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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하게 화를 내는 것은 저절로 터득 되는 것이 아니며 좋은 양육 환경에서 자신 내면의 성숙한 발달이 일어났을 때만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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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일을 하다 보면 ‘분노 조절(anger management)’을 해달라는 의뢰가 꽤 많다.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나이 어린 아동 혹은 다 큰 어른도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의 골치덩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분노조절만을 문제로 병원에 오는 사람은 많이 없었는데 영국에 오니까 하나의 신드롬이나 따로 떨어진 문제처럼 취급하는게 신기 했고 또한 분노 조절 프로그램이란 것이 있어서 마치 그 프로그램을 마치면 분노 조절이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우습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분노하는 이유가 다 다를 것이고 또한 그것을 다루는 방식 역시 각각 틀릴 것인데 그런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것이 왠지 미심쩍게 느껴졌다.
어쨌든 영국에 오니까 2000년대 초반에는 중등학교에서 이러한 분노 조절 프로그램을 하는 상담사나 선생님이 학교에 배치되어 있었고 효과가 얼마나 있든 간에 일단 학교나 여러 기관에서는 시도해 볼 만한 치료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유용한 서비스였던 것만큼은 틀림 없었다. 영국의 시스템 구조적으로 볼 때 필자는 거의 이런 프로그램을 해도 소용이 없는 아동 청소년들만을 보니까 사실 분노 조절 프로그램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편견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동 청소년들이 분노 조절 문제로 오는 경우에 현재 효과가 있다고 증명된 치료 방법은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개입으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이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의 양육에 문제가 없고 자녀들이 어떤 병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분노 조절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양육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아주 비판당하는 것 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로 센터와 부모들 사이에 대립이 생기고 급기야는 아동을 더 이상 데리고 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학교에서 분노 조절이 안되서 폭력행동을 하게 되면 정학(suspended)을 당하게 되고 부모가 집에서 애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부모가 쉽사리 ‘나 몰라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일정 나이 이하의 애를 집에 놔누고 일을 나가게 되면 아동 보호법에 저촉 되고 구청에 회부되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녈들의 권고를 듣고 따르지 않으면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리서치에서는 ‘양육기술’을 강조하는데 필자가 개인적으로 더 신경을 쓰는 부분은 부모가 자녀의 분노에 대해 아니면 자기 자신의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애가 화를 잘 낸다고 데려 오는 부모를 보면
많은 경우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의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양육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과연 자신들의 분노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권유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어떠한 감정을 느끼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감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분노’ 즉 ‘화(anger)’라는 것도 수많은 감정 중의 하나인데 발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이런 ‘화’라는 감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인간은 감정을 지각하고 느끼도록 디자인은 되어 있으나 자신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구분하고 어떤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감정이 분화가 되어 있지 않고 몹시 공포스러우면서도 암흑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 옆에 있는 대상(주로 어머니)이 그러한 감정을 받아 주고 공감해 주고 또한 ‘가르쳐’ 줘야하지만 아기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콘트롤 하는 법을 깨닫는다고 한다. 상식적인 얘기겠지만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조절하기도 어렵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그런 사람들은 말이나 성숙한 방법으로 감정 전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은 원시적인 상태로 감정 교류를 하기 때문에 세련된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아주 어렵다.
‘화’는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면서 몹시 강력한 것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난 감정이 이 세상을 다 엎어버리는 악랄하고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감정 중의 하나이고 또한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보여주고 담아줌으로써 아기는 자신의 마음속 분노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소유하고 소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자신의 분노에 대해 너무나 두려워하는 아기는 자신의 화난 감정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려 하기 때문에 아주 신경질적이고 걸핏하면 울고 분노 발작에 아주 취약한 아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태가 청소년, 성인기까지 지속되는 경우에는 억지로 자신의 분노를 억압만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분노를 받는 대상이 됨으로서 자신의 ‘화’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고 많은 경우 자학 혹은 피학 관계(sado masochistic)에 놓여 있게 된다.
임상 현장에서 애가 화를 잘 낸다고 데려 오는 부모를 보면 많은 경우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의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양육 기술(skill)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기 보다는 그들의 인생에서 과연 자신들의 분노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권유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성숙하게 화를 내는 것은 저절로 터득 되는 것이 아니며 좋은 양육 환경에서 자신 내면의 성숙한 발달이 일어났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화가 난 것을 부인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대신 화나게 하는 사람, 자기 학대를 하는 사람 등 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분노 발작을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를 다스리는 ‘척’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오죽하면 한국에는 ‘홧병’이 다 있겠나? 이런 홧병은 어쩌면 자기 학대처럼 신체가 계속 아프다고 느끼는 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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