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언론 기업의 한국 진출 대비한
신문·방송 겸업 허용 등 전략 검토돼야노무현 정부 초기,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일간 3개지를 겨냥한 신문법이 국회 주도로 발의되어 통과되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논리는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3개 유력일간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어설 시 이들 언론3사의 경품제공 등 부당경쟁에 벌금 등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만난 모 유력 보수일간지 사장은 노무현 정부하에서 신문사가 어려웠던 것은 공정거래 조사 명목하에 제출 요구받은 많은 분량의 신문사 경영 자료 작성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취재 담당 기자들도 자료작성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뉴스취재 업무가 지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2년 12월 대선시 주요 보수신문들이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통령후보를 공공연히 지원했다는 점 이외에도, 햇볕정책을 승계한 평화번영정책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의 논조에 대책을 세울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다만 방법은 과거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 논란을 일으킨 점을 감안해 공정거래법을 이용하여 경영측면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언론소유주 및 시장점유율최근 신문의 역사가 220년이 넘는 영국언론 현황을 살펴보니, 3대 언론기업의 신문시장 점유율이 7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영국신문들은 총선때 마다 정당지지를 공공연히 표명해도 이를 규제하는 신문법이 없다.
1997년 5월 총선에서 야당 노동당이 대처 총리와 메이저 총리로 이어지는 18년 집권의 보수당에 대승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중 하나로 더 타임즈 계열 신문들이 기존의 보수당 지지입장에서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지지로 선회한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당시 350만부가 넘는 영국 최대 일간 타블로이드 ‘선’지가 메이저 총리 공격에 앞장서면서 보수당 지지층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11개 전국 일간지, 11개 일요지가 매주 8천만부 이상 발간되며 신문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찬반 논조는 국민들의 정부지지도 등락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국의 3대 언론기업으로 News International(회장 루퍼트 머독), Daily Mail&General Trust, Trinity Mirror를 들 수 있다.
그중 머독 회장이 소유한 News International사의 더 타임즈, 더 선 및 뉴스 오브더 월드 등은 일간지 시장의 35%, 일요지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머독 회장은 위성방송 BSkyB의 대주주이기도 해 언론 매체를 통해 영국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을 발간하는 다우존스사를 인수해 미국에서도 신문·방송분야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가디언 미디어 그룹은 시장점유율이 3.4%에 불과하지만 전국 일간지중 유일하게 개인이 아닌 공익재단 Scott Trust의 소유로 타 언론사에 비해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다. 2007년 5년째 외부기관 감사결과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투명한 경영, 독자여론의 편집반영 등으로 세계적인 권위지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Pearson그룹이 발간하는 파이낸셜 타임즈는 시장 점유율이 1.8%에 불과하나 각국 정부, 경제 및 금융, 기업 등 정책결정자들이 읽고 있는 세계적인 권위지이다. 파이낸셜 타임즈 발행부수 45만부중 국내 구독은 14만부에 불과하고 미국 15만부 등 70%가 유럽 등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어 ‘21세기 신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영국 11개 전국 일간지중 유일하게 서울상주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영국 언론기업의 일간지 소유현황을 분석해 보면 3대 언론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75%가 넘는 독과점 구조이고 총선에서 미치는 영향은 머독회장 소유의 더 타임즈 계열신문들이 발행부수 측면에서도 타 언론기업 신문들에 비해 압도적이라 하겠다.
영국신문들은 1945~92년까지 오랜기간동안 친보수당 성향을 보였으나 1992~97년에는 더 선, 더 타임즈 등 머독회장 소유 신문들이 ‘제3의 길’을 내건 노동당 지지로 선회, 1997년 총선에서 블레어 전 총리의 노동당이 대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동당은 2005년 5월 총선에서도 승리, 노동당 역사상 처음으로 3기 집권에 성공하는데, 더 타임즈 계열 신문들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간지의 정당지지1997년 총선 이전에는 당시 350만부의 더 선지, 80만부의 더 타임즈 , 1백만부가 넘는 텔레그라프지 등 보수신문들이 ‘영국병’을 치유하는 대처총리의 보수당을 총선때 마다 적극 지지했고 그 결과 보수당 정권의 18년 장기 집권이 가능했었다고 하겠다.
물론 지난 10년간 보수당에 블레어 전 총리를 능가할 지도자가 없었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정책 대안 제시도 없었지만 머독회장과 블레어 전 총리간의 각별한 친분관계가 더 타임즈 계열 신문의 노동당 지지로 이어지면서 노동당이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작년 6월 당 내부 추대로 총선 없이 블레어 후임 총리가 된 고든 브라운은 최근 집권 1년만 지지도가 20% 밑으로 추락하였다. 보수당과의 지지율 차이도 20%가 넘으면서 차기 총선에서 노동당 필패의 우려가 높다. 그러나 머독 회장이 집권 노동당 지도자들과의 친분관계를 해소하고 결별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지도 추락이 1년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와 경제불황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브라운 총리의 자기과신에 따른 동료 및 국민들에 대한 설득력 부족 등 리더십 결핍에 기인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브라운 총리는 총리비서실장에 민간 PR회사 CEO 영입 등 국민들과의 의사소통 확대 및 리더십 이미지 제고를 통해 지지도 회복에 노력하고 있다.
블레어 전 총리는 타고난 연설가이며 메시지 전달 능력이 출중한 정치인이었다. 지난 10년간 노동당 집권 기간은 영국이 2차대전 이후 가장 오랜기간 지속 성장 및 고용증진을 달성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 냈다. 중산층들도 영국의 번영을 이끌어 갈 ‘제3의 길’을 가자는 노동당에 3번이나 투표를 했던 것이다.
이번 파악된 영국의 신문사 정당 지지성향의 변화추이에 대한 영국언론학자의 연구결과를 보면서 지난 90년 이후 4차례의 한국 대선시 국내 주요 신문사들의 정당 지지성향과 독자들 투표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조속히 착수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호주 출신 언론경영인으로 영국 및 미국의 신문과 방송사 경영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가면서 글로벌 언론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머독 회장이 앞으로 한국 언론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신문과 방송의 겸업 허용 등 한국 언론 기업의 글로벌화 전략이 검토돼야 겠다.
정 인 준 전 주영한국대사관 공보관
junchung@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