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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빈곤’ 폭동은 아니었다 악동들의 ‘주말기행’이었을 뿐
코리안위클리  2011/08/24, 07:18:38   
▲ 지난 8월 9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경찰이 약탈행위를 한 젊은이들을 쫓고 있다.
런던 30년 거주 한국인이 본 영국 폭동의 진실

세계 언론이 영국 폭동(U.K. Riot)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어마어마한 일이 영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건 정말 흥분할 일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엄밀히 말해 영국 폭동이 아니고 잉글랜드 폭동이다. 잉글랜드 이외의 지역, 즉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에서는 아무런 소요가 없었다. 잉글랜드 내의 도시들에서만, 그것도 시내 일부 상가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런던의 경우는 시내 한복판이 아니라 소득이 낮고 비행 청소년들이 많은 외곽 지역에서 일어났다. 일부 상점이 일찍 폐점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런던의 다른 지역에서는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영위됐다. 우린 보통 폭동이라 하면 무자비한 살인이 자행되고 약탈이 만연하는 상황을 연상한다. 그러나 필자는 지난 5일간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폭동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잉글랜드의 소요사태’라고 규정짓고 싶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흑인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게 발단이 되면서 일견 흑인 폭동 비슷하게 비쳤으나 이번 사태는 인종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29세 네 아이의 아버지 마크 더건의 사망에 항의하는 평화적인 가족시위를 경찰이 험하게 다룬 데서 사태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사태는 이와 연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이 심각해지자 더건의 가족은 이번 사태가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그냥 주변의 말썽쟁이들이 기회를 틈타 약탈을 자행한 것이고, 경찰의 대응이 늦고 미약함을 틈타 전국적으로 모방 범죄(영국 언론에서는 copycat이란 단어를 쓴다)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사태를 과소평가한 것인가. 어떤 이는 이번 사태를 ‘쇼핑 폭동(shopping riot)’이라고까지 폄하한다.

폭동의 주제가 없었다

폭동이라면 주동 세력과 주장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폭동은 이게 없었다.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나온 것이 전부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 동네의 상점을 파괴·약탈하고 건물에 방화를 해 그렇지 않아도 소득도 낮고 실업률도 높은 지역사회를 파괴했다. 폭도들 중 하나가 “너무 많이 가진 자들에 대한 반항(Against those who has too much)”이라고 외친 것을 비꼬아서 “그래서 우린 우리들의 것을 그들이 못 훔쳐 가게 파괴한다(so we destroy what we have to prevent they steal from us)”라는 인터넷 포스터가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 아무런 정당화된 구호도 못 가진, 조금 과격한 집단 좀도둑질에 불과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사망자 역시 발단이 된 더건 이외에는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려다 돌진한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사망한 터키인 3명이 전부였다. 크로이던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자동차 안에서 앉은 채로 총을 맞아 이번 사태와는 무관하다고 얘기된다. 영국 정부가 내놓은 이번 사태 수습 예산이 2000만파운드(36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의 주역도 우리가 지레짐작하듯 빈민가의 흑인 청소년들이 아니었다. 민감한 인종문제라 상세한 통계가 나올지는 모르나 TV 화면에 비친 약탈 장면만 봐도 백인이 더 많으면 많았지 어떤 특정 인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연령별로 봐도 15∼20세가 33%, 20∼24세가 36%, 25∼29세가 13%, 30∼34세가 11%, 35∼39세가 2%, 40∼44세가 5%였다. 결코 철없는 소수민족 십대들의 소요사태가 아니었다. 이민자 소수민족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다. 폭도들이 턴 가게들은 이번 사태의 중심 지역에서 어렵게 생업에 종사하는 착실한 이민족, 특히 인도 계열의 가게들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버밍엄의 3명의 사망자도 이민 온 터키인들이었다. 특히 내년에 올림픽이 열리는, 영국의 대표적 저소득·고실업 이민족 지역인 웨스트햄에서는 소요사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 각국에 팽배한 다문화주의 실패에 대한 이민족들의 불만 토로가 이번 사태의 배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들만 봐도 이번 사태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소득 재분배에 대한 불만, 실업에 대한 불만, 소외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정말 단순한 쇼핑 폭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훔칠 때도 줄서서

어떤 언론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자민 연립정부의 긴축재정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태로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 절감으로 인한 고통은 내년이나 돼야 서민이 느끼게 될 전망이다. 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불만 때문이라고도 얘기하지만 이번에 체포된 폭도들 중 과연 몇 퍼센트나 실업 상태인지는 아직 모른다. 모두들 그들이 실업자라고 추측을 하지만 이번 사태가 일어난 시간들이 런던은 주말 저녁, 다른 도시들도 저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짐작하는 것 역시 아직 이르다.

