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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아동 학대나 청소년의 심각한 행동 장애를 보면 부모가 ‘짐승만도 못하다’ ‘어떻게 애를 그렇게 키울 수 있냐’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은 그 부모들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들도 모르는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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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과에서 처음 수련을 받으면서 많이 한 치료 기법중에 싸이코 드라마 라는 것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흔하게 제공되는 치료 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20년전 한국에서는 많은 정신과 병동에서 이런 연극을 이용한 정신치료 요법이 인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엔(지금도 만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정신과 치료는 입원 치료 위주이다 보니까 환자들이 약을 복용하는 것 이외에 시간을 활용하면서 치료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활동들이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로 이 싸이코 드라마가 꽤 인기를 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일반인이 무대위로 나와 청중들 앞에서 연극하기도 힘든데 심각한 정신과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 그리고 의사 앞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당시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환자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다소 억지(?)스럽게 무대위로 나오게 해서 여러가지 역할을 유도하기도 했는데 어떤 때는 분위기가 좋아서 아주 부드럽게 진행이 잘 되어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렇게 싸이코 드라마를 진행하는 날이었는데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을 같이 가지고 있는 분열정동장애 환자가 무대에 올라 왔다. 20대 초반의 청년인걸로 기억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연기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엄마가 등장하자 연기를 하다 말고 무대 구석으로 숨어서 우는 것이었다. 당황한 필자가 환자에게 다가가자 환자는 더욱 더 숨으면서 오지말라고 피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놀리지 마세요. 놀리지 마”라고 흐느끼면서 부탁을 한다. 진정시키고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자기의 엄마가 정신분열병 환자라고 친구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은 일로 너무 충격을 받으셨던 기억이 떠올라 무대에서 연기를 하던 도중 이런 반응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부모가 아프다는 것은 여러가지 경우가 있겠다. 몸이 아픈 경우도 있고 마음이 아픈 경우도 있다. 엄마가 심각한 신체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아동의 양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 또한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신적 문제는 신체적 어려움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주변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리기도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점점 심각해 가는데도 즉각적인 도움이나 처치가 행해지지 않아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요즘 한국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아동 학대나 청소년의 심각한 행동 장애를 보면 부모가 ‘짐승만도 못하다’ ‘어떻게 애를 그렇게 키울 수 있냐’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은 그 부모들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들도 모르는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부모의 정신적 문제는 신체적 어려움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주변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리기도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점점 심각해 가는데도 즉각적인 도움이나 처치가 행해지지 않아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에 필자가 진료한 초기 정신병 증상을 가진 청소년들도 흥미롭게도 부모중에 한명 이상이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던 병력이 있는 분들이었는데 환자의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본인들이 정신과 증세가 악화되어 다시 약을 복용하는 분도 있고 부부사이에도 심각한 긴장을 유발해 치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는 대개 엄마들이 출산을 전후해 정신 증상이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생이 있다면 동생이 생기고 난 전후에 엄마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자세히 물어 보는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이렇게 물어 봐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상태가 많이 안좋았는 데도 옆의 배우자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독자들이 기억해야 될 중요한 사항은 부모가 특히 엄마가 정신적 정서적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양육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엄마의 문제가 아동양육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2008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한국 영화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킹스톤의 오데온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임수정 씨의 양육자가 심각한 정신분열병 환자였는데 그 밑에서 크는 것이 얼마나 상식을 초월할 만큼 힘들었고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정신과 병을 모른 채 덮어 두면 그것으로 주위 사람들이 얼마만한 피해를 보고 또한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러한 ‘병’을 감추려 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엄마가 심각한 피해 망상이 있으면 그 어머니에게 양육을 받고 자란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도 피해적인 사고를 하기 쉽다는 것이고 또한 당연히 밖에 나가서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어머니를 내세울 수 없고 숨기고 싶은 아동이 어떻게 밖에 나가서 가슴을 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숨기고 말하지 않아도 아동들이 서서히 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틀린 것을 알게 되고 자기도 다른 가족들처럼 그것에 대해서 모른척하고 지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피해적 사고로 입는 자녀의 정서적인 영향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양육 대상이 결여된 마치 어머니 없이 큰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게 되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집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자기에 대해서 부정이나 몹시 혼란스런 감정이 일어나면서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불신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학창 시절에 왕따는 물론이고 자신감 결여과 더불어 학업 성취도도 낮아지게 되고 우울증과 더불어 행동장애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필자가 싸이코 드라마로 엿보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아직도 보내고 있는 아동 청소년이 없는지 한번은 돌아 보면서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지역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회복의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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