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캉걸루수아끄((Kangerlussuaq) 국제공항. 누크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
|
낯선 시간, 낯선 사람 그리고 낯선 생각들
한국의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탐험대가 출발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나만의 눈으로 그린란드를 만나기 시작했다. 비록 도착한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마음은 처음 그린란드에 내리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베이징을 거쳐 코펜하겐까지 14시간 반, 거기서 또 4시간을 날아 도착한 캉걸루수아끄(Kangerlussuaq)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다시 1시간, 마침내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작고 한갓진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비로소 누크(Nuuk)라는 팻말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시계를 그린란드 현지시각으로 바꾸고 익숙했던 모국어의 감각을 버려야 할 시간이다.
2011년 5월 5일, 나는 그린란드에 도착했다. 한국은 어린이날을 맞았을 테지만, 거대한 해빙기가 시작된 이곳 그린란드에서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가격은 절대 깎아드릴 수 없습니다.” 수도 누크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그린란드 항공사, 거기서 처음 만난 차터(Charter) 담당 안느(Ane B. Jensen)가 말했다. 착하고 순박하게 생긴 77년생 이누이트 혼혈여성이지만 에누리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린란드에 온 목적을 정중하게 설명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그린란드 원정대입니다.” 당신들의 나라, 북극권의 눈 덮인 땅 2,500킬로미터를 종단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들이니 항공기 전세 가격을 조금만이라도 깎아달라고 사정했다.
“물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원정대를 진심으로 돕고 싶군요. 하지만 가격을 깎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도 깎을 수 없단다. 그린란드와 유럽인의 혼혈이라서 그런가? 저 순수한 표정과 순박한 말투만큼 천진하리만치 규정대로만 하려는 태도가 정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린란드에 도착하고 드디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소형비행기인 트윈오터(Twin-Otter)로 탐험대와 장비 일체를 한 번에 이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윈오터는 없고 헬기만 가능하단다. 하지만 헬기는 이동거리가 짧고 탑승인원, 이륙 적재량도 작기 때문에 에어드롭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예산도 그만큼 초과되는 것이다. 아직 탐험비용을 모두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써 활짝 웃으며 다시 부탁했지만, 안느는 더욱 활짝 웃으며 오히려 그런 내가 더 신기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다. 한국식으로 애원했지만 그린란드식으로 거절당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에어드롭 일정과 횟수를 조정하여 다시 가격 협상을 하기로 하고 터덜터덜 그린란드 항공사를 빠져 나왔다.
|
▲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누크의 다운타운 |
왜 Green Land죠?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순간 나는 하마터면 한국말로 행선지를 말할 뻔했다. 이누이트인 택시기사가 나와 같은 강원도 양구 출신이라 해도 믿을 만큼 한국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몇 마디 주고받다가 결국 ‘삼촌’이라 부르며 친해졌다. 나는 그린란드를 찾는 이방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물어 봄직한 질문을 던졌다.
“삼촌, 그런데 어째서 그린란드죠? 초록색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러자 그는 ‘아, 너도 똑같이 묻는구나.’라는 듯이 술술 읊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삼촌이 조카한테 얘기해주는 것처럼.
“옛날 어느 아이슬란드 사람이 북서쪽으로 항해를 하다가 이곳 최남단 지역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그 시기가 아마 여름이었을 것이고, 그가 처음 본 건 초록색 육지였겠지. 그래서 그 사람이 ‘여긴 초록 땅(Green Land)이로구나!’한 것이 그냥 나라 이름이 돼버린 게야.”
그 아이슬란드 사람이 본 것은 아마 ‘빙산의 일각’ 같은 한 뙈기의 초록이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이 넓은 얼음덩어리 땅에 그린란드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실 그린란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누가 맞건 틀리건 중요한 건 오늘날 그린란드에 정말로 초록색이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나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할 것이고, 그들로부터 역사적 사실과 개개인의 다양한 견해를 듣게 될 것이다.
※ 아이슬란드 민담에 의하면 ‘붉은 수염’ 에릭(Eric the Red)이라는 사람이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섬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북유럽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길 바라며 ‘아이슬란드’와 대치되도록 이곳의 이름을 ‘그린란드’라 불렀다. 이후 에릭의 바람대로 노르웨이로부터 수많은 이주민들이 그린란드를 찾았다. 그러나 16세기경 다시 찾아온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이주민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 후 17세기 초, 고래잡이를 위해 몰려온 대규모의 덴마크인들이 그린란드를 장악했다.
