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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올 좌표
코리안위클리  2021/01/28, 08:23:41   
8학년,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슬쩍 눈물을 감추며, 셋째가 급하게 학교로 달려간다. 막내는 내 등 뒤로 살며시 돌아나가더니, 쇼파 위에 놓인 여행 가방 한 켠에 작은 종이 편지를 살짝 꽂아 놓는다. 분명, 내 뒤통수 근처에서 비밀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나는 그냥 알 수가 있다. 이제 나도 제법 부모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아 자긍심이 든다. 13학년이 된 첫째는 학교 수업이 없는 Free time을 빙자하여, 굳이 공항까지 동행한다. 이 무모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둘째는 어제 이별 선물로 헌정한 나이키 운동가방을 무슨 훈장처럼 어깨에 둘러매고 있다. 그리고는 씩씩하고, 간단한 작별인사를 건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휘리 릭~ 사라진다. 짧고 투박한 작별 인사들이지만, 오늘 내게 찾아올 행복의 전령들을 난 이미 만난 것만 같다.
만 칠 년 만에 성도들로부터 받은 고마운 선물, 60일의 안식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의 사랑, 나의 반쪽은 이틀 전부터 ‘욕쟁이 할머니’로 변해가고 있다.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그 욕쟁이 할머니가 ‘투덜이 스머프’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안전거리를 유지해 보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우르르 꽝꽝!! 이번에도 허사다.
그런데, 그녀의 이러한 변신이 왜 이유가 없겠는가? 그녀의 복잡한 마음은 영국이 하루마다 표현하는 4계절의 신비함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이 ‘욕쟁이 투덜이 스머프 할머니’에게 그냥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찾아들 때는, 간단한 고해성사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미 나는 공항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그 미안한 마음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공항 대합실 빈자리에 우두커니 남겨지고 말았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이던가! 안식을 위한 여행이 이렇게 시작부터 삐걱거려도 되는 걸까?
저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여 가는 걸까? 시작과 마지막, 만남과 이별은 그렇게 공항이라는 도시의 문화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랜 것 같다. 나만 우두커니 어색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을 뿐이다. 낯설다! 시작과 마지막이 낯설고, 만남과 이별이 어색하며, 무엇보다 홀로 떠나는 외길이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나의 몸을 맡긴 채로, 양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괴상한 기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누군가는 나의 복잡한 마음을 간파했던 것 같다! 이제는 여행가방을 들고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눈짓으로 전달받는다.
혼자 떠나도 되는 걸까? 아이들과 나누었던 투박한 작별 인사, 주인을 찾지 못한 미안함은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흔들고 있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내 안에 계속 공명되어 온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면세점 모퉁이 한 평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 본다. 그런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머리 속 한 켠에 자리잡는 불청객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행복했고 그들 때문에 슬프고 마음 아팠던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미완성의 작품들을 뒤로 하고 스튜디오를 떠나온 지 불과 몇 시간인데, 가슴 깊은 곳에서 출처 모를 죄책감이 나를 죄여온다. 내게도 무화과나무 치마를 입혀 주시려나? 어딘가로부터 들려올 거룩한 음성을 가난한 심령으로 기대해 본다.
하지만, 바라던 그분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다시 동일한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가득 메워 버리고 만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는 곳을 ‘가정’이라고 불러도 좋고, ‘교회’라고 불러도 좋으며, 그곳을 ‘일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무엇이라고 이름 부르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소명’만은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소중한 것 같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이러한 소명을 왜 지금 여기서 깨닫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소명을 이전에도 분명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보다도, 오히려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멀어졌을 때, 오히려 그들로부터 한 걸음 더 물러나 있었을 때, 더욱 명확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삶은 ‘역설’이고, 이별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가 다시 돌아갈 좌 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홀로 떠나도, 그들로 인해서 나는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게 될 것임을 알게 된다. 문득, 인생의 삐걱거림도 그리 문제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자 식어버린 커피 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오히려, 차가워진 커피가 내 영혼의 갈증을 해갈해 주는 것 같아 고맙기만하다. 한 평의 공간을 점거한 채, 제법 긴 시간을 이렇게 보냈는지 건너편 데스크 바리스타의 차가운 시선에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너무 예민한 걸까? 아님, 예리한 걸까? 때마침, 20여 년을 이방인으로 살아도 여전히 낯선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Ladies and Gentlemen, it’s time to go on board~”
이제 진짜 떠나나 보다! 하지만, 분명 여기로 다시 돌아오겠지. 내가 돌아올 좌표!

 


박종범
목사
런던 열방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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