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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우이혁 정신과 전문의 글짜크기  | 
청소년과 정신건강 104 인간은 ‘사회적 동물’
코리안위클리  2018/07/18, 07:43:36   
▲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그 사람이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감이 어느 정도인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한국에서 국민학교부터 대학을 다녔고 전문의 까지의 의학 교육 및 트레이닝도 한국에서 받은 한국산 토종(?)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토종이 얼마나 영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생존하고 적응했는지 필자 자신도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다. 물론 설명하기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 과정 자체가 험난했음도 물론이다. 제목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왜 문화충격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의 영향속에서 얼마나 적응하며 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예시가 아닐까 한다.
얼마전에 한 세미나에서 귀에 꽂힌 얘기가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 근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동물이라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주위 환경에서 위협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종(species)들은 멸망에 이르기 쉽고 결국에는 멸종 위기에 몰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사실은 아기(baby)로 태어났을 때 근본적으로 ‘의심’ 덩어리이고 엄마를 비롯한 모든 주변 대상들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에서도 알수 있듯이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근본적으로 인간은 ‘관계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서로에 대한 경계도 아주 심한 동물이다’라는 사실이다.
처음에 이러한 경계의 벽을 허물고 자신이 주변의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지점이 어쩌면 엄마에게서 수유를 받고 안겨서 잠잘 수 있는 경험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시절에 습득한 근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혼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지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제공한다. 정신과나 정신보건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여러가지 이론들이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학설을 제시하지만 돌아 돌아 오면 결국은 이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적응’이라는 부분을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몇십 년을 살다가 영국에 온 사람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을 때와 비슷한 상태를 길게든 짧게든 겪어야 된다. 영국에 도착한 처음 그날 밤 ‘두다리 뻗고 마치 자기집처럼 편안하게 잘 잤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만약에 그랬다면 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될 것이다. 어쨋든 처음의 불안감, 의심 등을 거치고 난 뒤에 익숙함이 따라오고 비로소 ‘적응’이라는 것이 시작이 된다.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여러 가지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만 그 사람이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감이 어느 정도인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아무도 자신에게 손을 뻗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응기간이 길어지거나 생산적인 적응보다는 절박함이나 불안에 부추겨진 ‘거짓 적응’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이민에 따른 문화 충격도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한다면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은 기존에 얼마나 그 개인이 기본적 정신체력이 튼튼한지에 달려 있고 이 기본 체력이라는 것은 정서적 정신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 사람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기본 신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사회생활이 활발하다 아니다’라고만 가지고는 판단 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서 사람을 만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바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이 주변에서 인정이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이 심한 사람도 있다.
우리가 많이 이야기 하는 왕따나 학교폭력 bullying 등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친구가 ‘너 못생겼어’ ‘너 저리가’ 라는 등등의 얘기를 한다면 누구에게나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순간에 피해 당사자가 겪는 충격의 정도는 자신이 ‘누구에게 지지를 받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힘들 때 도움울 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는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즉 자신이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이들이 자신이 곤란한 입장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신뢰가 없는 학생들은 이런 종류의 언어 폭력들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입할 수 있고 그 상처의 정도가 사회적인 신뢰가 있는 학생들에 비해서 말도 못하게 심각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왜 학교나 사회 전부가 나서서 왕따나 학교 폭력을 추방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데도 학교에서 일어난 스트레스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 때문에 학교를 거부하는 아동이 생기는 지 좀 더 이해가 잘 될 수 있다. 물론 이런식의 해석이 학교에게 면죄부를 주고 부모에게 비난을 전가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런 경향이 학생 자체의 내면적인 상태보다는 학교나 사회에서 무엇이든 해야만 된다는 강박을 심어줄 수도 있다.
우리가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 본다면 왜 같은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들이 어떤 사람은 몇 개월이 지난 후 사회복귀가 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극심한 불안과 회피적 행동을 주로 하는 PTSD가 생기는지 조금 더 잘 이해될 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상을 당했을 때 이 외상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는냐가 중요한 열쇠가 된다. 즉 어두운 밤길을 혼자서 가다가 갑자기 나뭇가지를 잘못 밟아서 넘어진 사람은 친구들과 같이 길을 가다가 넘어진 것과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엄청나게 다르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넘어지는 것은 잘못하면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 될 수있고 친구들이 있을 때 넘어지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줄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다음 그 사람이 약간은 불안하지만 다시 밤길을 걷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밤길을 걸어 갈 수 없을 뿐더러 옆에서 사람들이 도와 준다고 하더라도 그 불안을 극복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돌아오는 얘기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애기(social baby) 를 잘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애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라고 이야기 하는게 어떨까 한다. 책을 보면 애기가 보내는 사회적 시그널에 잘 반응하는 엄마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쩜 로봇처럼 하라는 매뉴얼이 되라는 메시지처럼 들리고 차라리 애기가 처음 만나는 대상과 충분한 사람 경험을 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애기나 엄마가 안정적인 환경에 있어야 되고 엄마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한 적이 있어야 된다는 전제가 달리긴 하지만.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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