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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앞다퉈 ‘신장 기증’에 나서는 이유
코리안위클리  2014/10/29, 07:00:27   
▲ 영국 일간지 ‘미러’ 홈페이지에 소개된 신장 기증자의 수술 장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이 일은 내 일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회

‘헉’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영국 신문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의 ‘순수 신장 기증(Living altruistic kidney donation)’ 기사를 보았을 때가 그때다. 순수 장기 기증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체 장기를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기증하는 행위이다. 가족이나 친지를 위해 기증하는 경우는 듣고 보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기증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니 전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콩팥을 떼 줘?’라는 의문이 기사를 읽는 순간 당연히 들었다. 장기의 사후 기증은 많이 알려진 일이다. 본인이 필요 없으니 주는 일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선으로 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호기심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2006년 순수 신장 기증을 합법화했고, 자선은 증가하고 있다. 2007~2008 회계연도(영국에서는 회계연도가 4월 1일부터 다음해 3월 말까지다)에 첫 순수 신장 기증 6건이 이루어진 후 2008~2009년 15건, 2010~2011년 16건, 2011~2012년 34건, 2012~2013년 76건, 2013~2014년 118건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처음 시작될 때는 어느 정도 기증이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처럼 그냥 지나가 버릴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보듯이 매년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해당하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이런 식의 비율로 증가한다면 향후 10년 뒤에는 신장투석을 하면서 신장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순수 장기 기증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증이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헌혈과 같다는 말이다. 신장이 하나만 있다고 신장병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고 두 개가 있다고 건강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장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심지어는 신장 기증을 하려고 하다가 하나밖에 없는 걸 발견한 경우도 있다. 그만큼 신장은 특별나서 두 개 중 하나를 기증해도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신이 우리 몸을 만들 때 특별히 두 개를 주었다”고 순수 기증자들은 말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여분으로 달린 신장 하나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여분으로 하나 더 달린 것은 당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을 임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신이 두 개를 인간에게 주고 그것으로 인간성을 시험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또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신장을 기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신장 원래의 존재 목적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국 순수 신장 기증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장 하나를 주자(Give a Kidney)’라는 민간 자선단체의 원래 구호는 ‘신장 하나를 주자. 하나면 충분하다(Give a Kidney-One is Enough)’이다. 그래서 어떤 신장 기증자는 “나는 내가 필요한 이상의 신장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중 하나를 내려놓을(offload) 시간이 왔다”라고까지 말했다.

신장 기증 결심은 대단하지만 영국에서 신장 기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기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족 중 신장질환이 있었던 사람은 제외된다. 물론 건강해야 하고 또 각종 검사를 여러 번 한다. 신체검사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검사도 한다. 검사 과정에서 계속해서 심리 상담도 받는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기증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기증 의도를 분석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일단 기증을 해도 좋다는 판정이 나면 그때부터 최소 1개월은 흡연과 피임약과 호르몬 제제도 금해야 한다. 요즘은 의술의 발달로 수술 자체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수술 자국도 크지 않으나 수술 후가 상당히 번거롭다. 1~2주간은 피로를 느끼니 자주 자야 한다. 2~3주 뒤에는 일상으로 복귀해도 되지만 최소한 4주간은 무거운 것을 들지 않는 것이 좋다. 1~2주 뒤에 검진을 시작으로 6, 12, 24개월의 기간을 두고 진찰한 뒤 그 다음에는 1년에 한 번씩만 진찰하면 된다. 이런 번거로움뿐만 아니라 경제적 희생도 만만치 않다. 여러 번에 걸친 검사, 수술, 회복 기간 동안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증은 헌혈처럼 간단하게 끝나는 헌신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갖가지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기증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순수 기증자 중에는 전형적인 타입이 많다. 대개 50세 이상, 장기간 헌혈자,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산층, 강한 시민정신이 기증자의 일반적 유형이라고 한다. 대개 자녀가 없거나 독신인 경우가 많다. 남성이 조금 더 많고 중년이나 노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데 평균연령은 52세이다. 놀라운 것은 의외로 많은 젊은이들이 기증을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가장 젊은 기증자는 20살이었고 가장 고령은 83세였다. 상당히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기증을 한다. 은퇴자도 많다.

▲ 영국의 신장기증운동 단체 ‘신장 하나를 주자(Give a Kidney)’ 설립자인 작가 니콜라스 에반스.

▲ 영국의 신장기증운동 단체 ‘신장 하나를 주자(Give a Kidney)’ 설립자인 작가 니콜라스 에반스.


