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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79 말을 한다는 것
코리안위클리  2017/06/20, 22:12:19   
▲ 자폐 아동의 부모들 마음속에 얼마나 복잡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 주변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못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구별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무리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다른 포유류과의 동물들 중 그 누구도 인간만큼 이렇게 세분화된 소리를 내어 의사 소통하는 동물은 없다.
이렇게 중요한 인간의 기능 중 하나인 언어 발달은 대개 생후 1년이 지나면서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아기가 엄마, 아빠 같이 한 단어로 시작해서 두 살이 넘어가면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하기 시작해서 나중에 좀 더 긴 문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연령에 따른 발달 예상은 신기하게도 대개의 아동이 비슷하기 때문에 여러 교과서에 보면 좀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래서 오늘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언어발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귀’(ear for listening)이다. 처음 정신과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나이 지긋하신 원장님이 자신의 귀를 잡아 당기면서 이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렇게 누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말을 통해서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 해 줄 때 비로소 귀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에 내원하신 많은 분들, 아동이나 성인을 막론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을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예들 들어 어떤 사람은 말을 아주 많이 쉴새 없이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들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언어 발달이란 정서적인 면과 많이 연결이 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관계가 말을 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큰 역할을 하는데 말을 못하는 아기나 아동들을 보면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엄마나 아빠들이 아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줘야 하고 맞춰 내야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또한 이것은 아기를 양육하는 부모가 아기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이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주위에 보이는 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보고 입을 벌리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리’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저렇게 하는지에 대해서 알 턱이 없다. 즉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고 배워야만 말할 수가 있다. 아무리 유전적으로 코딩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유전인자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외부의 자극이 필요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여기서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이 아기들의 입장에서는 꼭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서 여러가지 발달 단계를 거치지만 버림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엄마 젖을 물고 빨면서 살다가 이제는 이유식을 해야 한다면서 엄마가 고형식을 주기 시작할 때 어떤 아기도 고통없이 바로 이유식을 하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성장통’이라고 할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언뜻 아주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보면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엄마나 어른들이 없어지고 자신이 말을 만들어서 해야만 의사 소통이 가능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 테면 ‘누군가가 내마음을 알아 주겠지’라는 것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해야 되는 상황이 된다.
또한 이제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의사 전달을 잘못한 내가 피해를 받거나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는 자신이 거의 일심 동체로서 여겨 왔던 엄마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다른 떨어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아기의 ‘천상천하 유아 독존’(narcissistic)의 상태에 심각한 도전을 불러 일으킨다.
일례로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난 뒤 부부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화난 감정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남편도 그리고 아내도 자신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 받고 싶은 아기 때의 상태로 회귀한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당연히 그때는 자신이 아기 때 받았던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말하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자폐 아동들이 병원에 오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행동 문제’이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발길질을 하고 머리를 벽에 박고 엄마 아빠를 마구 때리는 행동을 할 때 주위 부모나 선생님들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왜 아동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난감해 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경우에 아동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더울 때, 잠이 올 때, 어디가 아플 때 등등 여러가지 불편한 상황에서 이런 행동발작을 보이는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문제는 도대체 왜 아동들이 갑자기 행동발작을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 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임상현장에서 이런 아동들을 만나보면 거의 모든 경우 아주 기본 레벨의 의사 소통도 못한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싸인이나 그림을 통해서 의사 소통 하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도 집에서 엄마들은 아기 대하듯이 아동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주려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 아동 자신이 어떠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필자는 여기에는 잘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환경에 있게 해 주려는 부모의 소망이 현실성을 왜곡하는 경우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말을 잘 못하고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일체가 되어서 많은 것을 해결해 주려는 것을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됐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충분히 그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부모들은 유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중대한 문제는 이런 시도가 아동의 의사소통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서 특히 아동들이 덩치가 커지고 나서는 행동발작을 하기 시작하면 옆에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부모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복잡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 주변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못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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