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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는 매력적인 거리가 많이 있지만 코벤트 가든(사진 왼쪽)과 사우스 뱅크에는 거리 공연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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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의 잔잔한 매력에 빠져보자 작년 5월에 본 연재를 시작해서 약 9개월 동안 진행했다. 첫번째 글을 쓰면서 런던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핵심은 ‘거리’라고 설명했다.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에 몇몇 독자들로부터 의견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중 공통적인 내용이 한 가지 있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해 보면 런던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멋진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말에 100% 동감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에 가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감동적인 거리들이 많다. 이 때문에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목을 여러 차례 수정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매력적인’ 이라는 용어로 결정을 했다. 런던의 거리는 최고로 아름답거나, 최고로 감동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최고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런던 거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바로 런던 거리에는 런던만의 독특한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거리에 담긴 역사와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거리는 혈관에 해당한다. 혈관이 우리 몸의 구석 구석에 피가 흐르도록 하듯이 거리는 사람들이 도시 곳곳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거리는 단순히 이와같은 기능적 역할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거리는 장소와 장소 혹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기에 앞서서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죽은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도시가 죽은 도시일까?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가 활성화되지 않은 도시다. 사람들이 거리를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거리는 당연히 활성화될 수 없으며, 도시는 필연적으로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뒤집어서 말하면 좋은 도시란 좋은 거리에서부터 출발한다.
도시라는 생명체를 유지하는 거리가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은 당연하다.
런던 거리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는 런던이 살아있고 매력적이라는 증거다.
필자가 한국의 저널에 원고를 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원고에 넣기 위하여 보낸 사진에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슬리거나 건물을 일부 가린다는 이유로 교체하자는 것이었다. 일견 타당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는 조각이나 마네킹이 아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다. 거리는 도시라는 생명체를 지탱하는 핵심이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 당연하다. 본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에 글과 함께 실린 사진을 관심있게 살펴본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게다. 대부분의 거리가 사람으로 북적인다. 런던이 살아있는 도시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증거다.
거리가 없는 도시는 없다. 그러나 매력적인 거리를 지닌 도시는 생각보다 적다. 더불어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화려한 시설이나 장식에 의해서 매력적인 거리가 조성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에 거리 포장, 벤치, 가로등, 사인 보드, 조각물 등의 디자인에 집중한다. 보기 좋은 거리일 수는 있지만 매력적인 거리일 수는 없다. 우리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수많은 거리와 만나게 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만큼 거리는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매력적인 거리가 필요하면서 동시에 중요한 이유다.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에 익히 알고 있는 거리도 시간을 내어 여러 차례 가보았다.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런던 거리는 단숨에 관심을 사로 잡지는 않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예년 보다 추운 겨울이기에 몸이 조금 더 움츠려들지 않았나 싶다. 봄의 문턱에 다가선 지금, 독자들에게 런던 거리를 거닐며 그 잔잔한 매력에 빠져보기를 귄한다. 20회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관심을 가져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런던정경대학 튜터)
약력 :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디자인 스튜디오 O.N.E 소장 / 건축 비평가
영국 바쓰대학 건축학 및 런던정경대학 도시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저서 : <공간사옥>(공저, 2003),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공저, 2006)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활동 : 현재 디자인과 강의를 하고 있으며 조선일보, KBS, SBS의
디자인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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