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전쟁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쟁의 모습을 담은 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두개가 있었는데 한 기둥에는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드리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또 한 기둥은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가다가 루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내려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꾼 것을 조각한 것이었다. 그럼 왜 이 두 기둥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내용을 바치게 했을까? 우선 한 기둥에 조각되어 있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리는 장면은 이스라엘 신앙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배를 통해 이 땅에 썩어질 것을 심고 신령한 것으로 거두는 신앙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갔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정든 땅 친척과 본토와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람에게 있어서 친숙한 환경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연마한 아주 노련한 재주를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갔을 때 이들이 성전에서 부르는 노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라고 하자 이들은 강가에 수금을 걸어 놓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내 오른 손의 재주를 잊을지라도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잊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한탄한 시를 읽어 볼 수 있다.(시137: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아들을 주시기로 약속하시면서 맺은 언약이 횃불 언약인 것이다. 횃불 언약이란 당시의 주종관계를 맺는 언약이었던 것이었다. 서로 언약을 어겼을 때는 제물로 드리는 희생처럼 벌을 받을 것을 맹세하는 언약이었는데…….이 때 횃불을 들고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는 것으로 맹세의 의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송하게도 아브라함을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횃불을 제물 사이로 지나신 것이다. 이 의미는 바로 이 언약이 어겨졌을 경우에 하나님이 그 책임을 지시겠다는 하나의 불평등 조약인 것이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
그 후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다. 100세에 얻은 아들이라 얼마나 좋았을까? 자식이 주는 즐거움은 하늘이 주는 복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마 그 후의 삶은 아브라함에게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맛보게 하신 것이다. 얼마 동안 정말 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어쩌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느껴졌고 바꿀 수 있다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아들을 살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각은 달랐다. 주신 분이 거둘 수도 있고 주신 분은 다시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한 것이다.
이 때는 이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였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제물로 드린다 하여도 다시 하나님께서 아들을 살려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 모리아 산까지 사흘을 걸어 가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자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하여 큰 선물을 준비하셨다. 네가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바쳤으니 나도 나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주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적교환이라고 부른다.
이 땅의 없어질 것으로 드리고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되돌려 받는 축복이 인류에게 임한 것이다. 이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가 이 땅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이 처럼 수지가 맞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예배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드릴 수 있는 숫 양도 준비해 주셨기에 이삭은 번제로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모든 것들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마음만 받으신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드린 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물들은 고스란히 아브라함의 것이 되었다. 이런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고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시고 오르신 것이다. 하나님의 맹약으로 이루어진 예배 속에 드림의 메커니즘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신앙의 진수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의 진수를 아브라함의 예배 속에서 찾은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런던 영광교회 안병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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