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통하는 거리, 루드게이트 힐 (Rudgate Hill)
로마 침략 막기 위한 ‘로만월’의 시작지점 … 역사보존지구로 지정
▲ 루드게이트 힐의 정확한 위치는 남쪽의 플릿 거리와 연결되는 사거리인 루드게이트 서커스에서부터 세인트 폴 대성당의 정면 앞마당까지다.
런던의 역사는 약 43년경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침략과 함께 시작되었다. 템스강에 인접한 지리적 요충지인 현재의 센트럴 런던에 자리잡은 로마인들은 적으로부터 도시를 완벽하게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벽(Roman Wall)과 길(Roman Road)을 새롭게 만들었다. 남쪽의 템스강을 중심으로 요새를 구축한 셈이다. 이는 런던뿐만이 아니라 로마인들인 점령했던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성벽에는 도시의 주요 방향과 연결되는 일곱 개의 문이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서쪽에서부터 성벽을 따라서 루드게이트, 뉴게이트, 알더스게이트, 크리플게이트, 무어게이트, 비숍스게이트, 알드게이트 등이다. 런던에서 지명이나 지하철 역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의 어원이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 남아있는 문은 하나도 없고, 성벽의 흔적만이 건물 주변 및 거리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면 로만월을 이루는 문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바로 출발점 역할을 한 서쪽에 자리잡은 루드게이트다. ‘루드’라는 단어는 기원전 66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루드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루드게이트를 통하여 센트럴 런던으로 연결되는 거리가 ‘루드게이트 힐’이다. 그러므로 루드게이트 힐은 명실공히 런던으로 통하는 가장 역사 깊은 거리라 할 수 있다.
루드게이트 힐의 정확한 위치는 남쪽의 플릿 거리와 연결되는 사거리인 루드게이트 서커스에서부터 세인트 폴 대성당의 정면 앞마당까지다. 완만한 언덕으로 이루어진 루드게이트 힐의 정점에 해당하는 위치에 런던, 나아가서 영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세인트 폴 대성당이 건립된 이유 역시 런던의 근원지로서 루드게이트 힐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런던의 심장부에 위치하여 런던의 역사가 시작된 장소이므로 루드게이트 힐은 센트럴 런던에서 가장 활성화된 거리로 자리잡았다. 루드게이트 힐의 양쪽 거리는 물론이고, 미로같이 연결된 골목, 골목에는 상점, 식당, 사무실, 주거시설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산업혁명을 전후한 시기 거리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루드게이트 힐이 얼마나 번화한 거리였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능은 물론이고 건축적으로도 수많은 스타일이 혼재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현재 루드게이트 힐 일대의 대부분이 역사보존지구(Conservation Area)로 지정되었고 런던시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한편 앞선 2회와 3회에 설명한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의 화이트 홀과 스트랜드가 중간의 플릿 스트리트를 거쳐서 연결되는 거리가 또한 루드게이트 힐이다. 이러한 지형적 중요성 때문에 루드게이트 힐에서는 오래 전부터 황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은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의 각종 기념 퍼레이드가 거행되어 왔다. 멀게는 웨스트민스터나 트라팔가 광장에서부터, 짧게는 법원이 있는 홀본에서부터 퍼레이드를 시작해서 루드게이트 힐을 지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마무리를 한다.
예를 들어서 1189년부터 시행된 런던에서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거리 퍼레이드라 할 수 있는 ‘로드 메이어 쇼(The Lord Mayor’s Show)’ 의 핵심이 되는 거리가 바로 루드게이트 힐이다.
루드게이트 힐은 세인트 폴 대성당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많은 정치인들과 건축가들이 전쟁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루드게이트 힐을 파리의 샹젤리제와 견줄만한 웅장한 대가로로 재개발하자고 주장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와 같은 계획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루드게이트 힐은 런던으로 통하는 거리로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 1189년부터 시행된 런던 거리퍼레이드 ‘로드 메이어 쇼(The Lord Mayor’s Show)’
▲ 산업혁명을 전후한 시기 거리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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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정후(건축가, 런던정경대학 튜터)
약력 :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디자인 스튜디오 O.N.E 소장 / 건축 비평가
영국 바쓰대학 건축학 및 런던정경대학 도시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저서 : <공간사옥>(공저, 2003),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공저, 2006)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활동 : 현재 디자인과 강의를 하고 있으며 조선일보, KBS, SBS의 디자인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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