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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우이혁 정신과 전문의 글짜크기  | 
청소년과 정신건강 6 영국 의료 시스템의 숫자놀음
코리안위클리  2014/05/28, 06:31:12   
▲ 환자는 많고 병원 베드 수는 부족하기 때문에 새 병원을 짓고 의사를 충원하지 않는 한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심각한 재정 부족·의료 윤리 갈등…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

한국 사람으로서는 참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영국의 의료 시스템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영국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면서도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워하는 그런 존재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얼마전 영국 라디오에서 87세 할머니를 밤 11시에 집으로 퇴원시킨 사건이 보도됐는데 문제는 그 할머니가 혼자 사는 분으로 집에 가더라도 돌봐줄 사람도 없고 냉장고에 우유나 빵 한조각 없는 상황인데도 무조건 집으로 퇴원시켰는데 어떻게 의료진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냐면서 분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해서 할머니가 퇴원하면 집에서 제대로 간호를 받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며칠 내로 재 입원하게 될 것이니까 차라리 병원에서 며칠 더 입원시키고 있다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바로 숫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즘 영국에 살고 계신 분들은 자주 들으셨겠지만 모든 병원들이 입원실이 부족해서 난리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 입원실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은 장난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입원실로 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미디어에서 꼬집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 병원에서 재원 일수는 평균 얼마이고 그래서 재원 일수를 줄이고 새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에 대해 아마도 제한된 숫자가 정해져서 내려올 것이다. 이러한 공문을 받아서 통계를 내고 상부에 보고하고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이 소위 manager들의 역할이다.
종종 이런 말이 라디오에서 들린다. “도대체 매니저가 왜 그렇게 많으냐. 베드 매니저는 왜 필요하냐?” 이 베드 매니저의 역할이 바로 환자를 빨리 퇴원시키고 새로운 병실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환자는 많고 병원 베드 수는 부족하기 때문에 새 병원을 짓고 의사를 충원하지 않는 한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대신에 통계 수치로 병원을 열심히 활용하는 것처럼 만들어 보이게 한다. 소위 ‘efficiency saving’이다.
앞선 할머니가 퇴원하게 되면 그 순간 환자 재원일수가 끝난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입원하더라도 그때는 새 환자로 기록되어 병실을 많이 활용한 것처럼 기록된다. 아마도 그 매니저가 보고할 때는 자기 병원이 얼마나 환자 재원일수가 짧고 그래서 새로운 환자를 많이 입원시킬 수 있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보고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같은 환자가 잠시 집에 갔다가 병원으로 다시 온 것 뿐이다.
과거에 노동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최우선으로 했던 정책은 의사 보는 시간을 빨리 당긴다는 것이었다. 소위 waiting time을 줄이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각 GP나 병원들은 새로운 환자를 봐야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력을 검진하는 데 소진하게 되었다. 즉 거의 모든 의사들은 초진만 하고 나중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몇 주고 몇 달이고 기다리는 결과가 초래됐다.
일단 환자가 의사를 한번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그것은 더 이상 waiting time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해서 일종의 이차 waiting list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의 입장으로는 이전보다 빨리 의사를 만나는 것은 좋은데 치료가 필요해도 ‘어느 병원 누구에게 의뢰를 했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해서 듣게 되고 정작 자신들이 절실하게 기다리는 치료 기회는 여간해도 찾아 오지 않는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악화되는 환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응급실을 가게 돼서 응급실은 응급실 대로 북적대고 병실은 계속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target을 못 지키는 것은 환자를 초기에 진찰한 GP가 아니고 응급실 병원이 되어 매니저들이 길길이 뛰고 난리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차 의료 기관인 GP가 좀 더 치료 기능을 하고 의료 수요를 흡수해야 하는데 환자를 오히려 양산하는 역할을 하고 그 부담을 이차 의료기관으로 떠 넘기게 되는 것이다.
얼마전부터 나오는 말은 GP를 만날 때 환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게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견이 아주 분분한 사항이긴 하지만 요즘은 거의 대놓고 본인 부담금을 언급하는 의료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하 급수적으로 뛰는 약값과 고령 인구 증가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등등으로 늘어나는 비용을 도저히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효과적으로 기존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도 환자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빨리 퇴원하라는 지침이 나온다. 왜냐하면 지방 정부랑 일년 예산을 협상할 때도 그 동안 새 환자를 얼마나 볼 수 있었냐를 물어 보지 환자가 얼마나 나았는지를 물어 보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의료진들은 환자를 낫게 하는 것 보다도 어쩌면 환자 수요를 소화하는 것을 우선시 하도록 요구받는다. target을 맞추지 못하면 사표를 써야 되는 것은 의사가 아니고 매니저다. 하지만 옆에서 매니저가 자꾸 압박을 넣으면 의사도 피곤하고 삶이 괴로워진다. 의사의 능력은 환자를 얼마나 낫게 할 수 있는지 여부지만 매니저의 능력은 얼마나 target을 잘 달성했냐는 것이다. 이런 갈등 상황을 정부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 부족과 의료 윤리의 갈등을 국가가 지고 있기 보다는 하부 조직으로 내려 보내는 것 또한 어쩌면 토니 블레어의 신 보수당 이념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병원 컨설턴트나 GP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극에 달하고 있다. 환자를 낫게 해주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점점 기계적으로 숫자 놀음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것 때문에 이직을 하거나 NHS를 떠나는 의사들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겠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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