡식을 한 손으로 잡고 보호하면서 그 곡식 주변을 호미로 원을 그리며 쓱쓱 긁어 잔뿌리를 끊어 주고 그 옆에 구덩이를 파서 뽑은 풀을 묻어주고 또한 주변의 흙을 긁어 모아 곡식을 다시 한 번 덮어 보호해 주었다.

인생의 밭이랑을 다 맨 사람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인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밖에서 들리는 미세한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대신에 점점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순수한 내 양심의 소리는 내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소리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는 길에서 들려오는 자성의 소리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 없이 많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기가 막힌 인생의 웅덩이들, 수 많은 위기를 겪어낸 삶의 의미가 소리로 들려온다. 가난과 질병으로 겪은 아픔과 고통이 전해준 메시지는 죽음을 바르게 직면할 수 있는 면벽(面壁)의 수행과도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노인의 또 다른 이름 어른

사람이 태어나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이제 삶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자연스레 노인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인생의 밭이랑을 다 매고 거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밭을 다 맨 농부가 다시 돌이키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밭고랑도 다 맨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 임종의 시간이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는 현실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 가운데 불려지는 또 하나의 명칭이 있다면 그것은 어른일 것이다. 어른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지혜롭고 풍부한 삶의 경험을 통해 인생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죽음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직시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인이 많은 사회가 아닌
어른이 많은 사회가 되기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조그만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큰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가치 앞에서는 죽음도 의연히 맞을 수 있고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사리사욕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혹자는 이런 사람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의인이란 표의 문자(表意文字)의 의미로는 내(我)가 양(羊)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했다. 즉 나我자 밑에 양羊자를 쓰는 것이 옳을 의義자라는 말이다.
세상에서 죽음의 비밀을 가장 잘 아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는 희생 양이 되신 삶을 양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사신 희생양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인의 삶일 뿐 다른 의는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갈 때 의인이라 불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른은 곧 우리 인생 가운데 불려지는 의인의 한 모습이요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노인은 많아도 어른이 드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바라기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존경할 만한 많은 어른들이 계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야 사회가 바른 길로 가게 될 것이니까!
오늘도 마음의 거울 앞에 서서 우리의 의인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내 삶 속에 비추어진 예수님 모습을 따라 나의 삶을 정리해 본다.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담임
revbkahn@gmail.com
차세대를 위해 매주 수요일 4시 유튜브 London Mission Association TV에서
런던 새소식반(Worcester Park Good News Club)을 방영하고 있다.

교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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