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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천재지변·사고 후 악몽, 수면부족, 대인관계 불안 등 심각한 장애 초래
필자가 영국 생활을 하다가 잠깐 한국의 여수에서 대진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랜만에 바닷 바람을 쐬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영국에서 그동안 배운 것을 한국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호기심도 그 결정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근무 첫날 필자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 한국에서는 드물게 통역을 듣고 진료를 해야 했다.
물론 런던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인도, 터키, 러시아, 동유럽 등에서 온 환자들을 볼때 통역을 두고 환자를 본 적이 있으므로 그 자체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고국에서 한국어로 자유롭게 환자를 보고싶었던 나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럼 왜 그 외딴 여수의 중소 병원에 외국인 환자가 오게 되었을까.
마침 필자가 도착하기 며칠전 여수에서 큰 불이 났었는데 바로 그 장소가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던 시설이었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이 발생했다고 한다.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켄트와 프랑스 송가 지역에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는 시설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듯이 필자가 짐작하기에는 이 시설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왜 그 화상 환자들이 다른 과에 가지 않고 신경정신과를 찾아 왔냐 하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심각한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있었고 또한 눈을 감으면 옆에 있었던 동료가 불에 타 죽는 장면이 자꾸 떠올라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불안하고 비슷한 장면이 꿈에 나오는 등 기분도 깔아지고 조그만 자극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등 도무지 이전 상태로 돌아 갈 수가 없다는 호소를 한다.
이렇게 엄청난 천재지변이나 사고를 겪고 난뒤 악몽, 수면부족, 불안 등이 생기는 현상은 어느 정도로 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이전의 정상활동을 되찾는데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일례로 얼마전 아이티나 칠레에서 강력한 지진이 있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충격(trauma)를 당하고 나면 수면 부족과 악몽, 대인관계 불안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장기간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일부의 피해자들은 아래 진단기준에 부합되는 증상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임상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이 왜 중요한지는 다음 연재에서 설명하겠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Ⅳ-TR)에 따르면, 다음 기준을 만족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한다.
A. 외상성 사건을 경험했던 개인에게 다음 2가지 증상이 모두 나타난다.
1) 개인이 자신이나 타인의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이나 심각한 상해, 또는 신체적 안녕에 위협을 가져다 주는 사건(들)을 경험하거나 목격하거나 직면했을 때.
2) 개인의 반응에 극심한 공포, 무력감, 고통이 동반될 때
※ 주의 : 소아에서는 이런 반응 대신 지리멸렬하거나 초조한 행동을 보인다.
B. 외상성 사건을 다음과 같은 방식 가운데 1가지 (또는 그 이상)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재경험할 때
1) 사건에 대한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떠오르는 고통스런 회상
(영상이나 생각, 지각을 포함)
※ 주의 : 소아에서는 사고의 주제나 특징이 표현되는 반복적 놀이를 한다.
2) 사건에 대한 반복적이고 괴로운 꿈
※ 주의 : 소아에서는 내용이 인지되지 않는 무서운 꿈
3) 마치 외상성 사건이 재발하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이나 느낌
(사건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지각, 착각, 환각, 해리적인 환각 재현의 삽화들, 이런 경험은 잠에서 깨어날 때 혹은 중독 상태에서의 경험을 포함)
※ 주의 : 소아에서는 외상의 특유한 재연(놀이를 통한 재경험)이 일어난다.
4) 외상적 사건과 유사하거나 상징적인 내적 또는 외적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심각한 심리적 고통
5) 외상적 사건과 유사하거나 상징적인 내적 또는 외적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의 생리적 재반응
C. 외상과 연관되는 자극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려 하거나, 전에는 없었던 일반적인 반응의 마비가 다음 중 3가지 이상일 때
1) 외상과 관련되는 생각, 느낌, 대화를 피한다.
2) 외상이 회상되는 행동, 장소, 사람들을 피한다.
3) 외상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할 수 없다.
4) 중요한 활동에 흥미나 참여가 매우 저하되어 있다.
5)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소외감
6) 정서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예: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7) 미래가 단축된 느낌 (예: 직업, 결혼, 자녀, 정상적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D. 외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증가된 각성 반응의 증상이 2가지 이상 있을 때
1) 잠들기 어려움 또는 잠을 계속 자기 어려움
2) 자극에 과민한 상태 또는 분노의 폭발
3) 집중의 어려움
4) 지나친 경계
5) 악화된 놀람 반응
E. 장애(진단 기준 B, C, D)의 기간이 1개월 이상
F. 증상이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장애를 초래한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 받은 후에는 다음과 같이 급성, 만성, 지연성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1) 급성 : 증상 기간이 3개월 이하
(2) 만성 : 증상 기간이 3개월 이상
(3) 지연성 : 스트레스 발생 후 적어도 6개월 이후 증상이 나타난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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