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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Namju Go), 아빠(Ins Choi)가 부동산에서 남겨놓은 오퍼를 보는 장면 ⓒ Danny Ka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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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토론토 프린지 축제에 소개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무대에 소개되고 있는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토론토 리젠트 파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가족의 삶을 다룬 인스 최 작가의 작품이다.
사진작가를 지망하는 딸 자넷이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김씨(아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작품에서는 아버지와 갈등 끝에 집을 떠난 김 씨의 아들 정 씨의 소원함을 다루기도 하고, 월마트 등 새로운 부동산 개발로 인한 경쟁 심화로 김 씨가 매장 매각을 고려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극 전반에 걸쳐 가족 간의 갈등과 문화적 차이, 특히 이민자 부모와 캐나다 태생의 자녀 간의 갈등이 보이다가 아들 정씨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화해하고 매장의 미래를 보장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민자 가족의 역학 관계에 대한 묘사와 유머가 대체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할 듯하다.
시트콤 vs 연극 : 장시간 TV방영을 통해 등장 인물에게 캐릭터를 씌우는 시트콤에서 무대 연극으로의 전환은 캐릭터 개발의 속도와 깊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극 전반에 걸쳐 무대에 등장하는 아빠의 경우엔 그의 말과 행동이 초반부터 보여져 성역의 특징적인 부분이 쌓여갔으나 나머지 배역에서 전혀 눈에 띄는 성격 창조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TV시트콤을 전혀 알지 못한 관객의 관점에서 이런 측면은 다른 등장 인물의 비중이 너무 낮아 작품이 불완전하거나 깊이가 부족하다는 인식에 기여할 듯하다.
갑작스러운 결말 : 주인공 김 씨(아빠)와 소원해진 아들 정 씨와의 관계에서 부모를 등지고 집을 나간 아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화해가 너무 빠르게 이루어져 일부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채 1막만으로 공연이 서둘러 끝난다는 느낌이 강했고, 편의점이 큰 돈을 받고 팔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아들의 복귀 의도는 화해라기 보다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종 고정관념에 기댄 유머 : 유머를 위해 인종적 고정관념에 너무 기대고 있는데, 이런 농담은 문화적 경험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지만, 관객이 등장인물과 함께 웃고 있는지 아니면 등장인물을 비웃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때때로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이민자 가족 생활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효과적으로 포착하여 이민자나 캐나다의 문화적 특수성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 하더라도 재미를 불러 일으켜 왔음에 틀림없다.
한국인으로서 이민 1세대들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고, 런던처럼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시의 관객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민자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이민 1세대 부모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역할을 한다는 일부의 평은 아마도 이런 공감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75분간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런던 해머스미스 강변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스튜디오(Riverside Studios)극장에서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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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국서 유명 배우들 등장, 고전이 다시 인기작으로 흥행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으로, 인간의 실존과 삶의 무의미함을 주제로 한다. 이야기는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등장하며, 이들은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리기 위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화만을 나누는데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 혹은 그가 정말 올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각종 대화가 이어진다.
그들의 대화는 철학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코믹하게 흘러가고,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베케트는 인간이 겪는 고독, 무의미함,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림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관객들은 두 인물의 무의미한 기다림 속에서 실존적인 고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속도감이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받기 어려워 대학의 연극과에서 워크숍 공연으로만 소개되는 등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매우 어려운 텍스트였다.
이랬던 작품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전 연극의 부활을 예고한 것일까?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한때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얻기 어려운 작품으로 여겨졌던 이 연극이 약속이나 한 듯이 스타 배우들의 참여로 인해 흥행에 성공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에서는 배우 신구, 박근형과 이순재가, 영국에서는 벤(Ben Whishaw)과 루시안(Lucian Msamati)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참여는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불확실성이 커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의 고독과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이 이어지니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제가 더욱 공감을 얻고 있는게 아닐까?
훌륭한 작품은 마음과 영혼을 채운다. <고도>가 던지는 질문들이 새롭게 울림을 주고 있음에 틀림 없다. 매우 우연한 시기에 같은 작품을 놓고 벌어진 서로 다른 나라에서의 제작 방식이 신기롭기만 한데, 깊이 있는 주제의 작품도 적절한 접근 방식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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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gel Bewley |
<인형들의 성생활> - 웃음과 성찰 사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후 바로 런던에서 소개된 인형극<인형들의 성생활>은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대담하고 유쾌한 공연이다. 영국의 Blind Summit 극단이 선보인 이 작품은 인형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성(性)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금기시되는 주제에 접근한다.
유머와 진지함의 절묘한 균형을 가진 이 작품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형 커플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섹스팅, 온라인 포르노, 간통 등 현대적 이슈부터 친밀감과 같은 시대를 초월한 주제까지, 인형들은 때로는 솔직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자신들의 성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극작가 벤 키튼과 마크 다운은 런던대학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성생활 인식 조사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본을 구성했다. 이러한 접근은 공연에 현실감을 더하는 동시에, 인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이 불편함 없이 민감한 주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네 명의 배우가 펼치는 퍼펫 연기는 특히 눈에 띈다. 그들은 다양한 억양과 목소리로 각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섬세한 동작으로 인형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특히 러셀 딘이 디자인한 인형들은 각각의 특징을 살린 디테일로 캐릭터성을 한층 강화한다. 코미디적 요소가 강하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감정적 순간들도 제공한다. 외도한 클라이브의 공허한 자기연민, 아내를 잃은 디미트리의 애틋한 그리움 등은 관객들에게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되새기게 하는 등 웃음 속 깊이 있는 성찰이 포함된다.
<인형들의 성생활>은 인형극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심오함, 그리고 조금의 불편함까지 동시에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성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 사회의 성 담론에 대한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성인을 위한 코미디의 새로운 방식이 열린 듯하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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