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수선공에서 전세계 수 많은 여성의 꿈을 디자인하기까지 ‘이탈리아 구두의 명문’ 성공신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출생한 페라가모는 출생지만큼이나 아름답고 예술적인 구두 디자이너로 잘 알려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모든 유명인사들의 시작의 발판이라도 되는 듯 그 역시 구두를 사신지 못할 만큼 가난하여 6살 때부터 여동생들의 신발을 직접 만들어 주면서부터 구두공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생계 유지를 위해 어린 나이에 작은 구두샵을 경영하였으며 16살때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하여 산타 바바라의 한 영화 스튜디오 옆에 작은 구두 수선집을 오픈했다.
운 좋게 당시 미국의 영화 산업은 성화를 이루었으며 페라가모는 영화의 소품으로 쓰일 수 있는 수제화에 주력하면서 소피아 로렌, 오드리 햅번 등 당시 톱스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구두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The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 해부학과에 진학하여 과학적인 발의구조 연구로 착용감이 최상인 구두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이에 화려한 디자인까지 더하였다.
이후, 1927년, 고국인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와 플로렌스에 성을 개조한 새로운 샵을 오픈하여, 세계 유명인들이 제트기를 타고 방문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1960년 세상을 떠났으며 생전에 만들어낸 구두는 만 종류 이상이며 고급 구두를 만들기 위해 전 생산 과정을 수작업하여 세계에서 몇 명 되지 않는 구두의 장인으로 그의 이름은 기억된다.
어린 구두공의 우연치 않은 영화사와의 인연으로 이태리 구두패션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남게 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예술적인 세련됨과 디자인으로 유난히 편안해서 한 번 신으면 매니아가 되고만다는 구두를 창조하여 신발이라는 특수 분야를 전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새겨 넣었다.
현재 살바토레 페라가모 기업은 그의 와이프 지휘아래 6명의 자녀가 총괄하는 가족 운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구두를 중심으로 핸드백, 액세서리 등 다양한 소품들을 선보여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또한 모던하고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여성복과 비즈니스 정장을 중심으로 클래식한 남성복까지 전개하여 세계적 패션브랜드로의 명성을 쌓고 있다.
그들은 토털 브랜드를 지향하면서도 페라가모 사의 큰 성장을 가져온 것은 역시 그가 생존해 있을 때와 같이 엄격히 관리되는 구두로, 구두 부분에 가장 큰 비중을 두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구두는 현대사회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표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 여성들의 쇼핑 1순위 아이템으로 꼽힌다. 실제로 브랜드 구두는 의상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살이 찌건 안 찌건 구두만은 몸매에 상관없이 맘에 드는 예쁜 것을 살 수 있다는 다소 재밌기도 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구두는 스타일링의 마침표를 장식하는 토털룩을 지향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 논리를 이용한 페라가모 사의 상업적인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죽은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구두가 명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뛰어난 창의력이 조화한 그의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 생각된다.
▲ 영화 <칠년만의 외출> 중, 마릴린 먼로가 지하 통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흰 원피스를 손으로 누르는 장면에서 그녀의 각선미를 두드러지게 해주었던 하이힐이 바로 페라가모의 작품이다.
차은정
영국 Surrey Art Uni,
Fashion Promotion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