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펜타인 파빌리온, 건축, 예술, 그리고 대중과의 만남
열기구를 닮은 파빌리온을 디자인한 건축가 렘 콜하스의 유쾌한 상상
지난 2000년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이면 켄싱톤 가든(Kensington Garden) 내에 위치한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는 갤러리 옆의 잔디 마당에 이벤트의 일환으로 파빌리온(pavilion)을 건립하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간단히 설명하면, 파빌리온은 전시나 행사를 위하여 특별히 제작한 임시 구조물, 혹은 가설 건축물을 일컫는 말로써 항구적인 건축물이 아니다. 올해는 7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설치될 예정이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건축을 포함하여 문화,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파빌리온의 디자인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맡아오고 있으며, 매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 명성에 걸맞게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디자인을 했다. 렘 콜하스는 한국에서는 <삼성 리움 박물관>, <서울대 미술관>을 디자인한 바 있고, <시애틀 시립 도서관>, <베를린 네덜란드 대사관>, <포르투갈 포르토 콘서트 홀> 등의 작품들을 최근 1, 2년 사이에 완성하여 건축 관련 세계적인 상들을 휩쓸고 있다. 그런가 하면, 탁월한 글재주와 언변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 방식 등등으로 인하여 건축분야에서 그의 인기는 어지간한 연예인을 능가할 정도이다.
독자들 중에는 켄싱톤 가든 근처를 지나다가 언뜻 ‘열기구(balloon)’를 닮은 독특한 모습의 구조물을 보았을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 렘이 디자인한 올해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다. 멀리서 파빌리온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엄마와 아이가 켄싱톤 가든에 ‘펀페어(funfair)’가 들어왔냐고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필자에게 물었을 정도로 렘이 디자인한 파빌리온은 마치 놀이기구를 연상케 한다. 뒤짚어서 말하면 그 만큼 전시와 행사를 위하여 디자인된 보편적인 파빌리온과는 많이 다르다. 이미 언론에서는 켄싱톤 가든의 ‘기구’, ‘달걀(egg)’, ‘알(ovum)’ 등의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렘이 들으면 조금 불쾌하겠지만 대머리인 그의 모습을 닮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체적으로 메탈과 플라스틱류의 가벼운 재료를 조립하여 원형의 전시공간을 만들고 달걀 모양의 기구로 지붕을 덮었다. 그런데 파빌리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 지붕은 헬륨과 공기로 채워져 있으며 자연스럽게 날씨에 따라서 크기가 변한다. 흐린 날에는 움추려 있다가 화창한 날에는 헬륨 가스가 팽창하여 최고 24m까지 부풀어 오른다. 당연히 요즘과 같은 런던의 날씨에는 항상 터질 듯이 팽창해 있다. 런던이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그는 런던의 AA School에서 건축공부를 했다) 렘이 이것을 염두에 두었음에 틀림없다. 밤이 되면 파빌리온의 모습은 더욱 두드러진다. 마치 갤러리 뒤편에 솟아 올라서 갤러리를 밝히는 달이나 발광체 혹은 보호막 같기도 하고 혹은 우주선 같기도 하다. 한편, 내부에 들어서면 반투명의 플라스틱과 메탈이 주는 가벼운 느낌과 기구모양의 천장으로 인하여 건물이라기 보다는 마치 떠있는 혹은 움직이는 물체에 들어와 있다는 독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결국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켄싱톤 가든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서 날씨와 밤낮의 변화에 따라서 모습을 바꿔가며 관람객은 물론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구조물임에 틀림없다.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이 파빌리온을 매년 건립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독창적인 건축물을 매개로 하여 예술과 대중을 보다 가깝게 만들고자 함이다. 평소에는 카페로 이용되는 파빌리온 내에서는 3개월간 다양한 전시, 영화 상영, 세미나, 토론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진행된다. 물론 누구나 제한 없이 편안하게 관람하고 또한 참여도 할 수도 있다. 현재는 독일의 토마스 디만드(Thomas Demand)의 ‘월페이퍼(Wallpapers)’ 전시가 진행 중이다.
울창한 자연을 벗삼아 켄싱톤 가든을 산책하고 서펜타인 파빌리온에 들려서 차 한잔 마시며 미술품과 영화감상을 하면서 렘 콜하스의 유쾌한 상상을 경험해 보는 것도 무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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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런던대학 튜터)
약력 :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디자인 스튜디오 O.N.E 소장 / 건축 비평가
영국 바쓰대학(University of Bath) 건축학 박사과정 수료
현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도시계획학과(Cities Programme) 튜터
저서 : <공간사옥>(공저, 2003),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