사람들이 신장 기증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신장 기증을 한 뒤 하나 남은 신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이다. 신장이 고장날 때는 두 개가 동시에 고장나기 때문에 하나가 있으나 두 개가 있으나 별 차이가 없다. 신장 기증을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만일 누군가에게 내 신장을 주고 나서 정작 내 가족이 필요로 하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다. 현재까지는 혈족을 위한 기증이 제일 많다. 친구나 친척에 의한 기증도 많으나 항상 충분하지 못하다. 사실은 피로 연결되지 않은 배우자, 친구들로부터 기증된 신장이 아주 가까운 가족·친척 것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생체조직이 아주 비슷해 유리한 경우도 많지만 신장은 유전적 이유 때문에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의 기증은 선호되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유전적 요소가 완전히 다른 배우자의 기증이 이식 조건이 맞는 상태라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실제로 몸을 나눠 가진다는 말이다. 물론 산 사람의 신장이 죽은 사람 것보다 훨씬 더 효과도 좋다. 지금까지는 사후 기증으로 오는 신장이식 수술이 과반수 이상이었지만 이걸로는 신장 수요를 다 충당하지 못한다. 또 죽은 사람의 신장 수명은 대개 10년인 데 비해 산 사람의 신장은 20~3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것이 산 사람의 신장 기증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몇 주일의 불편이 한 인간에게 20~30년의 정상적인 삶을 줄 수 있다면 한번 고려해 볼 가치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 기증자들의 논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까지 장기를 기증하는가? 좀 길기는 하지만 일요신문 옵서버가 소개한 사례를 보자. 올해 63세의 여자 수의사 클라라 볼리토는 알코올중독을 벗어난 지 20년이 되는 기념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년 동안 맨 정신으로 온전하게 산 것이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하고 대견했다. 그전에는 정말 엉망인 삶을 살았다. 음주 때문에 두 번이나 운전면허증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거식증도 걸리고 방종한 성생활도 했으며 담배도 피웠다. 그러다가 애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술을 끊었다. 지금까지 잘 지내 왔다. 그동안 국가의료서비스(NHS)로부터 받은 보살핌이 제일 큰 힘이 되었다. 또 20년간 가정의와 심리치료사로부터도 꼼꼼한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아 지금까지 맑은 정신으로 버틸 수가 있었다. 알코올중독자 모임 ‘알코홀릭스 어나니머스(Alcoholics Anonymous)’의 역할도 컸다고 했다. 클라라는 건강하고 돈도 있고 좋은 직장도 있는 내가 어떻게 해야 20주년을 기념하고 자신이 받은 혜택을 갚을 수 있느냐를 생각해 왔다. 친구들은 적당한 자선기관을 찾아서 기부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간단하게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순수 신장 기증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바로 이것이다’라는 말이 섬광처럼 스쳐 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신장 중 하나를 기증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미 사후 장기 기증을 약속한 상태였지만 생체 기증을 하기로 했다.

클라라는 기증을 결심한 후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에 더 놀랐다고 한다. 아주 친한 친구로부터 알코올중독자 모임의 멘토까지 극렬하게 반대했고 의사 친구는 심지어 화까지 냈다. 클라라는 지금도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증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클라라가 기증을 결심하고 나서 실제 이식수술이 이루어지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모든 검사에 2년이 걸렸고 그러고 나서야 실제 수술이 이루어졌다. 검사 후 1년이 더 걸린 이유는 클라라가 일을 6주간 쉴 수 있는 기간을 찾기가 어려워서였다. 오랜 기간 수도 없는 각종 검사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하고 거기다가 수술 후 6주를 쉬어야 하는 희생이 따랐다는 말이다. “기증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한 적이 없었느냐”는 물음에 클라라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통계에 의하면 클라라의 경우가 전형적인 생체신장 순수 기증자에 해당한다. 50세 이상, 장기간 헌혈자, 경제적 안정, 강한 시민정신 소유자에 해당한다. 거기다가 클라라는 독신이다.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런 것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그녀의 말이었다. 이것이 크고 작은 자선을 평소에 하는 영국인의 마음속에 깔린 생각이다.

다른 순수 신장 기증자는 옵서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멋진 삶을 살았다. 딸도 잘 자라주었고 아이는 내 기증 의사를 전적으로 지지했고 지금은 본인도 기증하려고 절차를 밟고 있다. 내가 죽었을 때 내 장기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보장이 없고 지금 기증하면 누군가의 생명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음을 안다.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이 일은 내 일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회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사후 기증한 장기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망설이지 않았다. 신장을 기다리다가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아는 순간 나는 바로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 나는 거기에 보람을 느낀다. 처음부터 그 신장은 내 것이 아니었고 지금은 더욱 아니기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그가 그 신장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이다.” 성인(聖人)이 아닌 인간이 이 이상 더 어떻게 숭고해질 수 있는가?