실제 영국의 젊은 세대 실업문제를 우리의 경우와 비교해 들여다보면 이런 소요사태의 이유가 될 수도 없다는 점이 명확하다. 영국 젊은이의 약 20%가 실업 상태라고 얘기되지만 필자가 봐서는 이들에게 직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안 찾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영국의 취업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특히 이번 사태의 중심지로 지목받는 런던의 소매업계는 청소년들이 취업하기 적당한 곳이지만 일손이 달려도 쓸 인력이 없다. 영국은 청소년이 학업을 마치자마자 취업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더군다나 영국 젊은이들은 자발적실업 상태라도 실업수당 등의 각종 혜택을 받는다. 이런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 우리 한국의 청년들과 비교하면 너무 좋은 환경이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번 사태에 뛰어든 젊은이들을 폭도라고 부르기도 뭣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손에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막 해친 것이 아니다. 사전 준비 없이 몰려나와 주위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굴려 길을 막고 벽을 부숴 벽돌을 경찰에게 집어 던졌을 뿐이다. 그러곤 아무런 이유 없이 쓰레기통과 차에 불을 지르고 손에 잡히는 아무 것이나 들어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훔쳤다. TV를 보던 중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깨진 상점 유리창 구멍 앞에 가지런히 줄을 선 모습이었다. 영국인은 혼자서도 줄을 선다는 말처럼 이들은 도둑질할 때도 줄을 섰다. 그러곤 손에 옷 한두 벌씩을 들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자랑스럽게 나오는 모습은 흡사 주말에 친구들과 시내에 나왔다가 한탕하고 즐기는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자녀 신고한 부모

11살짜리 가장 어린 폭도는 50파운드를 훔치다가 걸렸고, 12살짜리 소녀는 입양 가정에서 기차를 타고 나와 상점에서 옷 한 벌 훔쳤다가 걸렸다. 심지어 올림픽 홍보대사로 선정된 한 소녀가 소요 대열에 참여했다가 CCTV(폐쇄회로 TV)에 찍혀 방송이 된 것을 부모가 보고 신고해 재판을 받게 됐다는 뉴스가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 부모는 딸을 TV에서 본 순간 잠깐 망설였지만 남의 집과 상점을 불태우는 데 자신들의 딸이 개입된 것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딸은 물론 원망을 할 것이며, 주위에서는 악독한 부모라고 욕하겠지만, 자신들은 양심에 따라 했다고 얘기했다.

하원에서 캐머런 총리는 폭도들의 행동에 대해 “다른 말 할 것 없이 분명한 범죄 그 자체”라고 강조하면서 끝까지 쫓아가서 반드시 체포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를 보면 ‘악동들의 주말기행’은 영국 사회 분위기로 봐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고 상당한 여파를 미칠 것 같다.

이제 사태가 가라앉고 냉정하게 돌아보면 과연 영국 사회 전체가 이번 사태로 이렇게 놀라고 노여워하고 흥분할 정도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 번져 국가 비상사태의 위기로까지 몰아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는 ‘악동들의 주말기행’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다수 도시들의 중심가는 주말이면 홍역을 치른다. 술에 취한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이미 일반화돼 있고 이런 문제가 TV에 등장한 것은 결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를 다루는 영국 경찰의 태도가 그렇게 심각했던 것도 아니다. 경찰서에 데리고 와서 ‘그들의 안전’을 위해 술이 깰 때까지 가두어 두었다가 아침이면 공식적인 주의를 주고 풀어주거나 몇 번을 반복하면 시내 중심가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리는 정도였다. 시내 중심가의 상점들이 주말을 지내고 주변 오물을 치우는 일에 넌더리를 내는 것도 일상적이었다. 상점 진열장의 유리가 깨지는 일 역시 다반사라 경찰에 신고도 안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국이 이렇게 흥분하고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좀 생경하긴 하다.

이번 사태는 흐트러진 사회질서를 다잡고 사회 분위기를 오른쪽으로 돌리고자 하는 보수·자민 연립정부로서는 좋은 기회다. 많은 보수적인 정책이 이번 일을 계기로 수립될 것이고 학교교육을 비롯해 사회제도가 많이 바뀌리라고 본다. 특히 하원에서 경찰예산 삭감을 되돌릴 것을 요구하는 의견이 여야 의원 모두에게서 나왔다. 어렵게 긴축재정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정부로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경찰에 대한 예산 삭감 정책이 바뀌지 않을지를 지켜봐야 한다.

영국 경찰의 이번 사태 대응 모습은 한심할 정도였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난무하고 대창과 쇠막대로 무장한 시위대를 진압해내는 한국 전경을 보아온 나로서는 특히 그랬다. 영국 경찰에게는 물대포도 없고 곤봉도 없고 효력이 기가 막힌 페퍼포그는 더더욱 없다. 방패와 헬멧이 전부다. 거기다가 경찰 인력의 20%만 소요사태 진압 기초훈련을 받았고 사태가 시작된 당시에는 여름휴가 등을 이유로 12%만 도로를 순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영국 경찰은 2009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당시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사고 발생에 대한 법적책임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어, 필요 이상으로 위축돼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온다. TV에서만 봐도 초기에 경찰이 강력 진압을 했으면 가볍게 끝났을 정도로 폭도 세력은 크지 않았으나, 경찰의 초기 대응은 정말 잘못됐다. 실제 폭도들이 나중에 언론에 토로한 바를 보면 그들은 온 도시가 자신들 손아귀에 있는 듯한 기분을 즐겼다고 한다.

