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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 말없는 두 강태공…
코리안위클리  2005/06/09, 04:41:10   
말없는 두 강태공…        

우리 어머니는 이제는 자랄만큼 자란, 소위 ‘장가보내도 될 만한’ 이 아들내미를 보시면서 가끔 작은 한숨과 함께 ‘너는 나중에 늬 아빠처럼 재미없는 남편은 되지 말아라’라며 절반쯤 농담 섞인 말씀을 하시곤 했다.
평소 무뚝뚝하시고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아 항상 감정표현에 서툴렀던 아버지, 게다가 결혼 후 몇 년 간 아버지를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나 보내시고 홀로 누나를 낳으셨던 어머니셨기에 더욱 부부사이의 애틋한 정에 목말라 하셨는지도 모른다.
우리 세남매 덕분에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살아오신 어머니는 벌써부터 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이 걱정스러우신가 보다.
나도 어릴 적 적지 않게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오며 ‘나는 나중에 정말 유머러스하고 재밌는 남편이자 아빠가 될거야’라는 얄궂은 꿈을 갖고 커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는 정말 좋은 아버지로서 많은 노력을 해오셨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당신 자식들에게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고자 항상 이것저것 준비하는 분이셨다. 토목과를 졸업하셔서 뭔가 만들기 좋아하시고 유난히도 손재주가 뛰어나셨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팽이를 깎아 주시고, 연을 만들어 한강 둔치에서 같이 날리기도 하고, 심지어 못 쓰는 스케이트 날을 이용해 손수 썰매도 제작해서 얼음 낚시를 갈 때면 같이 타고 놀기도 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머리가 좀 컸다고 점차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식구들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도 줄어들면서 가족들은 각자 자기만의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름 휴가 때가 되어도 모든 가족이 동참하는 즐거운 바캉스를 꿈꾸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우리 세남매는 마지못해 의무감에 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결국 친구와의 약속으로 빠지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소원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한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낚시였다.
밤낚시, 얼음낚시, 바다낚시 할 것 없이 낚시를 즐기셨던 아버지는 한달에 한두 번씩은 꼭 낚시를 가셨고 처음에는 가족 모두 따라나섰던 그 행사에 언제부턴가 나와 아버지만 남게 되었다.
낚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누나와 남동생, 그리고 낚시를 가도 식사와 뒤치닥거리만 하셨던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낚시 자체를 참 좋아했었다.
낚시를 가기 전날이면 집에서 낚싯대를 손질하고 아버지와 함께 길다란 실린더 안에 찌를 띄워보며 납덩이의 무게를 맞춰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강태공은 바늘 없이 세월을 낚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매운탕거리에 그 목적이 있었던터라 ‘만약’을 대비하여 출발 전 슈퍼마켓에서 냉동된 생선을 한 덩이 사다가 아이스박스에 넣는 것도 내 몫이었다.
초겨울 울퉁불퉁한 자갈 위에 텐트를 치고 동사직전까지 덜덜 떨어가며 침낭을 뒤집어쓰고 밤새 낚은 것이 피래미 열댓 마리뿐이었어도 나는 낚시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저 ‘씨익’ 웃기만 하시고 그 미소마저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겉으로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래도 장남이라는 녀석이 항상 따라다니며 같이 낚시를 즐기는 것이 무척이나 유쾌하셨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철이 좀 늦게든 탓인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같이 낚시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 한 번 제대로 못 나누어 본 것이 아직도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둘이 나란히 고요한 강가에 앉아 잔잔히 흔들리는 물위에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찌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항상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워낙 조용하신 당신 성격 탓에 몇 번이나 차마 입을 여시기를 망설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생활에 빠져 아버지와의 낚시 여행은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몇 번인가 친구분들이나 다른 누군가와 낚시를 갔다오시고는 나와 마찬가지로 거의 낚시를 가지 않으시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낚싯대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고 아버지도 몇 달간의 지방 출장을 가 계시느라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게 되기를 1년여, 얼마 후 나는 입대를 했고, 제대 후 또 다시 이곳 런던에 오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좀처럼 다시 가까워지질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집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께서 문득 생각나신 듯이 ‘아빠가 너 런던에 보내 놓으시고 참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는 말씀을 지나가듯 하신 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또 한 번 자식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준 것이 마냥 즐거우신 게다.
나는 이제 다시 생각한다. ‘과연 나는 나중에 내 아버지처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어쩔 수 없는 부전자전의 표상인지라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 한 번 제대로 못해본 무뚝뚝한 아들이었기에 어머니는 항상 그게 불만이셨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집으로 달려가 먼지 쌓인 낚싯대를 트렁크에 싣고 아버지와 함께 산들바람 부는 강가에서 다시 한 번 찌를 드리우고 싶다.
비록 또 다시 서로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다 하더라도 이번엔 이심전심 속에서 아버지의 미소를 보며 나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며….

글 - 안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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