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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99 현실 왜곡?
코리안위클리  2018/05/09, 04:47:21   
▲ 환자나 보호자를 만난다는 것은 다른 사상이나 믿음의 만남이고 충돌이다. 이들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때론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직업이 정신과라고 볼 수 있다.

제목처럼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아주 심한 정신착란을 겪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쩌면 우리 일상 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나 친지 아니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 마저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현실을 곡해 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이나 주변 환경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며 어쩌면 도를 통한 스님쯤 되어야만 도달하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이른바 성철 스님이 이야기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이야기 하는 경지같은 것….
현실을 왜곡하는 상황에서 많이 연관이 있는 것이 우리의 감정이다. 자신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거나 수치스럽거나 불안할 때 그러한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현실을 비틀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이 만들어진 생존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아픈데도 피하거나 아프게 하는 것을 없애버리려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현실 왜곡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테러리스트로 대별되는 급진주의(radicalism) 사상이다. 이들은 아주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기 전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세뇌(?) 과정을 겪게 되는데 자신의 행동이 더 큰 숭고한 정신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전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며 세상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고 오히려 구원하는 행동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이라면 겪는 죄책감이나 후회같은 감정은 없으며 오히려 투철한 사명감과 오직 맞서서 싸우겠다는 투쟁심으로 불타있다. 그들에게 어쩌면 세상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방해하고 자기 민족의 번영을 저해하는 ‘적’들로 가득차 있고 자신은 그러한 적을 처단하여 자신의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이 보는 현실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현실과는 아주 다르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테러리즘까지는 아니지만 정치쪽으로 가면 상반되는 사상들이 치열하게 부닥치며 갈등을 빚어내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 하는 죄파나 우파가 조금 더 배타적으로 되면 급진적이 되며 한국 신문을 보면 ‘급진 좌파’라는 용어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급진적인 생각의 문제는 극단적이라는데 있다. 또한 세상에 다른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여러 개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도 어렵다. 자신의 생각이 맞고 그렇게 따라가면 원하는 결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다. 하기사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극단적이나 급진적이 될 수 있겠는가.
임상 장면에서도 이러한 부딪힘은 거의 매일 일어난다. 환자나 보호자를 만난다는 것은 다른 사상이나 믿음의 만남이고 충돌이다. 만약에 어떤 정신과 혹은 심리 평가 끝에 어떤 환자가 약물 투여가 필요하다면 당사자나 보호자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찾아본 어떤 블로그의 정보를 아주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말을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문가이고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본인인 것이다.
얼마전 자신이 밥을 먹이지 않으면 아들이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인 자신이 학교까지 따라가서 점심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 엄마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엄마가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아주 오랫동안 그 학생이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당사자인 어머니는 그 버릇고치는 것 보다는 아들이 굶어 죽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만약에 그 어머니가 첫째 아들이 병약해서 일찍 죽고 둘째 아들이 밥도 제대로 못먹어서 건강이 나빠지면 어떡하나 불안해서 그렇게 노심 초사하는 것이라면 이 어머니가 현실을 왜곡한다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첫째 아들이 죽었다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둘째 아들은 자신이 건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지만 현재의 불안을 견뎌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선생님들이나 병원에서 무조건 부모 교육만 시킨다고 해서 그 어머니가 ‘아 그렇구나’라고 알아 듣는 수준이 아니다. 더군다가 그 아들은 태어나서 7년 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데 그 어머니는 곧 자신의 아들이 일어나서 뛰어다닐 거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를 하느님이 용서하면 구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어머니는 ‘정신병자’인가 아니면 이러한 믿음은 ‘망상’인가? 임상장면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오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많고 이러한 분들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때론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해야 하는 직업이 정신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어머니에게 당신의 믿음은 엉터리고 당신 아들은 평생 혼자서 걷기가 힘들고 당신이 아들이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영원히 애기처럼 그 자리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 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이 어머니는 또 자신의 말을 안 믿어 주는 사람 한 명 더 생겼다고 여기면서 나도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날 한 시간 내내 한 것이라고는 이 아들이 이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들어드렸다. 이 아들을 임신했을 때 어머니의 희망은 무엇이었고 또한 걱정한 바는 무엇이었고 또한 태아 용품으로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그리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 엄청난 장애를 가진 것을 보고 어땠는지 등등…. 그 믿음에 도전하기 보다는 그냥 듣기만 했다. 때론 목이 잠기면서 이야기 하는데 집에서 가끔 옛날 생각이 나면 성경을 읽는다고 한다. 이럴 때 의사는 어쩌면 그분의 책장에 꽂혀 있는 성경보다도 훨씬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이 어머니의 믿음에 코웃음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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