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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①안익태 선생의 인생과 발자취
코리안위클리  2004/05/13, 04:34:44   
코리안위클리가 주최하는 코리안환타지 연주회가 7월1일 크로이든 페어필드 콘서트홀-Fairfield concert hall에서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한영수교 12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의 대표곡 <한국환상곡>이 70여명의 연주자와 250여명의 합창으로 연주된다.
본지는 연주회의 이해를 돕기위해 작곡가 안익태 선생과 <한국환상곡>에 대한 음악평론가 한상우씨의 글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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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나를 환영하는데 왜 내 조국에는 내가 설땅이 없단 말인가 애국가를 잘못 작곡해서인가?”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선생은 1906년 12월 5일 여관을 경영하는 중류가정의 셋째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안선생은 6세 때에 동네의 예배당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에 이끌리어 집안 몰래 교회에 나가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고 특히 교회에서 풍금(올겐)을 만져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 중요한 동기중의 하나였다.
또 하나의 동기는 이듬해에 큰형이 동경에서 사다준 바이올린이었는데, 이 바이올린은 그로 하여금 더욱 음악에 매혹되게 했을 뿐 아니라 6개월을 연습한 후에는 찬송가를 연주할 수 있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1914년 평양 종로보통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취주악대에서 부는 트럼펫 소리에 매료되어 아버지를 졸라 트럼펫을 손에 넣게 되었고 그후부터는 학예회때 마다 으례히 한손에는 바이올린을 또 한손에는 트럼펫을 들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1918년 숭실중학에 입학하자 교장은 그의 음악적 재능에 탄복한 나머지 곧 바로 관현악단에 입단시켰고 2학년이 되어서는 음악부장이 되어 매주 한번씩은 집에 있는 축음기를 학교로 가져가 음악감상회를 여는 등 그의 음악활동은 열도를 더해갔다. 이러한 안선생의 음악적 재능을 본 형님은 이번에는 ‘첼로’를 사다주어 여름방학 때에는 서울로 올라와 카나다 선교사로부터 첼로의 주법을 익혀 첼로까지 연주하게 되자 그의 인기는 솟을 대로 솟아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성가를 연주하는 등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안선생은 어릴때부터 자존심과 정의감이 강해 이러한 그의 의지는 숭실학교에서 당시 친일교사를 배척하는 주동자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학처분을 받게되자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나서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안선생은 왜경의 쫓김을 받게되었고 결국 당시 숭실학교 교장이었던 ‘마우리’ 박사의 도움으로 평양기독병원에 입원하여 일단 위기를 넘긴 후 다시 박사의 주선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안선생이 영국의 민요 ‘올드랭사인’의 곡조에 부쳐 노래한 애국가를 처음 접한 것이 바로 3.1운동 때였고, 안선생은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이때의 감동은 후일 그로 하여금 애국가를 작곡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에 도착한 안선생은 형님과 함께 기거하면서 중학교에 편입하고자 했으나 요주의 인물이란 딱지가 붙은 안선생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사설강습소에서 공부하다가 1921년에야 동경 세이소꾸 중학교에 음악특기자로 입학이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후 파리에서는 안선생의 지휘로 ‘티보’와 협연무대를 가졌으니 안선생은 그 당시 동경 연주를 회상하면서 ‘티보’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에서 5학년을 마친 안선생은 동경 국립음악학교에 입학해서 본격적인 음악공부에 전념케 되었는데 동창생으로는 김원복, 홍성유 등이 있었다.
음악학교 재학중에는 지도교수의 주선으로 일본 각지에서 첼로 독주회를 가졌고, 이 독주회는 그로 하여금 첼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했을 뿐 아니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갖게 했다.
음악학교 예과 1학년 여름방학에는 고국에 돌아와 평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독주회를 개최했고, 이 독주회를 통해 그는 당시 서울과 평양에서 Y.M.C.A 총무로 활약하던 이상재, 조만식 선생과 알게 되어 이들의 뜨거운 애국심은 일생을 두고 안선생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1928년 본과 2학년이 될 무렵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가세는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학비를 염출할 길이 없게 되자 밤이면 동경회관이라는 양식집에 나가 첼로를 연주하여 돈을 버는 생활을 1년 동안 계속했다.
안선생은 그후 30년이 지나 귀빈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동경회관의 만찬회에 참석했을 때 만감에 사로 잡혔고 더욱이 30년전 같이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백발이 성성한 채 아직도 연주하는 것을 보자 말없이 300불을 손에 쥐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 모습을 느끼게 하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안선생은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리던 조국은 일제의 학정이 점점 심해져 숨쉴 곳도 없었고 평양에서 가지려던 독주회마저도 왜경의 방해로 수포로 돌아가자 1930년 조국이 독립하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미국으로의 유학길에 올랐다.
이로부터 안선생은 조국을 잃은 보헤미안이 되었고 실제로 1961년 국제음악제를 주도한 후 자신에 관한 모함을 듣고는 “세계는 나를 환영하는데 왜 내 조국에는 내가 설땅이 없단 말인가 애국가를 잘못 작곡해서인가?”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다음주 계속>


안익태씨와 그가 작곡한 애국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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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보
ㅇ1906. 12. 5 평양출생
ㅇ1914 평양보통학교 입학
ㅇ1918 평양 숭실중학교 입학
ㅇ1919 3·1운동관련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함
ㅇ1921 일본동경 세이소꾸중학교 입학
ㅇ1926. 4 일본 동경국립음악학교 입학
ㅇ1930 일본 동경국립음악학교 졸업
            미국 신시내티 음악원 입학,
            미국 시립 교향악단 입단
ㅇ1932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 입학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원 입학
ㅇ1934 필라델피아 심포니클럽 지휘자  
           앱나키캠프 관현악단 지휘
ㅇ1935. 11. 애국가 작곡
ㅇ1936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바인가르트너 사사
ㅇ1937. 6. 미국 템플대학교 음악대학원
            졸업 (음악학 석사학위 취득)
ㅇ1937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음악학교
           특별연구생 입교(코다이 사사)
ㅇ1938. 2.  더블린방송교향악단 객원지휘.
            <한국환상곡> 초연
ㅇ1939 부다페스트 국립교향악단 지휘
ㅇ1940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ㅇ1940~44 세계 주요 교향악단 지휘
ㅇ1944 스페인 바르셀로나 교향악단 지휘
ㅇ1946. 7. 5 스페인 백작의 딸
           ‘로리타 탈라벨라’와 결혼
ㅇ1946 스페인 마요르카 교향악단 창단
           상임지휘자 취임
ㅇ1947 영국 런던 로얄필하모니 지휘
ㅇ1949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환상곡 지휘(미국의 소리방송
           을 통해 고국에도 방송됨)
ㅇ1955. 3. 문화포장 받음
           (25년만에 첫 번째 고국방문)
ㅇ1959. 5.30 마요르카 교향악단
            고별 연주회
ㅇ1959. 7. 6 영국 런던 필하모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ㅇ1962. 5. 제1회 국제음악제 지휘
            (서울 시민회관)
ㅇ1965. 7. 4 영국 런던 뉴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
ㅇ1965. 9. 16 스페인 바로셀로나
            병원에서 별세
ㅇ1965. 10. 15 문화훈장 추서
ㅇ1977. 7. 유해봉환(국립묘지
             제2유공자 묘역에 안장)
<안익태 기념재단)
(http://www.ahneakt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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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5-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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