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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교민의 영국 정착과 발자취 - 채우병
코리안위클리  2003/01/31, 03:33:17   
한국인의 미주 이민 역사가 올 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에 정착한 많은 한국인들은 온갖 역경을 딛고 수적 증가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사들을 배출, 코메리칸 성장사와 민족 승리의 표상을 보였으며 다른 각국에 정착한 동포들보다 으뜸으로 국위선양에 앞장서 나가고 있다.
1903년 1월13일 Gaelik호를 탄 102명이 사탕수수 재배노동 취업차 하와이 호놀룰루에 첫발을 디디면서 미주 이민의 역사를 시작, 한 세기가 지난 지금 107만6천여명의 많은 동포가 미국인의 0.38%나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미 국교관계의 영향에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이무렵 구소련 연방과 중국에도 많은 한민족이 흩어져 정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소련연방과 중국지역으로의 이주는 국가차원에서의 연구과제일  것이다.
현재 3만명이 넘게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이곳 영국 교민 정착사는 미국의 농장 집단 취업이나 이웃 독일의 경우처럼 광부와 간호원의 기술자 고용과는 달리 유학 후의 잔류, 방문이나 여행 도중 취업 또는 자영업 등 개인의 뜻에 따라 정착하고 특별기능의 국가초청 등으로 이루어져 뚜렷한 이주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 영국땅에 처음 발을 디디고 정착한 바로 그날을 영국교민사의 시작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들의 영국 정착사를 살펴보면 1883년 Herry Park이 비준서를 가지고 한영수교를 맺었지만 한국인이 이곳 영국에 교류, 정착한 사실은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그로부터 19년후 1902년 민영돈 공사가 직원 5명을 거느리고 Earl’s Court의 공관에 머물렀다가 1904년에 철수한 사실이 있지만 이것은 이민정착으로 볼 수 없다.

1883년 수교 후 1917년 첫 교민

그 후 1917년 일본 외항선을 타고 영국에 입국한 고 조남해(趙南海)옹이 최초의 영국거주 교민으로 알려진다. 당시 조옹은 영국 입국후 임금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고 일본선주에게 임금투쟁을 벌였으나 관철되지 않자 승선을 거부, 결국 영국땅에 정착했다. 그는 97년의 인생가운데 75년을 영국에 정착해 살고 영국땅에 묻혔다. 이밖에 윤보선 전 대통령, 장택상 전 총리, 라용균 전 국회 부회장 등은 영국의 명문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일본 식민통치 하의 한국으로 귀국해 한국의 독립운동과 광복후 건국사에 크게 이바지하고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여성으로는 광복 후 1948년 주한 영국 외교관으로 부임한 분과 국제결혼하여 영국에 와서 살다가 고인이 된 김모여사가 있다. 아마도 김여사가 최초의 영국정착 한인여성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의 자손들은 현재 영국 법조계에서 고위층으로 종사하고 있다. 이후 한국전 당시 주한 영국 군인과 국제결혼하여 영국에 정착한 여성들도 있으나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확인할 길이 없고 55년 영국군인과 결혼 57년에 영국에 정착했다는 Mrs. Gils(김옥희)씨는 Reading에서 잘 살고 있다. 50년 후반 펜팔로 연결되어 사업하는 영국인과 결혼 Ealing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김모여사도 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는 Mrs. 모, Mrs 카타라는 분들이 국제결혼으로 영국에 거주하였다고는 하나 필자와 상면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이와 같이 고 조남해 옹이 영국에 첫발을 디딘 후 남자들보다는 여자분들이 더 많이 영국의 곳곳에 산재해 거주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광복이후에서 60년대까지 한인사회에 노출되지 않고 이곳 영국의 명문대학에서 조용히 학업을 마치고 귀국, 조국의 각 분야에서 성공하신 분들도 있는데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 한성주 전 외무부장관, 현 라종일 주영대사가 그분들이다.
1955년에 들어서면서 유학생의 수가 점차 늘어 주로 대사관의 주선으로 모임이 시작되었으며 58년에 처음으로 유학생들이 모여 한인친목회가 구성됐다. 당시 유학생 현경호씨가 총무로 선임되었는데 이것이 한인들의 첫 모임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기약없이 귀국하는 경우가 많아 수개월 또는 일년 정도의 모임을 가졌을 뿐이다.

유학·사업·국제결혼으로 정착

60년에는 영국 정부 초청으로 해운연수생, 유학생들이 들어왔으며 일찍이 진출한 해운공사, 대한증식 등 회사와 모임을 가졌다. 65년 11월 한인모임의 정간을 개정, 해운공사 지사장 김희석씨가 회장으로 피임됐으나 5개월 후 또다시 유학생에게 회장을 넘겨주었고, 69년 말에 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엄창현씨가 처음 2년 5개월간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65년 이후에는 건설회사와 금융기관 중합상사 연락사무소 등이 들어와 이와 더불어 한인의 수가 늘어나고 학업을 마친 유학생 또는 회사근무연한을 마친 사람들이 잔류해 자영업을 시작하였으며 74년말 K.K.P사 강철수씨가 3년3개월간 장기회장직을 맡기로 하는 등 영국한인사회는 점차 발전해갔다.
예술인으로는 한인 교민의 자랑인 세계적인 음악가 정경화씨가 있었다. 그 분의 영국진출 및 정착이 언제였는지 상세히는 모르나 80년대 초만해도 필자가 가끔 방문하여 영국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연락조차 두절되고 말았다.
80년대 이후의 교민사는 많은 증인들이 현존하고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교민을 위주로 하는 교민회와 주재상사를 위주로 하는 한인회가 양맥을 이루어 두 단체가 통합, 재영한인회를 이루는 과정과 이에 따른 애로사항은 다음기회에 기술하기로 한다.
끝으로 14년 후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영국의 교민사가 미국의 이민사와 같이 민족 승리의 표상에 이르기를 갈망하며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주형기 군 등과 같이 현재 교민 2세들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싹트기를 기대해본다.

채 우 병
민주평통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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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정착 제1호 고 조남해 옹

고 조남해 옹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2세의 어린나이에 선원이 되어 16세때 일본의 외항선을 타기 시작, 22세에 영국에 도착했다. 일본의 외항선에 승선을 거부한 그는 다시 영국의 외항선에 몸을 싣고 5대양을 휘젓고 다닐 때 러시아혁명, 중일전쟁 등을 선상에서 들었으며 일본이 조국에 행한 가혹한 식민지 정책과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 소식 또한 선상에서 들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 승리와 조국 해방의 감격, 분단과 한국전쟁 역시 직접 목격하지 못한 그는 영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영국인 부인 사별 후 쓸쓸한 말로

그는 영국 부인과 사별한 후 조국으로 귀국을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여의치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필자가 그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인도인을 양자로 삼아 도움을 받다가 말년에는 빅토리아 근방의 시영아파트에서 김모집사의 보살핌을 받아가며 생활했다. 그는 가끔 방문하는 필자에게 지난날의 삶을 회상하곤 했는데 포리머스 상선 사관학교에 유학중이던 전 국방부장관 신성모 씨에게 물심양면의 관심을 베풀어 주었으며 조국을 위해 큰 일을 하라고 격려했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며 무엇인가 크게 섭섭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1991년 11월17일 그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받고 찾아갔을 때 김모집사만이 쓸쓸한 빈소를 혼자 지키고 있었으나 연락을 받은 대사관 영사과의 협조와 교민 다수가 참석, 순복음교회 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교민의 적막한 말로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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