영국에는 4만명의 신장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가 있다. 그중 반이 투석을 한다. 심지어는 일주일에 세 번을 투석해야 하는데 한 번에 5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피의 25%밖에는 맑게 하지 못한다. 항상 피곤하고 목이 마르고 지쳐 있다. 대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나면 신체가 바로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 정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된다. 신장을 기증받고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이, 나중에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인기 소설 ‘호스 휘스퍼러’의 작가 니콜라스 에반스이다. 그는 수술 후 위에서 말한 ‘신장 하나를 주자(Give a kidney)’라는 영국 신장 기증 운동의 중심 단체를 설립했다. 현재 영국에서 순수 신장 기증이 늘어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 이 단체 때문이다. 이 단체의 주요 인물들은 거의가 다 신장 기증자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나보다 못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에서 첫 순수 신장 기증은 2007년 6월 케이 메이슨이 했다. 63세로 4자녀의 엄마였던 메이슨은 고귀한 일을 하기 위해 상당한 투쟁을 했다고 고백했다. 혈족 간 혹은 친지 간 기증은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의 일부를 기증하는 일은 당시만 해도 아주 이상한 짓으로 여겨져서 심지어는 정신 감정까지 받았다. 영국 보건부는 훨씬 더 무지했다. 2002년 메이슨이 처음으로 자신의 신장을 순수 기증하겠다고 했을 때 “안 된다”고 했다. 세 번이나 편지를 보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4년 뒤에 결실을 맺을 씨를 자신이 심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영국 의회가 2006년 관련 법을 제정하자마자 그는 바로 신청해서 2007년 6월 첫 순수 신장 기증자가 되었다. 그는 “만일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 나는 그런 일보다 훨씬 가벼운 일을 했을 뿐이다. 내 목숨을 내놓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고…”라고 쑥스러워했다.

사후 기증 장기는 대개 장기를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수천 명이 기증을 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사용을 못한다.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도 중요하다. 장기도 이미 수명을 다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 기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신장 기증은 환자에게 새 삶을 주는 의미도 크지만 그것과 함께 영국 NHS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영국에서 신장 투석을 하면서 버티는 사람이 약 2만명 되는데 한 사람당 경비가 1년에 3만파운드(5100만원) 정도다. 영국은 병원비가 전액 무료라서 본인 부담은 전혀 없다. 이 금액이 그대로 NHS의 부담이 된다. 만일 전체 투석 환자 2만명이 모두 신장이식 수술을 한다면 NHS는 1년에 신장투석 비용으로만 무려 6억파운드(1조200억원)의 부담을 절약할 수 있다. 이는 NHS 전체 1년 예산(1100억파운드·187조원)의 0.5%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참고로 영국 NHS의 1년 예산은 한국 정부 2014년 예산 357조원의 반이 넘는 금액이다.)

▲ 순수 장기 기증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증이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헌혈과 같다는 말이다. 신장이 하나만 있다고 신장병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고 두 개가 있다고 건강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장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 순수 장기 기증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증이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헌혈과 같다는 말이다. 신장이 하나만 있다고 신장병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고 두 개가 있다고 건강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신장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영국에는 매년 300명이 신장을 기다리다가 죽어간다. 평균 6000명이 대기 상태인데 매년 2500건의 신장이식 수술만이 이루어진다. 결국 3500명은 이식을 못 받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보통 2~3년 기다린다. 2014년 3월 기준으로 영국 인구 6500만명 중 2023만9715명이 NHS에 사후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사후 기증은 2007~2008년 777건에서 2012~2013년 1155건으로 48.6% 증가했다. 많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국민의 31%가 기증을 약속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사후 장기 기증이 유족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족이 고인이 생전에 원한 줄도 모르고 기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후 기증 약속자의 40%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도 아직 갈 길이 멀다. NHS의 조사에 의하면 54%의 국민이 최근 장기 기증에 대한 홍보를 본 적이 없고 3분의 1은 이런 주제로 대화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NHS의 목표는 장기 기증이 특별한 일이 아닌 통상적인 일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사후 장기 기증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응답자의 82%가 사후 장기 기증을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사후 기증만으로도 영국에서 신장 이식 대기 제로(0)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는 게 NHS의 말이다.

이런 목표 달성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옵트아웃(opt-out)제도를 추진 중이다. 특별히 기증을 안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기증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이다. 지난해 웨일스 지방이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오스트리아, 벨기에가 옵트아웃제도를 시행 중이다. 독일은 그 반대인 생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거나 유족이 동의한 경우에만 장기 기증이 가능한 옵트인(opt-in)제도를 쓰는데, 사후 기증 의사 동의 비율이 12%밖에 안 된다. 거기에 비해 같은 문화권인 오스트리아는 99.98% 동의율을 보이고 있다. 좋은 제도가 생명을 구한다는 실례다.

순수 장기 기증 관련 글에서 ‘생명의 선물(Gift of Life)’이라는 구절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선사한다는 말로도 볼 수 있고 자신이 가진 생명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자선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이나 남는 것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자선이 별것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여유가 있고, 없어도 될 것, 혹은 자신에게 크게 피해가 안 가는 만큼만 주는 것이니 그 마음을 크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생체 기증은 다르다. 사람 몸에 있는 어떤 장기도 불필요한 것은 없다. 맹장이나 쓸개는 없어도 산다고 하지만 분명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중 하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옵서버를 읽는 순간 감동했고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나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언젠가는 몰라도 지금은 자신이 없다”가 답이다. 신이 우리 몸에 신장을 두 개나 준 이유는 실제 인간의 품질을 시험하려는 의도인 것 같기도 하다. 신은 선택권을 주었고 인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해야 한다. 신장 순수 기증이라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인 것 같기도 하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 저서로는 '영국인 재발견(안나푸르나)'.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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