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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한 영국문화읽기 23 - 토버모리
코리안위클리  2007/04/26, 05:41:25   
동심의 항구 마을로 탈바꿈한 토버모리(Tobermory)
쇠퇴하던 마을 활성화위해 건물마다 독특한 캐릭터 부여
BBC 어린이 프로그램 배경 선풍적 인기 몰이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에서 전설의 켈트족 전사 윌리엄 월레스가 엄청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비가 아닌 자유를 달라고 외쳤던 투쟁의 땅인 스코틀랜드는 과거 수백 년 동안 영국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으나 현재는 안정된 독립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나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인 70도를 상회하는 위스키만큼이나 여전히 강한 민족성과 독특한 문화로도 유명한 스코틀랜드는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될 만큼 장엄한 대자연에 둘러 싸여있다.
스코틀랜드의 북동쪽에는 700여명의 주민만이 거주하는 조그만 항구마을인 토버모리가 있다. 이 마을에서는 BBC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발라모리(Balamory)가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고 이 때문에 이제는 토버모리 보다는 발라모리로 더욱 알려졌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특정 마을을 배경으로 제작하는 것이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닐 듯싶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안에 배경으로 등장한 토버모리의 모습이 유럽 어느 유명한 마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점이고 이것이 도시를 새롭게 탈바꿈하고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항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작은 집들로 둘러 쌓인 토버모리는 어업을 대체할만한 일거리가 없었기에 쇠퇴 일로에 있었다. 마을 자체가 워낙 작은 데다가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도 많지 않았기에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상점, 식당 등의 상업시설들을 중심으로 마을의 건물들을 빨강, 파랑, 노랑 등의 페인트로 칠하여 각각의 건물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했다. 물론 BBC TV 프로그램인 발라모리의 제작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단순히 집뿐만이 아닌 생활소품에서 옷, 가구, 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동일한 개념을 적용했다. 파란색 집에 사는 사람은 파란색 옷을 입고, 파란색 가구를 사용하고, 파란색 차를 타고, 파란색 우산을 쓰고, 파란색을 신발을 신는다. 어찌 보면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 하나의 원색으로 단장한 크고 작은 다양한 모습의 집들과 원래 지니고 있었던 항구마을의 빼어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찬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제작된 254개의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흥미거리만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매 회마다 역사, 문화, 예술 등을 중심으로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흔히 도시를 사람에 비유하곤 한다. 그 이유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쇠퇴하게 마련인 것이 도시나 사람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도시의 경우, 과거 수백 년 혹은 그 이전부터 유지해 오던 산업방식의 쇠퇴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도시 전체가 급격히 쇠락하게 됨을 동서를 막론하고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도시의 특성화를 어떤 방식으로 성취할 것인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21회에 소개한 헌책방 마을 헤이 온 와이와 토버모리는 도시 변화에 대한 작지만 의미 있는 사례들이다.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토버모리는 디즈니랜드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인기가 획기적인 놀이시설에 의해서도 아니고, 대단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의해서도 아니다. 기존의 항구마을을 어린이들의 꿈과 동심이 살아 넘칠 것 같은 아기자기한 장소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광산에서 문화도시로 변신한 스페인의 빌바오, 첨단 연구도시로 변신한 프랑스의 앙티 폴리스 등을 비롯하여 유럽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재개발에 성공한 도시들이 있다. 규모나 경제효과 등의 측면에서 이러한 도시들에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꿈과 낭만이 가득한 마을로 변신한 쇠퇴한 항구마을 토버모리 역시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성공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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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런던대학 튜터)

약력 :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디자인 스튜디오 O.N.E 소장 / 건축 비평가
         영국 바쓰대학(University of Bath) 건축학 박사과정 수료
         현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도시계획학과(Cities Programme) 튜터
저서 : <공간사옥>(공저, 2003),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공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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