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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조금씩은 병적인 부분들이 숨어있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보면 사실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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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문득 이렇게 붙이려고 한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한 재료를 한창 찾고 있는 도중에 요즈음엔 워낙 심한 병리를 가지고 있는 환자나 가족을 많이 보고 있으니까 그런 경험을 가지고 이야길 하면 일반 독자들이 괴리감을 가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이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대부분의 청중들은 필자의 열강(?)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말 잘 듣고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강연자들의 강의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난 애착이론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마음이 어떻게 자라고 부모들의 심리상태가 자녀들이 한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나름(?) 쉽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한 자신들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영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 방임, 학대나 부모의 상실을 심하게 경험한 아동들이고 또한 가정도 부모의 알콜문제나 우울증 및 가정 폭력으로 얼룩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 이런 병적으로 심한 상태에 있는 아동 청소년의 마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일반인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조금씩은 병적인 부분들이 숨어있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보면 사실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말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나 한국은 역사적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지금은 아동 학대에 해당되는 체벌을 당해보지 않은 어른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조금만 더 세월을 더듬어 보면 전쟁이나 군사정권 등으로 인한 폭력과 상실 등이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했었던게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녀들은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병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많다는 것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반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얼마전 만난 한 청소년이 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정상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고 소규모의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아서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 대해서 피해 의식이 많고 불안이 강해 수업시간에 오랫동안 참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 이 청소년은 작년에 귀에서 환청이 들리고 자살 사고가 심해 학교나 클리닉에서 몹시 걱정하고 집중치료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필자에게로 전화가 왔다. 그 청소년이 오늘 낮에 갑자기 교실에서 뛰쳐 나갔는데 그 학생을 막아선 교사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자신의 귀에서 ‘학교에 더 이상 있지 마라’는 소리가 들려서 그 목소리를 따라 행동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 학생이 정신병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생각해서 필자에게 응급 진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 필자가 만나서 물어 보니 사실 자기는 그날 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엄마가 억지로 가야 된다고 해서 겨우 몸을 추스리고 학교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의 수업이 있고 또 그 선생님 눈길도 이상한것 같아서 너무 너무 불편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디까지가 환청인지 어디까지가 자신의 소망(?)인지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이런 비슷한 과정은 십대를 기르는 부모님들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하루는 이렇게 하자고 해서 이렇게 했는데 막상 자기가 원했던 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마치 부모가 맨 처음부터 그런 일을 기획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기에 급급한 청소년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부모는 어리둥절 당하다가 마침내 못참을 지경이 되면 고함을 지르거나 야단을 치고 그렇게 되면 그 청소년은 부모들은 항상 그런 식이라면서 비난을 하고 자신을 마치 엄청난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한다.
어쩌면 두 가지 경우 모두 자신들이 결과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첫 번째 예의 청소년은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심하게 붕괴되어 청각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런 혼란이 드러나는 상황이고 두 번째는 이렇게 환청까지는 아니지만 짧은 순간 자신이 무엇을 했고 부모가 무엇을 했는 지가 뒤바뀌면서 감정 조절이 실패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병들었을 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다르지 않으므로 좀 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일반인’과 ‘환자’의 차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정신병원에서 보는 심한 환자들은 사실 우리가 꿈속에서 우리 자신들이 하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 수 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 자신 내부에 있는 정신병, 노이로제, 우울증 등과 싸우고 버텨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정신적 심리적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병적인 부분들을 다스리는데 실패하고 마치 자신들의 병적인 부분들은 정신과 환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그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장보다도 더 미세하고 누구나 마음속에서 한번쯤은 겪었던 단계라고 인식 한다면 오히려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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