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
밥 짓는 시아버지는 용서할 수 있어도, 예쁜 그릇 사 모으는 시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다!
지난번 서울에 갔을 때도, 남대문 혼수그릇 도매상가를 이 잡듯이 뒤져 ‘직사각형 회접시를 샀는데 정사각형 회접시를 못 산 게 평생의 한’이라는 시아버지의 한풀이를 해드려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선물을 개봉하자, 당신 선물로 산 은수저 한 벌과 회접시는 옆으로 밀쳐둔 채 우리 부부용으로 산 목기주발과 수저세트를 조물딱대시며 군침을 흘리시는 게 아닌가?
시아버지가 눈독 들이는 물건을 안 주고 배겨낼 수 있는 며느리는 없을 터! 얄미운 시누이 같은 시아버지한테 눈물을 머금고 양보하고야 말았다.
정신수양과 극기훈련을 통해 칼과 프라이팬 사 모으는 것 까진 겨우 봐줄 만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예쁜 그릇 찜해놨다가 세일 첫날 시아버지랑 손잡고 상점 문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을 땐, 친구들과 자주 했던 일을 태평양 건너 캐나다에서 시아버지와 다시 하고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랴.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시아버지를 회춘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쁜 그릇 사 모으기’인 것을. 게다가 예쁜 그릇을 손에 넣은 날이면 신접살림 장만한 새색시처럼 홍조 띤 얼굴로 하루 종일 콧노래가 떠나질 않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오, 메르드!(영어의 shit에 해당)도 외치지 않으시니,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성심성의껏 협조해드리는 게 장땡 아니겠는가?
그러나 도를 넘는 취미생활은 결국 화를 부르는 법. 어느 날, 이미 40개가 넘는 칼을 품고 계시면서도 ‘칼집과 칼갈이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홈쇼핑 선전에 넘어가 또 주문하겠다는 시아버지와 이를 말리는 어머니 사이에 한판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칼집과 칼갈이’에 눈이 뒤집힌 시아버지를 말릴 자 그 누구랴. 결국 ‘어머니의 화장품 주문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취미활동도 존중해달라’는 시아버지의 이유 있는 항변에 무릎을 꿇은 어머니는 ‘주문 불간섭 협정’에 손도장을 눌러야만 했다.
시아버지는 수집뿐만 아니라 보호관리에도 빈틈이 없어, 모든 칼에는 당신이 손수 만드신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고, 프라이팬에는 코팅 보호 차원에서 헝겊을 깔아놓으신다. 특히 햇볕 좋은 날이면 불심검문에 들어가 코팅에 난 흠집을 잡아 내시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으려면 이상을 발견한 즉시 신고해야 하고 설거지 후엔 반드시 시아버지께 ‘확인 필’을 받아놔야만 뒤탈이 없다.
남의 취미생활을 갖고 욕하긴 뭐하지만, 별나다 별나다 이렇게 별난 양반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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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북 출판 / 전희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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