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19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는 일이 생길 때 근본적인 질문, 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데 왜 이런 것을 허용하신 것일까?’ 이런 질문은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을 만났을 때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놓고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도 이뤄지지 않았을 때 더 그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신 것은 우리 인간을 향한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자신과 같은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하나님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 즉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다른 동물들이 가진 자유처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틀 안에서만 허용된 본능적인 자유가 아니라 그 틀까지도 원하면 벗어날 수 있는 인격적인 자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처음부터 성숙한 존재로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교제하면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유가 문제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결정하면 그것은 막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자유를 준 인간을 향한 배려요 사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가진 자유는 큰 특권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인간의 대표였던 아담은 사탄이 위협하는 강제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단지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심에서 그 유혹에 넘어가서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 세상에 우리가 경험하는 이 수많은 고통과 불행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고난은 완전한 자유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일일이 다 대응해서 도와주는 것은 그런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든 당신의 창조의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그런 존재로 지어진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분들의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보면 다 고침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해 주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용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고난에 동참하신 하나님
이상의 답변은 고통에 대한 답변 치고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답변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두려움과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어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것을 겪으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가장 크게 사로잡혀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결국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동참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자기 죽음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헌신적으로 함께 하면서 해결해 주신 셈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 방식을 택한 것일까요?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에 대한 가장 큰 배려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은 우리 인간이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인간이 책임져야 옳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두 대표인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중 누구에게 속할 지 그 결정을 우리 손에 맡겼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생명을 바쳐서 이룬 구원의 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강제로 다 그 길로 가게 하시고 싶으셨을 텐데 그것을 우리 결정에 두셨습니다. 물론 당신이 마련한 구원의 길을 받아들이도록 여러 루트를 통해서 설명하고 받아들일 상황도 만들어 가시지만 어디까지나 강요이기보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이뤄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그분의 전적인 은혜인 동시에 우리의 전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건성으로 그것을 대하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구원방식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천국을 소망하며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어 이미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과 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고통을 같이 겪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 겪는 그 고통을 그대로 두신다고 해도 그 순간에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서 여러분을 돕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응답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그 모든 것은 장차 임할 그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린 모든 기도는 다 이뤄지고, 그것을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그분의 죽음으로 다 감당하셔서 우리에게서 그 모든 것을 다 제거해주신 것을 비로소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고난에서 멀리 계시지 않고 한 복판에 오셔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돕고 계십니다. 그 힘으로 한 날의 괴로움을 잘 감당해 내시기 바랍니다. 완전한 위로를 소망하면서도 낙심하지 말고 잘 받아내면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이영주 목사
꿈이있는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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