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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받는 국립 오페라가 75만 원?
코리안위클리  2026/01/23, 23:51:56   
런던 로얄 발레와 오페라하우스 ⓒ ILOVESTAGE IMAGE LIBRARY
로열 오페라 하우스 ‘변동 가격제’ 도입에 관객 발칵

영국 예술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봄 공연 예정인 리처드 바그너의 오페라 지그프리트 티켓 한 장을 무려 425파운드(약 83만 원)에 판매하기 시작하며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영국 내 공공 보조금을 받는 공연 단체가 책정한 티켓 가격 중 역사상 최고가로 기록되었으며 기존 웨스트엔드 국공립 공연장의 최고가였던 270파운드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러한 기록적인 가격 상승의 원인은 로열 발레 앤 오페라 측이 이번 시즌부터 전격 도입한 변동 가격제에 있다.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동하는 이 시스템은 관객의 예매 열기가 뜨거울수록 티켓 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다.
극장 측은 조직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수요 중심의 가격 모델이 필수적이었다고 해명하며 수익 극대화를 통해 오히려 낮은 가격의 입문용 티켓 공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언제나 이런 논리를 대외적으로 발표한다.)
실제로 로열 오페라 하우스 관계자는 지그프리트의 최저가 티켓은 여전히 19파운드부터 시작하며 전체 티켓 중 상당 부분이 저렴한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이번 작품이 총 6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라는 점도 가격 책정의 한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판론자들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국립 예술 단체가 부유층만을 위한 엘리트주의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수익금이 저가 티켓을 보조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한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변동 가격제를 둘러싼 업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배우 마크 스트롱은 이러한 가격 정책이 관객을 ‘갈취(Racketeering)’하는 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난해온 반면, 런던극장협회와 영국연극협회는 영리 목적이 아닌 공연장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티켓 가격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정부 검토 과정에서 극장 측을 옹호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수요가 적은 공연의 가격은 과연 실시간으로 내려가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공공 예술의 접근성이 자본 논리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필자가 만약 425파운드를 내고 6시간짜리 바그너 오페라를 본다면 4시간쯤 지나 예술적 황홀경이 아니라 “내 엉덩이는 아직 살아있는가? 내 다리는 이 의자와 한 몸이 되었나?”를 고민하며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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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die Comer, Michael Sheen and Alan Cumming ⓒ Shutterstock/Colin Hattersley
Jodie Comer, Michael Sheen and Alan Cumming ⓒ Shutterstock/Colin Hattersley
 
극장가 덮친 ‘스타 마케팅’의 빛과 그림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스타가 관객을 모은다”는 명제는 연극사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이다. 2026년 벽두,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브라이언 크랜스톤, 니콜라 코클란, 시얼샤 로넌 등 스크린의 대스타들이 무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서는 “이런 방식이 과연 연극 생태계에 건강한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역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스타 캐스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 과거(1990년대~2000년대 초반): 비판의 중심은 영상과 무대 공연은 장르가 다르다보니 놀랍게도 ‘연기력’이었다. 1998년 니콜 키드먼의 <블루 룸(The Blue Room)> 출연이나 2002년 마돈나의 <업 포 그랩스(Up for Grabs)> 출연 당시, 평단은 “티켓을 팔기 위해 무대 경험이 부족한 할리우드 스타를 세워 예술성을 훼손한다”고 맹비난했다. 이때만 해도 스타 캐스팅은 일종의 ‘외도’나 ‘이벤트’로 여겨졌다.

● 전환기(2010년대): 베네딕트 컴버배치(<햄릿>), 톰 히들스턴(<코리올라누스>)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팬덤형 스타’들이 등장하며 비판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오히려 스타들이 연극의 저변을 넓힌다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 현재(2020년대~2026년): 팬데믹 이후 비판은 ‘경제적 지속 가능성’과 ‘기회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옮겨갔다. 정부 보조금 삭감과 제작비 상승으로 인해 극장들이 ‘안전한 선택(스타 캐스팅)’에만 매몰되면서 신진 작가와 배우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캐스팅 디렉터 조합(CDG)의 나딘 레니(Nadine Rennie) 의장은 스타 캐스팅 열풍을 “아이에게 설탕을 너무 많이 먹이는 것”에 비유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관객들이 ‘누가 나오는지’만 따지게 되면서 작품 자체의 힘이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거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중소 규모 극장들의 고사로 이어진다. 대형 스타를 섭외할 자본이 없는 극장들은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되고, 이는 미래의 대스타들이 탄생할 ‘인큐베이터’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타 파워를 단순히 ‘자기 과시’나 ‘돈벌이’가 아닌, 예술적 책임감으로 승화시키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국립극장의 마이클 신(Michael Sheen)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고향 웨일스의 예술 생태계를 재건하고 있다. 그는 단순 출연을 넘어 제작비를 직접 지원하고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의 한적한 마을 극장에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앨런 커밍(Alan Cumming)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는 스타 파워가 지역 경제와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리마 페이시(Prima Facie)>로 대성공을 거둔 조디 코머(Jodie Comer)가 브로드웨이 직행 대신 영국 전역 투어를 선택한 것은, 스타가 대도시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예술 경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스타 캐스팅을 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스타가 떠난 뒤 무엇이 남느냐이다. 린 가드너가 지적했듯, 일회성 ‘불꽃놀이’로 끝난다면 극장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신이나 앨런 커밍처럼 스타의 영향력을 시스템 구축과 후배 양성에 쏟아붓는다면, 스타 파워는 위기의 연극계를 구할 강력한 구원 투수가 될 수 있다.
2026년의 연극 팬들은 이제 배우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배우가 무대 위에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지켜보고 있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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