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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EDINBURGH FRINGE PROGRAM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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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에는 수천 편의 연극과 뮤지컬, 퍼포먼스가 무대에 오른다. 관객에게는 ‘볼거리의 향연’으로 인식되지만, 이 축제의 이면에는 또 다른 중요한 움직임이 있다. 바로 작품을 사고파는 ‘공연예술의 시장(marketplace)’이다.
극장을 운영하거나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프로듀서와 프로그램 디렉터들은 에든버러에 몰려와 공연을 직접 관람한다. 이들은 단순히 재미를 느끼기 위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에 초청할 만한 작품을 고르는 ‘바이어’의 눈으로 무대를 살핀다.
어떤 작품은 그대로 해외 극장으로 투어를 떠나고, 어떤 작품은 대본과 음악만 판매돼 현지 언어로 번안된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특히 뮤지컬의 경우 라이선싱 계약을 통해 판권을 구입해 새로운 캐스트와 제작진이 참여하는 ‘현지화 공연’이 흔히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활동하는 직업군은 다양하다. 국제 투어링 프로듀서는 공연 전체를 사와 자기 나라에서 무대에 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프로그래머는 특정 극장이나 축제의 책임자로, 라인업에 포함시킬 작품을 직접 결정한다. 또한 라이선싱 매니저와 배급사는 저작권 계약을 통해 공연 대본과 음악을 들여와 새롭게 제작한다. 이들은 창작자와 해외 극장, 프로듀서 사이를 연결해 계약 조건과 수익 배분을 협상한다.
에든버러 프린지 기간 중 열리는 수많은 네트워킹 행사, 산업 컨퍼런스, 바이어 미팅은 바로 이들 전문가들이 작품을 발견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장이다.
한편으로는 공연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다. 단 한 편의 공연이 눈에 띄어 해외 투어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작가의 작품이 라이선스로 팔려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한국에서도 <레 미제라블>이나 <위키드> 같은 대형 뮤지컬을 한국어 버전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에든버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세계 공연예술 유통의 교차로라 할 수 있다. 관객은 공연을 즐기고, 창작자는 작품을 선보이며, 프로듀서와 바이어는 무대를 통해 거래를 성사시킨다. 결국 이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연극과 뮤지컬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무대와 관객을 만난다. 에든버러의 여름이 “세계 공연예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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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프린지, 올림픽과 동등한 지위와 지원을 받아야
영국의 세계적 예술 축제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긴축 재정, 그리고 후원 문제까지 겹치면서 가장 성공적인 축제들마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지난 3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전임 최고경영자 쇼나 맥카시는 “프린지가 올림픽이나 커먼웰스 게임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동등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맥카시는 공연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숙박비, 관객들이 끊기는 와이파이 때문에 티켓 예매조차 어려운 현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현재 프린지가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음을 경고했다.
실제로 프린지는 1947년 이후, 매년 수백만 장의 티켓을 팔아치우며, 로완 앳킨슨, 스티븐 프라이, 에디 이저드, 스티브 쿠건, 한나 갯스비,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빌리 코널리 같은 세계적 스타들을 배출했고 최근에는 <플리백>, <뮤지컬 식스> 같은 히트작들이 이 무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의 프린지는 더 이상 낭만적 혼돈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각 공연은 제작자가 모든 비용과 책임을 떠안아야 하며, 예전과 다르게 신진 예술가들의 진입 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관객들은 교통 불편에 시달리고, 공연자들은 저렴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는 더 이상 예술적 실험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기반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다른 예술 축제들도 잇따라 위기를 맞고 있다.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의 디렉터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는 정부 지원 축소로 인해 축제의 세계적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에든버러 국제 도서축제와 헤이 페스티벌 역시 후원사였던 투자사 베일리 기포드가 화석연료 기업과 이스라엘 관련 투자 문제로 협력을 중단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전 세계 지성의 ‘우드스탁’이라 불리던 헤이 페스티벌마저 존립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프린지는 단순히 돈과 스타를 만드는 장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허위 정보, 인공지능, 소외가 만연한 시대일수록 예술 축제 같은 공적 공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2년 뉴욕에서 살만 루슈디가 공격을 받은 사건 이후, 작가 엘리프 샤팍이 예술 축제를 “마지막으로 남은 민주적 공간”이라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축제는 단지 웃음을 주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다.
프린지의 위상은 단순히 에든버러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영국 문화예술계 전체의 지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며, 나아가 전 세계 예술 축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사례다.
올림픽이 국가적 자존심과 인프라 투자의 총체라면, 프린지는 인류 창의성의 집약체다. 프린지를 지켜내는 것은 단순한 공연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적 자유와 민주적 공간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백하다. 더 큰 지원, 더 튼튼한 기반, 그리고 예술을 국가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축제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에든버러 프린지는 이미 올림픽이다. 스포츠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한다면, 프린지는 인간의 상상력과 표현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영국 사회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한 ‘예술의 올림픽’에 걸맞은 대우를 제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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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로이드 웨버, 신작 뮤지컬 <일루저니스트> 2026년 9월 런던 개막
세계적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신작 뮤지컬 일루저니스트(The Illusionist)를 오는 2026년 9월 런던에서 초연할 계획을 밝혔다. 이번 작품은 2006년 에드워드 노튼 주연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20세기 초 빈을 배경으로 환상과 사랑, 권력의 갈등을 그린다.
창작진 구성도 눈길을 끈다. 아카데미상 수상 각본가 크리스 테리오가 대본을 맡고, 영국 싱어송라이터 브루노 메이저가 작사에 참여한다. 제작은 시스터 액트, 알라딘 등 대형 흥행작을 이끈 마이클 해리슨이 전담하며, 웨버는 앞으로 자신의 모든 작품을 해리슨과 협력해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연출자는 아직 공식 확정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선셋 블로바드> 리바이벌로 호평받은 제이미 로이드의 합류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웨버는 “이번 작품의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써온 곡 중 가장 빼어난 스코어라 자신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제작팀은 데모 작업과 대본 수정 단계에 있으며, 향후 캐스팅·극장·마술 연출진이 발표될 예정이다. 브로드웨이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점점 높아져가는 뉴욕의 제작비용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무대는 런던에서 먼저 열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이번 작품이 또 하나의 대형 흥행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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