|
▲ 누크의 벼룩시장.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와 물개가죽으로 만든 벙어리장갑 등이 진열되어 있다. |
낯선 시간, 사람 그리고 생각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은 오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백야의 새벽, 하늘에는 여전히 태양이 떠있기 때문이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꿈조차 환한 눈 세상이었기에 깨어서도 아직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도착 이틀째, 누크의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눈 덮인 산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집들도 절반쯤 눈에 푹 파묻혀 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꽤 추웠지만 이곳 사람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차 보인다.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지만, 거리를 오가는 그린란드 엄마들의 유모차와 북극 찬바람을 안고 달리는 자전거는 마치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도시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아프도록 부셨고, 그런 눈으로 본 그린란드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인종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시간도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말 낯설다. 마치 눈 덮인 화성에 이주해온 느낌이랄까. 여기서는 나도 이방인이고 그린란딕(Greenlandic)들마저도 한낱 이방인에 불과해 보인다.
한참을 걸어 다운타운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쇼핑센터 앞에 신호등 하나가 눈에 띈다. 아하, 저것이 바로 그린란드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그 신호등이로구나. 사실 거리의 통행량으로 봐서는 굳이 신호등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기가 그린란드의 수도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얀 설원 위에 인구 1만 5천 명이 듬성듬성 살아가는 이곳 누크는 그린란드의 수도이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 또한 그린란드 전체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이기도 하다.
신호등을 건너자 거리 한쪽에 벼룩시장이 보인다. 누크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슈퍼마켓 앞 광장에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오일장’이나 ‘삼일장’이 아닌 ‘매일장’이란다. 물고기나 잡동사니, 혹은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이 아주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꼭 뭔가를 사거나 팔기보다는 그저 반갑게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다시 발길을 돌려 해변에 이르자 산타숍(Santa Shop) 앞에 붉은 색의 거대한 조형물이 눈에 확 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크리스마스카드가 잔뜩 쌓여있는 초대형 우체통이었다. 언제든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그 해 성탄절에 맞춰 제각각 세계 곳곳으로 배달된다고 한다. 나도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5월, 얼음의 땅 그린란드에서 내가 보낸 이 카드도 약 8개월의 시간과 8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나 그리운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린란드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만난 도시 누크, 이 나라에서는 가장 번잡한 곳이라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평화로운 소읍이었다. 처음 느꼈던 모든 낯설음도 어느새 이 도시의 한가로운 여유 속에 서서히 녹아 들고 있다. 구석구석 눈 쌓인 거리를 거닐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이곳은 더 이상 눈 덮인 화성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게 품을 열어주었다.
|
▲ 하늘에서 본 그린란드 피오르드 해변. 그린은 어디 있을까? |
일루리사트로 가는 완행 비행기
도착 사흘째, 누크에서의 일정도 모두 끝났다. 그린란드 정부에 탐험신청서를 제출했고 총기사용 허가와 구조에 관한 서류들은 베이스캠프에서 보내주기로 했다. 이제 원정대의 베이스캠프인 일루리사트로 떠날 시간이다.
일루리사트까지는 2시간 반, 누크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중간에 시골 버스터미널만한 간이공항을 두 번 경유한다. 탑승 정원이 44명에 불과한 소형비행기라서 손님도 갈아 태우고 중간 급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울진에서 강릉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삼척, 동해에 들르는 완행버스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Air Greenland라고 적힌 빨간색 완행비행기가 하얀 설원을 날아간다. 기내에서 뜬금없이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버스 안내양 같은 스튜어디스가 태연히 통로를 오가며 쿠키와 커피를 나눠주기도 한다. 일루리사트에 가까워질수록 바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빙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별자리지도를 펼쳐놓은 듯하다.
드디어 일루리사트 공항에 내렸다. 마중 나온 피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숙소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일루리사트 항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항구는 조금씩 녹고 있었지만, 그 너머 바다 위로는 거대한 빙산이 계절을 가로막고 있었다. 놀라움과 설렘을 안은 채 항구와 빙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크에서부터 시작된 원정은 이제 막 뱃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항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곳 일루리사트에서 우리 탐험대가 거쳐야 할 여정들은 그 뒤에 첩첩이 늘어선 빙산의 산맥들을 헤쳐 나가는 것만큼 험난하리라.’
2011년 5월 7일, 나는 그렇게 일루리사트에 도착했었다.
글 박 대 영 (공연예술기획자, 문화탐험가)
nanoqpark@naver.com
2011년 그린란드 탐험대의 베이스캠프 매니저로 누크, 일루리사트, 까낙 등지를 직접 오가며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취재하고 북극권의 자연을 영상에 담았다. 지난 7년간 공연기획자로서 세계 50여 나라와 도시에서 동시대의 문화를 탐험한 바 있고, 현재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 코리안위클리(http://www.koweekly.co.uk),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