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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시기에서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는 자신의 소망과 실제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알고 그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 지금 자신의 소망을 억제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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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과 진료를 하다 보면 어쩌면 이들이 우리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쩌면 시기적으로도 아동에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기고 그 이면에는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던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혼자서 독립해야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어떻게 든 혼자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업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가려 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등등의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물론 모든 청소년들이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어떤 이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 즉 거꾸로 자신이 독립한다기 보다는 의존적으로 하려는 청소년들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을 확대해서 보면 꼭 청소년 시기에만 이런 갈등이나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어떤 포인트에서든지 얼마나 현실적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얼마나 본능에 충실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항상 있다. 인간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물론 이런 현실과 원칙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하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려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기억이 안나겠지만 이때는 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서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는 이러한 자신의 소망과 실제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알고 그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 지금 자신의 소망을 억제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애기가 배가 고픈데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엄마가 안오니까 기다려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더 이상 애기가 아니다. 애기는 먼저 젖을 주는 손이 엄마의 손인지 자신의 손인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젖을 자기가 먹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먹여 주는 건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가 고픈 것은 엄청나 공포감을 자극 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애기는 이러한 불안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신생아를 관찰해 보면 이럴 때 입을 우물거림으로서 자신의 입에 젖꼭지가 물려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손으로 마치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처럼 느낌으로서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부정하려 한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애기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있거나 만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착각 즉 환각적 경험이 스스로의 공포감을 견디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렇게 환각이나 거짓말에 중독되지 않고 현실을 받아 들이면서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성장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장과정에 필요한 것이 좌절을 참는 본인의 능력과 또한 그것을 겪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어머니의 돌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청소년 시기도 이러한 어렸을 때의 과정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를 들어서 요즘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는 등교 거부증이나 은둔형 외톨이는 자신이 현실에 가서 부딪히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소망대로 부모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자신이 유아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은 자신이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강할 때 자신이 영원히 부모에게 기대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신생아가 그렇게 하듯이 자신이 몸을 실제로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변을 조정할 수 있다고 믿으려고 한다. 실제로 은둔형 외톨이를 둔 부모중에는 이런 자식들의 수발을 들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고 마치 집에서 하인처럼 자식들을 봉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심하진 않더라고 현실을 무시하는 십대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전혀 현실감 없이 행동하는 중고등 학생들. 그들도 어쩌면 애기처럼 자신의 현실에 부딪히면서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을 기성세대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중년의 위기’나 ‘노년의 위기’다 하면서 나름대로 현실을 힘겨워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스스로가 폐경기를 앞두거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힘든 상황에 있고 또한 자신들의 부모들이 병들고 돌아가시는 연령대에 놓여 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청소년을 힘겨워하는 부모는 어쩌면 말 안듣고 현실감 없는 자녀만 힘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현실감을 부정하고 싶은 십대같은 모습을 힘들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자녀들의 문제를 이해해 주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 십대 자녀들에게 과도한 짜증을 낸다든지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들은 자녀가 아니라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들을 책망하고 싶은 것이리라.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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