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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46 어떤 마음의 상처는 왜 치유되지 않는가?
코리안위클리  2016/02/03, 08:21:30   
▲ 우리에게 일어난 트라우마가 얼마나 잘 치유될 수 있는 지는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세상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예후의 지표가 된다.

여기서 상처라 함은 심리적인 외상(psychic trauma)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신체적인 부분으로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더 쉬울 수 있다. 우리가 편의상 마음과 신체를 나누는 것이지만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마음이 생긴다”는 말도 있듯이 신체와 마음은 떨어진 것이 아니고 발달적으로 보더라도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평소 예상치 못한 강력한 충격이 가해져 외상이 생겼다고 하자. 예를 들어 길을 가는데 전봇대가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얼굴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나고 상처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어쩌면 갈비뼈가 다시 붙고 얼굴 상처가 아문다 하더라도 비가 올 때마다 갈빗대가 쑤시고 거울을 보면 얼굴에 흉터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운동을 옛날 만큼 잘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얼굴에 흉이 생겨 그 부분을 누르면 딱딱할 수도 있다.
마음도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전봇대 예를 다시 들어보면 전봇대가 다시 넘어질까봐 길을 다니는데 불안을 심하게 느낄 수도 있고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여전히 전봇대 있는 지역은 피할 수도 있다. 이런 불안이 다른 곳으로 전파되어 바깥 외출 자체가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신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갈비뼈가 부러져도 빨리 붙고 또한 낫고 나면 통증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회복 과정이 더디고 낫고 나서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가 하면 사람마다 기본적인 체력이나 나이, 다치기 전의 생활 습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차이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어떤 사람은 몇 주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고 다치기 전의 정상 상태로 복귀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집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기도 한다. 이것은 개인마다 기초적인 마음 상태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A양은 런던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20대 후반의 한국 여성이다. 이 여성이 대학 카운셀러를 통해서 필자에게 의뢰가 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시험과제 제출이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시험에 실패하면 학교에서 진급이 안되고 그러면 비자를 연장할 수 없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조급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 전 일어났던 ‘노상 강도(mugging)’를 다시 당하면 어떡하나 너무나 두려워서 집밖으로 나가지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없다. 이 사건은 두 달 반 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긴 사고인데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너무나 놀랬고 가슴이 두근거려 지금도 그 길로 지나다니지 못하고 멀리 돌아다녀야 된다고 한다. 필자가 주목한 사실은 왜 이 여학생은 다른 사람처럼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는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 되고 있느냐는 사실이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어떤 트라우마(외상)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홍수처럼 마음을 뒤덮는 경우에는 아주 폭력적인 감정이 외부현실뿐만이 아니라 내면에서도 비슷하게 생기게 된다. 세상이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려 기존의 자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방어 기관들의 붕괴를 가져 오게 된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실제 외부현실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생기는 불안에 대해서도 어쩔줄 모르게 된다. 아주 원초적인 불안, 충동성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선한 대상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난다. (정말 하나님이 있을까? 오! 신이여 등등) 좋은 존재들이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신뢰가 깨지고 나면 자연적으로 나쁜 대상의 잔인성과 악랄함이 득세를 하고 힘을 가지게 된다.
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왜 우리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느냐 하면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생기는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떤 과정(processing)을 겪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바로 자신이 이전에 겪었던 경험에 새롭게 생긴 사건을 대비시켜서 그 의미을 새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앞서 얘기했던 대학원생의 예를 들면 이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 사이의 가정 불화가 심했고 특히 아버지의 음주 및 도벽 그리고 가정 폭력이 심해서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본인은 이러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소망대로 공부 잘하는 맏딸로 성장했는데 대학을 서울로 가고 나서부터는 중고등 학교시절때의 총명함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많이 하다가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보면 이 학생에게는 그 강도 사건이 여러가지로 자극을 주었을거라고 생각이 된다. 자신이 겨우 유지해왔던 안전망이 그 사건으로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마치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아버지의 고함소리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해서 도무지 집 밖으로 아니 방 밖으로도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 런던의 작은 플랫의 자기 방이 어쩌면 이 환자에게는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맞고 있을 당시 겁에 질린 채 자신의 방에서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 속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자신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우리에게 일어난 트라우마가 얼마나 잘 치유될 수 있는 지는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세상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예후의 지표가 된다. (위의 임상 자료는 특정 환자의 예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 드립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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