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택 / ㈜ 액티컴 유럽 대표이사
본인은 <코리안 위클리>에 대한 각별한 인연과 정을 간직한 사람이다. 추억담을 쓸 기회를 준 <코리안 위클리> 사장께 감사드리며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숨은 (?) 비사를 공개할까 한다.
<코리안 위클리>는 1990년대초부터 발간되었는데 최초의 발행인은 유학생 장재호 씨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그 당시 일링(Ealing) 부근의 집에서 방 한구석에 제도판을 편집대로 만들어 놓고 워드프로세싱된 문구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A4 지 4매 정도의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의 신문 이름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코리안 위클리>.
본인이 당시 적을 두고 있던 곳이 ㈜ 제일기획 런던지점이었기에 장재호 씨와는 가끔 - 아마 신문과 광고가 비슷한 분야라고 생각해서인지 - 안부도 주고받을 겸 가벼운 자문을 제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개인사정으로 갑작스레 영국을 떠나야 했던 장재호 씨 부부는 내게 <코리안 위클리> 발행을 위임하고 말았다. 주재원이라는 신분으로 얼떨결에 이런 일을 떠맡게 된 본인은 그야말로 황당한 신세가 되었다. 즉, 낮에는 제일기획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저녁에는 <코리안 위클리>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나몰라라 할 수도 있었던 일을 맡게 된 이유는 <코리안 위클리>발간이 중단되어 교민들을 실망시키는 사태가 벌어지면 안된다는 야릇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을, 그것도 양쪽다 버거운 업무인 일을 마냥 할 수는 없었다. 수면 부족으로 차량사고를 크게 낼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본인 입장에서는 구세주격인 <코리안 위클리> 현재 대표인 신정훈 사장을 만나 인수인계를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그 후 <코리안 위클리>는 안정기 및 발전기에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도 <코리안 위클리> 사무실에서는 신문을 매주 꼬박꼬박 발간하기 위해 날밤을 새며 편집에 몰두하고 있는 직원들이 계시다. 물론 100% 광고만을 수익모델로 삼고 있는 무가지라는 점에서 다른 유사지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기대할 수 있는 발전단계로의 도약은 아직도 시간을 요한다고 본다.
따라서 <코리안 위클리>가 광고 이외의 수익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이 없을지 교민들의 중지를 모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코리안 위클리>라는 신문사의 건전한 발전이 결국 교민사회의 위상 증대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영국내에서 중국어 신문들이 버젓이 가판대에서 유가지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미 현시점에서도 <코리안 위클리>는 기사 내용, 페이지 디자인, 광고효과 등 모든 면에서 전세계에서 최상급 교민매체라고 일컬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감히 공언하고 싶다.
<코리안 위클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코리안 위클리>의 600호 발간을 축하하고 롱런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