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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96 1987 영화와 미투
코리안위클리  2018/03/07, 06:43:10   
▲ 1987도 그랬고 어쩌면 미투운동도 너무 정치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쉽게 쟁점화 되고 맞는자와 틀린자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처음의 순수한 의도가 훼손되게 되고 또다른 갈등의 씨가 되기 쉽다.

얼마전 우연히 1987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기분 전환을 위해서 보고자 한 영화가 머리속을 너무 복잡하게 해서 잠자리를 설치게 되었는데 그 많은 생각 중 하나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Me Too) 현상과 관련된 것이다.
먼저 ‘미투’현상을 살펴보면 이러한 새로운 사회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정서반응이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멈추질 않는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인물들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은 이제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패닉상태로 빠질 수 있으며 이것은 이제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상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 청소년과 일하는 전문가는 종종 가정에서 성학대나 가정 폭력 피해을 당해서 오는 어린 학생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다. 이들은 모두 다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어른들에게 피해를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 보면 뭔가 자신들의 정서 상태에 대해 모호하고 자신감이 떨어 지고 마치 길을 잃어 버린 사람이라는 느낌. 하지만 때로는 파괴적이고 비 이성적인 행동만 난무해서 종종 ‘문제 행동 청소년’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병원에 끌려 오는 청소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작금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 반응을 볼때 이런 상태와 비슷한 현상들을 심심히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즉 어디에 마음을 기대야 할지 몰라서 즉각적인 만족만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종교생활을 너무 열심히 해서 현실과는 오히려 담을 쌓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민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엄청난 명제 속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그 ‘잘못된 것’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어쩌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아니면 내 자신도 속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끊임 없이 우리 모두를 괴롭힐 수 있으며 만약 무조건 회피만을 시도한다면 작금의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치유’나 ‘화합’의 기회를 제공하기 보다는 오히려 심각한 ‘정서적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어쩌면 1987 이라는 영화가 약간의 힌트를 준다고 볼 수 있다. 1987은 당시의 군사 독재하에서 언론을 탄압하고 일부 그룹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갖가지 폭력과 술수을 부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국민들이 궐기를 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였나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 데모를 하고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어떻게 피해자들이 발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데 아마도 성폭력만 미투가 아니고 이런 폭력에 대한 고발이 지금도 가능하다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건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그 당시에 데모를 하지 않는 사람은 미투에서 이야기 하는 ‘방관자’로 치부될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들은 면제받을 수 있을 것인지 등등에 대한 질문들도 동시에 생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당시에 학교에 나오고 생업을 계속하던 사람들은 그러면 군사 정부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치부해야 할지 아니면 고문치사를 당해서 죽은 학생들을 우리가 찾아 보기 드문 ‘영웅’으로 분류해야 할지가 혼란 스럽다.
한가지 첨언할 것은 우리가 옛날 프랑스 혁명에서 누구를 길로틴에 세울 것이가 왈가왈부를 했던 것처럼 이런 사회 운동이 누구누구의 시시 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사회현상들이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죄책감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관용’ 보다는 ‘처벌’이 강한 동기를 얻게 된다.
여기에 관련해서 최근의 미투 운동을 보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 놈 죽여라’는 심리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투 운동이라는 것이 권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 갑질하는 것의 한 극단적 범죄적 형태라고 본다면 서열사회로 굳어져 있는 한국에서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이유로 어쩌면 ‘이해’나 ‘용서’ 보다는 ‘색출’과 ‘매장’ 등의 아이디어들이 힘을 얻고 대중들은 마치 소떼 몰이이 나선 것처럼 목적 자체 보다는 행위 자체의 흥분에 오버할 가능성도 많다.
과거를 고발하는 영화를 본다거나 과거의 잘못된 일을 들추는 사회운동들은 우리들 중에 누구도 그 과거에서 완전히 단절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의 현재에서 과거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묻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과 나는 별개의 것이고 나와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무조건적인 회피를 반복해서 자신의 과거를 좀 더 관대하게 돌아볼 기회를 상실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폭력이나 성학대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상황을 한번 둘러보고 그런 일들이 지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이슈는 영국에서처럼 일년 정도 걸쳐서 하는 Inquiry를 통한 리포트를 한번 받아 보면 어떨까. 한 쪽은 어떻게 해서든 까발리려 하고 다른 한 쪽은 어떻게든 묻어버리려는 숨박꼭질 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 생기기란 무척이나 요원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987이란 영화를 보고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시절부터 봐왔던 장갑차와 최루탄, 그리고 전경들의 모습을 다시금 영화에서 보면서 우리네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당시 거의 매일 다반사로 일어났던 데모로 인해서 나의 학창 시절이 얼마나 도둑맞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니까 불쌍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힘을 남용하면 어떤 말로를 겪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권선징악’의 엄한 교훈을 내려주려는 시도인지 생각이 되면서도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은 인류 역사상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인지, 과연 인간으로서 멈출 수 있는 현상인 것인지 등등의 의문이 계속해서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방관자든 우리 중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미투와 1987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드는 걱정이 어쩌면 이것을 읽는 독자들이 자꾸만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다. 1987도 그랬고 어쩌면 미투운동도 너무 정치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쉽게 쟁점화 되고 맞는자와 틀린자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처음의 순수한 의도가 훼손되게 되고 또다른 갈등의 씨가 되기 쉽다. 이 글에서 난 이런 어려운 질문에 어떤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 주제들이 가지는 어려움과 복잡성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한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한국인이라면 누가됐든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착잡해지는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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