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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우이혁 정신과 전문의 글짜크기  | 
청소년과 정신건강 32 잠을 못 이루는 소녀
코리안위클리  2010/07/07, 03:53:18   
자녀의 주의력결핍장애 의심하는 어머니,
본인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10년간 앓아 아이에 영향


얼마전 동료에게서 10세 여자 아이를 진료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왔다갔다 하며 주위가 산만해서 혹시나 ADHD(주의력 결핍 장애)가 아닌지를 진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애가 잠을 전혀 못잔다면서 약이든 무엇이든 해달라며 필자에게 매달렸고 아이의 진단 파일에는 ADHD 검사지 결과가 선명하게 주의력 결핍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처음 본 10살짜리 아동을 검사 결과만 보고 ADHD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진단에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병명에 관한 언급은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병명을 말하면 확진을 하기 전에 이미 부모의 마음속에 그 병명이 남아 계속 집착하게 된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하고 모르는 채로 남아 있으면 계속 불안해 한다. 하물며 그 대상이 자기 자식일 때는 어마어마한 불안이 몰려 오는 것을 늘 체험해 왔다.
부모나 의사나 병명이 밝혀지면 일단 편하다. 경과를 알 수 있고 예후를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 병명이 맞지 않다면 아주 엉뚱한 상황이 발생하고 환자의 진료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병명을 붙이는 것은 언제해도 늦지 않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다시 그 여자 아이에게 돌아가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필자와 앉아 있을 때는 전혀 산만하지 않고 집중을 잘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학교나 어머니는 자꾸 산만하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가정방문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일단 집에 들어가보니 마치 관광지의 기념품점에 온 것과 같이 장식물들이 온 집안을 돌아가면서 매달려 있었고 한마디로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그 집에서 아이가 한 살 반 때 큰 불이 나서 집이 완전히 타버렸는데 카운슬은 다시 똑같은 자리에 집을 지었고 어머니는 불났던 집에 다시 들어가기 싫었지만 카운슬에서 다른 집이 없다고해서 할 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밤에 잠을 자려면 늘 불난 광경이 어른거리고 매캐하게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머니는 아랫층에서 자기 시작했고 아이도 이층 자기방에서 재우려하면 잠을 못자고 아랫층으로 내려와 할 수 없이 같이 잔다고 했다.
이 소녀에게 왜 이층에서 자지 못하는 지를 물어보니 어둠속에서 자꾸 무엇이 뛰쳐 나올 것 같고 이상한 것이 보여서 무섭다고 대답한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여자아이 아버지가 일부러 불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 소녀가 잠을 자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밤마다 다시 그 남자가 와서 불을 지르면 어떡하나 불안에 떠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그 어머니의 불안이 당연히 그 소녀에게 영향을 미쳐서 마치 그 소녀가 엄마의 불안을 대변해 주는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어머니는 이미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고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울증뿐만이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심하게 앓고 있었고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머니에 비해 소녀는 PTSD를 앓고 있지는 않으나 어머니가 공포에 시달리는 이유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던 것 같다.

병명이 밝혀지면 경과를 알 수 있고 예후를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어 편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 병명이 맞지 않다면 아주 엉뚱한 상황이 발생하고
환자의 진료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병명을 붙이는 것은 언제해도 늦지 않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

상담후 아이의 증상이 점차 뚜렷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무엇인가 보인다는 것이 어디서 올지도 모르는 불안과 연관된 것 같았고(보이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점에서) 이층에서 자꾸 나온다는 무서운 것은 아마도 이 집에 불을 지른 자신의 아버지의 망령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아버지는 화재 사건 이후 이 아동과 접촉한 적도 없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귀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필자가 그 어머니에게 이 집은 마치 귀신이 살고 있는 무덤처럼 보인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 어머니는 그것이 너무나 사실이고 제발 자신을 이 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절규한다. 한가지 필자의 마음 속에 든 의문은 이 가족이 이 집에서 다른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이 무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나아 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그 귀신이 찾아 올 수도 있고 그때가 되면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더 막막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무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만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속에도 있다면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그 새집도 다시 무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다른 동료가 그 집을 방문한 동안 그 소녀는 소파에서 아주 얌전히 잘 앉아 있었고 어떠한 ADHD의 흔적도 발견 할 수가 없었다. 필자의 눈과 귀에는 웃으면서 때론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큰 목소리만 들어왔는데 과연 이런 상태의 어머니의 마음속에 이 소녀가 자리잡을 수 있는 구석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쌓여갔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자아상을 형성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생기게 되고 청소년기에 다가가면 여러가지 행동문제를 야기시키게 되는 것을 필자는 늘 봐왔다. 아마도 이 아동은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자해를 하거나 더 확률이 높은 것은 남자관계가 문란해질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자신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 소녀는 자극적인 아니면 극단적인 신체적 감각으로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이런 문제를 갖게 될 것이리라. 어디서부터 이 매듭을 풀 수 있을지 필자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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