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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89 죄책감(guilty feeling)
코리안위클리  2017/11/15, 06:53:52   
▲ 많은 경우에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그런 장애의 ‘탓’을 본인들에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죄책감이 크면 클수록 부작용이 많아지는데 이는 사실 알면서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파워풀한 감정의 하나이면서 종종 오해하고 있는 감정이 죄책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좀 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죄책감을 생각하고 이러한 죄책감이 우리의 행동을 절제시키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배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즉, 배려심이지 죄책감이 아니다. 이 죄책감은 마지막에 남은 떡 한조각을 먹으면 내가 비난이나 벌을 받을 수 있다고 두려워 하는 마음이지 아직 배고프거나 못먹은 사람들을 측은하게 느끼는 마음과는 다르다. 즉 죄책감은 이 경우에 아주 폭력적이거나 파라노이드(paranoid)한 측면으로 연결되는 감정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심각한 의심증으로 연결된 이 죄책감이 얼마나 위험하고 파괴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사의 격동적 순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 왔는지 알 수 있으리라. 아직도 많이 회자 되는 ‘광주 사태’부터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구마 사태’. ‘박종철 열사(?)’ 라는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렬 자살’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들은 정권 교체와 정치적 숙청 같은 파괴적인 힘으로 이어졌다.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 하면 당연히 몇 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도 당연히 연상이 되시리라 믿는다. 이 정도로 죄책감이란 강렬한 감정이고 또한 이것을 심하게 느끼면 그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임상가로서 정치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이 시점쯤에서는 진료실로 돌아가야 되는 타이밍인 같다. 당연히 의사로서 진료할 때도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취약계층인 아동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직종에 있는 필자로서는 매일 매일 이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만나야 하고 또한 그 중에서도 장애(disability)를 가지고 있는 아동을 진료할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한가지 첨언할 것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부모뿐만이 아니다. 부모가 원하는 ‘정상아’가 되지 못하는 장애 아동 자신들도 그렇고 그 아동과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 언어치료사, 물리 치료사, 그리고 담당 주치의까지도 모두 다 크고 작든 죄책감을 마주해야 될 때가 있다. 전체 네트워크를 돌아봐야 하는 컨설턴트의 역할이란 각 역할을 맡고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이런 죄책감을 잘 소화하고 있고 전체의 역동상황에 이러한 죄책감이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각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장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폐증이나 지능장애 같은 신경발달 장애 같은 경우는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이 종종 그 장애 정도에 대해서 간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페셔녈의 역할은 문서로 장애 정도를 정확하게 알려줌으로서 학교나 다른 치료사들이 장애 아동의 포텐셜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적절한 커리큘럼이나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대가 비 현실적이면 ‘누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고 그 화살이 바로 자기에게로 향하면 과도한 죄책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그런 장애의 ‘탓’을 본인들에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죄책감이 크면 클수록 부작용이 많아지는데 이는 사실 알면서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부분의 감정은 우리가 어쩌면 조절할 수 있는 의식 수준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장애를 가진 내 애가 밉다!’ 같은 감정은 부모로서 쉽게 인정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장애를 못 고치는 의사가 밉다’ 라든지 ‘우리애가 출산 때 의사가 좀 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이렇게 안되었을텐데’라는 등등의 감정들이 훨씬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자주 생기는 현상이 컴플레인(complaint)이다.
필자도 느끼는 것이지만 장애아동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아니 그것 보다도 항상 크고 작은 불만을 듣고 사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불만을 무시해도 된다고 오해하시면 안되고 다만 거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학교에 대해서 엄청난 불만을 토로하는 부모를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으면 다음 번 학교 미팅에서는 그 불만이 나에게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야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무의식적이라도 이런 컴플레인이 장애를 가진 자신의 자식에게도 향할 수 있다. ‘저 애만 없었더라도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은 쉽게 의식에서 잘 느끼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때론 짜증이나고 신경질이 나고 사람의 밑바닥의 감정까지 훑어 버리게 만드는 상황들이 나타날 때 부모들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아동을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대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이런 경우 사회사업가들이 관여를 하여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아동 학대(safeguarding)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지만 결국에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고 도움이다. 때론 누가 잘했니 누가 잘못 했니 즉 서로가 죄책감을 떠 넘기기 위해서(카운슬도 물론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급급한 상황에서 아동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가 논의 중심에 오고 어떻게 그것을 도와줄 수 있을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부모들의 경우 장애아동이 가족들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더 어마어마하다. 주위에 의지할 만한 친척들도 없고 자신들의 언어조차 제대로 습득이 안되어서 자신들도 어쩌면 약간의 장애 상황인데 자식이 만성적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가족 전체가 붕괴되거나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아버지가 울부짖듯이 하는 말이 ‘난 내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 영국에 왔고 내가 마음 먹은 것을 다 이루어 냈다, 다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빼고는. 그 이유는 자폐장애를 가진 내 딸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 아버지는 얼마만큼이나 큰 죄책감을 견디고 있을지 상상이 되시리라 믿는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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