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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우이혁 정신과 전문의 글짜크기  | 
청소년과 정신건강 44 ‘Bullying’ 이란 무엇인가?
코리안위클리  2016/01/06, 09:10:24   
▲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애가 집에 와서 자신감있게 부모에게 이야기 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들 방에만 있으면서 ‘어떤’ 무언의 대화인지 짐작해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영어로 bullying이라는 단어는 언뜻 한국말로 적당한 번역이 생각나지 않는다. 비슷한 계열로서 ‘왕따’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뉘앙스가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왕따라면 그 대상을 자꾸 따돌려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서 대상자가 고통을 당하는 반면에 bullying은 보통 놀리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물리적이나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어쩌면 좀 더 능동적인(active) 형태의 괴롭힘을 의미하는 것 같다. 어쨌든 두 가지 다 공통점이 있는데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나 그룹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따돌려짐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가 몹시 어려워지고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자신을 따돌리는 집단원에 대해 분노를 느낄 수도 있겠으나 흔히 이러한 분노는 자신으로 향하기가 쉽고 이러한 분노가 정도를 넘었을 때는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Bullying이 잘 일어나는 곳은 집단 전체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인 경우가 많다. 즉 군대나 감옥 같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도의 압력을 받게 되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단 중의 하나가 나약해 보이는 옆사람을 집단으로 ‘매장’시켜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매장’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하고 다른 구성원이 힘들어 하는 것을 봄으로서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은 ‘불안’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bullying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곳 중에 하나가 학교다. 특히 중학교에서 심하게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하필이면 청소년 시기에 이러한 bullying이 심리적 타격을 심하게 주는 이유는 개인의 자존감이 가장 위축되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몸이 변하고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지금까지 ‘사랑받았던 아이’에서 어른으로 되는 준비단계를 본격적으로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사랑’이 충분히 경험되지 못하거나 확신을 하지 못했던 아동들은 특히 이러한 bullying에 대해서 상처를 심하게 받고 또 아이러니 하게도 bullying을 다른 애에 비해서 더 쉽게 당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가 갑자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해왔던 일상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금방 들었던 것도 까먹는 증상으로 필자에게 의뢰됐다. 병원에서는 ‘뇌’에 이상이 있었는지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면담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심하게 흘려서 부모를 나가게 하고 본인하고만 상담하는 데 학교에서 자신이 bullying을 심하게 당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지금은 방학 중이지만 다시 개학을 하면 학교를 어떻게 다녀야 할지 걱정이고 부모님께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실망하실까봐 말을 못하겠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과 이미 이전에 이런 문제로 이야기한 적은 있고 학교 선생님이 bullying하는 애들을 불러다 야단을 쳤지만 효과는 별로 없다고 한다.

중학교를 시작하자 마자 이런 bullying이 시작돼서 속앓이를 하다가 점점 학교가는게 두렵고 주변 친구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bullying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뒤에도 끊기지 않았다. 친구들이 문자로 계속해서 자신을 따돌리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이 반응을 하면 모두가 쥐죽은 듯이 잠잠해져서 도대체 자신을 사람취급 하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한다. 급기야는 한달 전부터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가만 있지 말고 너도 쟤들 죽여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고 그 지시를 무시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럼 니가 차라리 죽어버려”라는 소리가 들려서 밤에 잠도 자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환청 뿐만이 아니라 ‘환시’도 보여서 친구 뒤에 왠 남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게 보여 마치 곧 그 친구가 살해당할 것 같아 너무 두려워졌다. 어쩌면 그다지 놀라만한 결과는 아닌게 이 환자는 자살 사고를 심하게 경험하고 목을 매어 죽을 계획을 학교 카운셀러에게 이야기해서 필자에게 의뢰가 되었다.

이 스토리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자신이 어디에서건 피할 수가 없다고 느껴지면 거의 필연적으로 드는 생각이 ‘차라리 죽어버리면...’하는 것이다. 환청이 이 중학생에게 준 효과는 어쩌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이 환자는 잠을 잘 때도 꿈에서 자신이 비슷하게 친구들에게 당하는 꿈을 꿔서 낮이나 밤이나 24시간 내내 bullying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두 가지를 짚고 넘어 가려고 하는데 하나는 스마트폰이나 SNS 즉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또래관계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지고 가정으로 돌아와서 재충전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집에 와서도 문자다 페이스북이다 거의 늘 자신들의 또래와 활발한 관계를 지속한다. 뿐만 아니라 안정감을 심어줘야할 가정도 양쪽 부모가 다 일을 하는 관계로 정서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것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귀가해서 SNS와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러한 청소년은 학교에서만 아니라 집에서도 ‘왕따’를 당하기가 일쑤다.

흔히 부모들은 진료할 때 ‘애들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고충을 털어 놓는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애가 집에 와서 자신감있게 부모에게 이야기 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와서 이야기하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들 방에만 있으면서 ‘어떤’ 무언의 대화인지 짐작해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bullying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엉뚱하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러한 피해 상황을 재생산함으로서 이차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잊어 버리면’ 쉽게 될 것 같은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고통을 당했던 경험을 재생함으로서 자신이 master나 control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말이다. 이런 점에서는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오히려 몸이 상하는 알레르기 같은 신체 질환과 비슷한 기전으로 마음도 병이 생긴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소녀가 보였던 마치 조기 치매와도 같은 기억력 상실과 기능 상실의 증상도 어쩌면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서 brain이나 mind의 스윗치가 꺼져버린 마치 두꺼비 집에서 퓨즈가 끊어진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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