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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에서 헤어나오려면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무의식을 싸고 있는 껍질을 하나씩 두개씩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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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 히스테리컬하다’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씩 들어봄 직한 말일 걸로 생각된다. 그만큼 일반 사람들도 ‘히스테리’ 혹은 ‘히스테리컬’이라는 말을 학술용어로서만이 아니라 일종의 생활 단어로 쓰고 있다. 정신과에서 ‘히스테리’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프로이드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프로이드가 이런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처음 기술한 것은 아니고 프로이드 이전부터 유럽에서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마비증상을 보이는 신경증적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사람이 파리 대학의 샤르코인데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도 이 문하에서 여러 해 연구한 경력이 있다. 이 샤르코 박사가 히스테리의 기질적 요인을 밝히기 위한 시도로 최면술을 사용한 것이 신경증의 정신적 원인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심을 자극했다고 알려져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프로이드도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면 요법을 사용했다가 나중에 자유 연상을 이용하여 환자의 무의식에 있는 심리적 갈등들을 의식화시켜 히스테리 환자들의 증상이 나아짐을 경험하고 정신분석 요법을 창시했다. 여기서 잠깐 주목할 것은 이때 프로이드가 이야기한 히스테리는 화를 잘 주체하지 못하고 기분이 왔다갔다 하고 신경질을 잘 내는 성격 장애를 이야기 한 것은 아니고 전문용어로서는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를 의미한다. 물론 이런 히스테리성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환장애를 가지는 경우가 많고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양에서 뿐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이러한 전환 장애 즉 히스테리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대개의 경우 ‘홧병’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특히 한국에서는 마비증세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신체의 여러 부위가 아프다는 호소를 하는 환자들도 많다. 하지만 증상이 발현되는 기전은 비슷하며 모두 다 특별한 기질적인 이상이 없는 데도 신체적 이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소위 ‘신경성 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증상들이 어쩌면 이러한 히스테리아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가지 학파별 차이는 있겠지만 심리적으로는 마음 속에 담아 둘 수 없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연령이라도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고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나 수험생 등등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마비 증세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음은 물론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진료할 때는 이런 환자분들은 명절 전후로 많이 오신다. 시부모를 같이 안 모시고 살더라도 시댁식구들과 가까이서 음식 준비나 제사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떨림 혹은 두통 등의 증상으로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많았고 어떤 아주머니들은 손이나 팔이 마비되는 증세로 응급실로 오시기도 한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런 환자분들에게 시댁에 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하는데도 마비 증상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프로이드 책을 보면 무의식에 있는 내용을 의식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증상이 개선된다고 했는데 자신이 경험해보니까 아니라면서 이건 엉터리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시댁에 가기 싫은 것은 무의식이 아니고 사실 의식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고 무의식에 좀 더 깊숙히 파묻혀 있는 내용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댁에 가기 싫은 것 만이 아니고 시어머니나 시 아버지, 남편과 자식, 친정 엄마 아버지 등 여러가지 복잡한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 중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증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대개의 이런 갈등들은 언어로 생각하기 조차 끔찍하거나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무의식에 있는 내용들이 의식화되려면 단기간의 ‘충격’요법 같은 ‘암시’나 ‘지식, 교육’ 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무의식을 싸고 있는 껍질을 하나씩 두개씩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영국의 청소년 클리닉에도 이러한 환자들이 가끔 찾아 온다. 그런데 고전적인 증례처럼 ‘마비’ 증세 보다는 ‘간질 발작’, ‘기억 상실’, ‘의식 소실’ 등의 증상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간질 전문 소아과 컨설턴트와 의논을 해봐도 실제로 의학적 이상이 있는 간질도 있지만 의학적 이상 없이 증상을 보이는 히스테리 환자들이 많이 있다고 보고를 한다. 필자도 영국의 한 여학생이 진료 중에 간질 발작을 보여서 100% 기질적 이상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24시간 뇌파 비디오 촬영을 해보니까 실제 뇌파상으로는 전혀 변화나 이상이 없는 시점에서도 몸은 간질 발작을 보이고 있어 두 눈을 의심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이니 일반인이나 학교 선생님이나 양호교사들이 어떻게 감별할 수는 있겠는가.
한가지 문제는 모든 히스테리아에는 이차 이득(secondary gain)이 있다. 즉 자신이 증상을 가짐으로서 뭔가 취하는 이득이 생긴다는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마비가 생기는 주부 히스테리아의 이차 이득은 시댁에 가지 않고 병원에 있는다는 것이고 학생들이 간질 발작을 하는 히스테리아의 이차 이득은 양호실에 가거나 집에 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유에서든지 학교에 있기가 힘들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학생인 경우 이런 간질 발작 히스테리아가 있으면 자신이 너무나 힘들어하는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조기 귀가를 하고 며칠동안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이득이 생긴다. 그래서 학생들의 경우 이런 마비나 발작 히스테리아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하다. 학교에서는 어떠한 의료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해당 학생을 양호실이나 병원 응급실로 보내고 부모를 호출한다.
이런 경우 환자는 이차 이득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보다는 유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당사자의 갈등 상황를 이해해 주면서 이차 이득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사실 임상 현장에서 이것을 실천하기란 말처럼 간단 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마비 증상 말고도 발작을 보이면 자신이 다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 머리를 쥐어 뜯는 다든지 때린다든지 등의 안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아주 자세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는 학교와 연대해서 공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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