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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자라기
코리안위클리  2022/05/07, 19:30:54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작은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4월에 런던한겨레학교 교장이 된 이후 몇가지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이 모여 앉아 한글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땅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학교로 빌려 쓰는 교회 홀은 텅빈 공간을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의 활력으로 가득 채우고는 다시 텅 빈 공간으로 되돌려줘야 하는 곳입니다. 책장을 둘 수 없음은 물론이고 책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은데, 어린이도서를 1000권쯤을 기증해주시겠다는 분도 계신데, 정작 그걸 받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게 가능해졌습니다.

우리 학교의 꿈

아, 우리 학교 소개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런던한겨레학교는 뉴몰든 한복판에 있습니다. 2016년 1월에 URC교회 (KT3 6DR)에서 문을 연후 지금까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수업은 토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 합니다. 1~2교시에는 한글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합창, 미술, 체육(배드민튼) 등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학생들은 만4세부터 16세까지 공부합니다. 현재 학생은 60명, 교사는 15명이 있습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자원봉사자가 절반이 넘습니다. 어디서 이런 분들이 모였을까 싶은 정도로 좋은 분들입니다.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어떤 분이 혹시 종교적 신념으로 모이신 분들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아이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공동체에서 그늘 없이 자기답게 잘 성장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학교에 대해 어떤 분들은 “탈북민 학교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신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교를 처음 세울 때 북한출신 부모님들이 주도한 것은 맞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남북한 분들이 힘을 합해서 꾸려나간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노스와 사우스에 고향을 둔 어른들이 협력해서, 새로운 세대를 (노스와 사우스라는 불편한 접두어 없이) 건강한 ‘코리언’으로 키우고자 하는 곳입니다.
우리 학교는 설립 이래로 지난해까지 학비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세운 사람들은 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필요한 비용은 공동체가 마련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상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서 지난해 9월부터는 수업료를 소액 (1년에 90파운드) 받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우리 학교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기부와 학부모들의 기금마련 행사 등을 통해 충당합니다. 살림은 빠듯하지만 마음은 넉넉하고 아이들은 밝게 자랍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www.onekoreanschool.org)그리고 자원교사로 봉사해주실 분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한국 아동도서의 아름다움

뉴몰든 하이스트리트 143번지에는 한국문화예술원(원장 임형수, 이하 문예원)이 있습니다. 성인학습자를 위한 한글강좌, 문화예술강좌가 활발히 진행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문예원 공간을 빌려서 수업도 하고 모임도 가졌습니다. 문예원은 어린이도서코너를 만드는 것에 흔쾌히 뜻을 같이 해서, 두 기관이 함께 한겨레어린이도서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예원이 쾌적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우리가 책과 책장을 제공했습니다.
기증자의 책 중 우선 700권을 꽂으니 책장이 꽉 찼습니다. 좋은 책들입니다. 아주 작은 도서관이지만, 어쩌면 영국에서 가장 큰 한국책 어린이도서관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공간이 허락한다면, 아직 미처 꽂지 못한 더 많은 책을 비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날도 올 것입니다. 시작이 좋습니다. 문예원의 넓은 유리창을 깨끗이 닦고 탁자 위에 그림책을 전시해 놓으니, 지나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봅니다. 책 표지 그림을 한참 보고, 책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영국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 책의 북 커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도서관이 우리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영국 사람들에게도 우리 책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도서관에 놀러가기

이곳이 어린이와 부모님들에게 좋은 놀이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은 문예원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책을 읽고, 엄마와 아이가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벌써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서가에 책을 꽂아둔 다음 날, 엄마와 같이 온 한 어린이가 책장 높은 선반에 놓인 <마법천자문>을 뽑아서 3시간 동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아직 도서관 문을 열기도 전에 벌써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런 공간이 정말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토요일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모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독서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책 이름을 쓰고 짧게 소감을 적는 이 작은 카드에 아이들이 읽은 책이 빼곡이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독서의 여정만큼 아이들의 한글도, 생각도 쑥쑥 자랄 것입니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림만 봐도 괜찮습니다 그림을 보고 표지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그냥 책으로 놀기만 해도 상관없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 공부나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겨레어린이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평일 10시부터 5시까지 와서 책을 읽고 갈 수 있습니다. (아직 대출은 안되고, 열람만 가능합니다.) 학생들이 하교길에 들러서 간식을 먹으면서 20~30분만 책을 읽고 가도 좋겠습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오후(3:30~5:00)에는 자원교사가 책읽기를 도와줄 것입니다. 한겨레어린이도서관에서 한글을 익히고, 한글 책을 읽고, 나아가 언젠가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책의 힘을 믿습니다. 놀러 오십시오.

 


글쓴이 : 이향규 (런던한겨레학교 교장)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교육학 박사). 서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가르쳤고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했다. 2016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두 사회를 관찰하며 글을 쓴다. 쓴 책으로는 <후아유> <영국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선교사의 여행> 등이 있으며, 한겨레21에 <시험과 답>이라는 교육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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