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3대 종교를 든다면 개신교와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불교 그리고 이슬람교(마호메트교)를 들 수 있다. 불교라면 부처를 믿는 종교요 마호메트교는 마호메트를 믿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기독을 믿는 종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비기독교 신자들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이 기독(基督)이라는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있는 분들이 거의 없는 데 있다.
‘기독’의 의미는?
그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基督’ 이라는 한자의 의미에 매달려보아도 이해가 어렵다. 오래 전부터 내 주변에 있는 목회자나 신학교수에게 ‘기독’의 어원을 물어보았으나 한결같이 확실한 설명보다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것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무릇 종교의 이름은 그 종교의 핵심을 의미 또는 상징하는 명사 혹은 고유명사로 표시되어 그 이름만 듣거나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그 종교의 정체성을 쉽고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가 그렇고 마호메트교가 그렇다. 그렇다면 ‘기독’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어로 기독교는 Christianity 이고 기독교신자는 Christian 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핵심은 Christ 즉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기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고 부른다면 한결 이해하기도 쉽고 부르기도 쉽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독’은 어디서 나온 말이며 왜 오늘날까지 이렇게 난해한 어휘를 우리가 계속 사용하고 있는가?
실마리를 풀어보자. 19세기 말부터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직접 들어오기 전까지는 중국을 경유하여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17세기 초부터 중국을 통한 천주교의 소개가 간헐적으로 있었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야소교(耶蘇敎)’ 즉 예수교라고도 하다가 20세기 초반부터는 基督敎라는 이름으로 확고부동하게 정착되었다. ‘기독’이라는 의미를 ‘基督’이라는 한자적 의미에 중심을 두면 실마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자고로 의미를 압축하여 큰 뜻을 글자 하나로 표현하거나 외래어를 비롯한 긴말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하는 데에 달인들이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라는 이름을 첫 글자 ‘샌(桑)’으로 압축하여 ‘상’항(‘桑’巷)이라고 부르고 도이칠란트라는 국명이 너무 길므로 처음 두 글자 ‘도이’에 대한 중국발음으로 제일 근접한 ‘독일(獨逸)’로 불렀다. 아메리카라는 국명은 첫 글자 ‘아’가 모음이고 또 액센트가 ‘메’에 있는 관계로 두 번째 글자 ‘메’를 중국어발음으로 ‘미(美)’로 압축하지 않았나 싶다. 이슬람교도 첫 글자 ‘이’를 따와서 중국어로 ‘이’발음이 나는 ‘회’교(‘回’敎)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러한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基督’이라는 말도 이러한 차원에서 중국인들이 지은 조어(造語)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인들도 기독교를 그리스도교로 본 것 같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라고 해야겠는데 이름이 좀 긴듯하므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다른 말과는 달리 자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종교의 간판언어라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가볍게 하나의 글자로 줄이지는 못하고 ‘그리스도’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즉 ‘그’와 ‘도’를 따서 ‘그도교’로 부르기로 결정하여 이에 가장 근접한 중국어발음으로 ‘基督敎’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해석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나 혼자의 추리이기 때문에 아직 정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추론이 만약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기독’이라는 문자자체의 의미전달기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고로 우리의 선배들은 한자숭배사상에 젖어있었다. 한자를 모르면 지식층에 속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한자사용을 자기들의 지식수준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기독교’라는 용어를 채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이러한 잘못된 언어유산을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라 부르자
‘기독’이라는 단어는 한자의 권위에 안주하던 시대조류로 인하여 어문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도입된 부적절한 어휘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난해한 성경을 쉬운 말로 바꾸는 작업은 진행되어왔고 찬송가도 개편하였다. 그러나 정작 간판중의 간판이요 상징중의 상징인 기독교명은 아직도 ‘기독’ 이라는 아무런 생명력 없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되고있다. ‘그리스도교’라고 통일하면 그렇게도 좋을 일을 왜 아직도 의미불명의 용어로 밖엔 볼 수 없는 이두문자형식의 ‘기독’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교도 좋고 전도도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 간판을 바로 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이러한 잘못된 언어유산의 청산을 언제까지 계속 미루기만 할 것인가? ‘그리스도’라는 신성한 이름을 경솔하게 ‘그도 (基督)’로 압축한 중국인들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그것을 무조건 따라가는 우리에게 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기독’으로 호도되고있는 현실을 무의식으로 받아들이고있는 우리는 어쩌면 무작위에 의한 독신죄(瀆神罪)를 범하고있는 것은 아닐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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