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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추억
코리안위클리  2022/07/18, 22:14:40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잘 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려니 하고 들은 말인데 막상 실천하려고 하니 쉽지 않음을 느낀다. 지갑을 여는 일이야 자금에 한계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일은 돈이 들지 않지만 실행하기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밥 잘 사는 선배라는 말이라도 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누구와 약속을 하고 만나서 밥을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 쉬지 않고 떠들어 버리면 애써 밥을 산 공로가 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약속에 맞춰 집을 나서는 나에게 건네는 아내의 지혜로운 인사말이 걸작이다. 오늘은 말 많이 하지 말아요.
함께 나이를 먹어가느라 그런지 아내도 예전 같지 않다.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 다니던 시절에 아내는 수첩이 필요 없을 만큼 주변 사람들의 번호를 다 외워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아내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데에도 특별한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 잠시 있었거나 길에서 그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까지 모두 기억해내는 신통력이 있었다. 길눈도 밝아서 한번 지나갔던 길이나 집은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달라졌다. 많이 달라졌다. 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세월이 소녀에게서 다 빼앗아 가 버린 것일까?
기억력에 관해서는 나도 나름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 거의 모든 시험을 벼락치기로 치렀던 것 같은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던 이유가 바로 좋은 기억 능력에 있었던 것 같다. 신학대학 재학 시절에는 한 교수님이 한 학기 분 노트의 중요 내용을 모두 외워서 쓰는 것을 학기말 시험문제로 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이 교수님이 한 친구에게 여기 신학대학에 기막힌(?) 학생이 하나 있다고 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그 친구분으로부터 전해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 단원마다 제목과 소제목은 물론 거기에 딸린 세세한 내용까지 손가락이 아파서 더 이상 기록할 수 없을 때까지 모두 외워서 적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시제를 모두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나이가 들면서 내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뿐 아니다. 기억을 잘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억이 왜곡되거나 혼돈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인간은 기억력이 나쁘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도
곧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을 때가 많다.

구약 성경(출애굽기)을 읽다보면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해방하여 낸 너희 하나님”이라는 내용의 말씀이 자주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머리가 나빠서 자꾸 이렇게 반복해서 이야기 하시는 것일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가 아는 대로 머리가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에 드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자꾸 반복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펴보면 모든 인간은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모두 기억력이 나쁘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도 인간은 그때가 지나면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 주셔도 인간은 곧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을 때가 많다.
최근에 요나서를 설교하면서 요나서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먼저는,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다시 육지로 나온다는 흥미로운 스토리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서의 내용은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도 계속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요나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비뚤어진 속성을 다루고 있는 매우 현대적인 책이다. 더 나아가서 요나서가 친숙한 이유는 순종보다 불순종,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바로 요나와 같은 요, 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지자라는 명칭이 부끄러울 만큼 들어내 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선지자 요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벌하심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고난을 통해 돌이키게 만드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던 인자하신 은혜의 하나님. 하지만 요나 이야기의 마지막은 신앙적인 해피 엔딩이 아니다. 요나서의 마지막 장은 박 넝쿨이 말라버렸다는 핑계로 하나님 앞에 끝없이 불평을 쏟아놓는 요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끝나고 있다. 바로 요, 나, 우리의 모습이다.
사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정확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늙은이는 물론 젊은이의 기억도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경과될수록 미화되고 과장되고 왜곡되기 쉽다. 너무나 아픈 상처는 아예 기억을 하지 못할 경우도 있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한 기억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기 좋도록 손질해서 보관되는 경우가 흔하다. 어차피 기억이란 존재 자체가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면, 정확하게 기억하려고 애쓰기보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기억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함부로 내 기억이 반드시 옳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쉽사리 내기를 걸어서는 안 된다.
내 기억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면 앞일을 계획하기보다 지난 과거의 일들을 함께 떠올리며 추억할 때가 많다. 특히 어릴 적 친구들이나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과의 만남일수록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공유하고 있는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어 대화거리로 삼을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커다란 경험의 덩어리는 잘 공감하는데 자세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서로 간에 기억하는 디테일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자기 자신의 경험일지라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기억하는 내용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지난 일을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변형시켜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는 것 같다. 좋은 기억은 더 좋게 기억하고, 나쁘거나 힘든 기억은 될 수 있는 대로 덜 나쁘게 기억하고, 심지어 너무나 아프고 힘든 기억은 스스로 아예 지워 없애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내 기억이 반드시 옳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쉽사리 내기를 걸어서는 안 된다. 내 기억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기억이라는 존재가 이왕에 그렇듯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면 조금 더 너그럽고 아름답게 기억해 주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추억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운다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김석천 목사
행복한교회 담임
전 K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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