평소 주말에도 일어났던 일

나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악동들의 주말기행’ 혹은 ‘쇼핑 폭동’이라고 폄하를 하지만 사람들은 벌써 입에 거품을 물고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늘어놓는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복지제도 의존(welfare depen dence) 심리와 소요계층(social exclusion) 심리를 든다. 소외계층에 항상 주어진 복지 혜택이 이들의 버릇을 잘못 들여 자신들은 사회에서 소외돼 있으니 무엇인가를 사회로부터 요구해도 항상 옳다는 심리의 문화(culture of entitlement)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도 누구도 딴죽을 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리는 결코 이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 예로 지난해 영국 사회를 휩쓸었던 국회의원의 공식 경비 청구 스캔들을 든다. 자신의 아파트에 설치할 평면TV를 세금으로 사는 국회의원이나, 남의 상점에서 TV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부성의 결여(lack of father), 긴축재정, 경찰력의 약화, 인종차별을 든다. 이 중 필자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것은 위에서 누누이 얘기한 소비주의(consumerism)와 기회주의다. 이번 사태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가질 기회였고, 누가 문제 삼을 것 같지 않으니까 별 생각 없이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주말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다. 물론 둘째 날부터 전국에서 일어난 모방범죄(copycat crime)는 그 전날 런던에서 일어난 쇼핑 폭동을 본 문제 청소년들이 소셜네트워크, 특히 트위터·페이스북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모여 일을 벌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수많은 폭도 중에 하필 내가 걸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분명 CCTV가 작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도 가리지 않고 자랑스럽게 물건을 들고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 이유다. 보통 때는 이런 일을 하라고 떠밀어도 못할 좀팽이들조차 폭도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별 생각 없이 일을 벌였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또 다른 요인이 조직폭력배 문화와 랩 등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 사이의 유행이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모자 달린 운동복 윗도리’다. 이번 폭동사태의 주역은 소위 말하는 후드를 뒤집어쓴 후디(hoodi)들이었다. 갱스터랩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결코 자신은 그 가사 내용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지만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닥치면 자신도 모르게 동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감수성 강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축구 훌리건들의 본거지

소요 발생 지역을 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거의가 다 소득수준이 낮고 실업률이 높고, 특히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으로 유명한 지역들이라는 점이다. 토트넘, 버밍엄, 리버풀, 맨체스터, 웨스트브로미치, 울버햄프턴이 그곳들이다. 물론 축구팬들을 폭도들과 단순히 연관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힘을 잃어 조용하지만 과거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영국 축구 훌리건들의 본거지가 이번 사태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번 사태에서 그나마 유머스러운 장면을 찾는다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난데없는 개입이다. 그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행동을 영국 정부가 유혈진압하고 있으니 세계가 중단을 요구해야 하고 유엔이 개입해야 한다는 촌극을 벌여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다른 하나는 폭도에 의해 자전거를 탈취당하고 다친 말레이시아 유학생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배낭을 열고 물건을 훔쳐가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사람이다.

1977년 토니 블레어 정부가 들어서면서 직업도, 기술도, 집도 없고 심지어 장래에 대한 희망마저 없는, 주류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소외계층을 ‘대처 정부의 소외계층(Thatcher’s underclass)’이라 이름지었다. 엄청난 예산이 이들을 위해 투입됐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런 제도를 주도하는 관료들을 향한 이들 계층의 반감과 경계는 결과를 더욱 나쁘게 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야망이 항상 성공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Ambition couldn’t translate into outcome)’였다. BBC의 한 논평은 위와 같은 과거의 노동당 정부의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보수·자민 연합정부의 상반된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소외계층에 동정과 선의만을 갖고 무조건 퍼주는 정책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책임 있고 좋은 행동’을 요구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런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휴가 기간 중 긴급하게 개회된 임시국회에서 캐머런 총리는 지금까지 영국 총리 입에서는 나올 수 없었던 말들을 뱉어냈다. 그중에는 범법자의 ‘공공임대 주택으로부터의 퇴거’ ‘실업수당을 비롯한 각종 혜택 중지’가 포함돼 있었다. 캐머런 총리가 ‘국가비상 시의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 중지’ ‘범법자 청소년 부모들에게 책임벌금’ 등 이뤄지기 힘든 문제를 언급할 때는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캐머런 총리는 또한 이번 사태는 책임의식, 부모의 감독, 엄격한 가정교육, 제대로 된 예절, 철저한 도덕감의 완전한 결여로 야기된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고도 강조했다.

국회도 정부·경찰 비난 안 해

이번 사태 이후 영국의 임시국회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총리와의 질의응답에서 총리나 내각에 이번 소요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질문이 여야를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경찰의 늑장 진압이나 소방관들의 비효율적인 대응에 대한 비난도 없었다. 오히려 여야 의원 모두 그들의 수고와 희생에 대한 치하로 일관했다. 우리처럼 사태 수습에 전념하고 있는 일선 행정 공무원을 불러다 놓고 일갈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태를 혼돈시키는 양비론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야가 일치해서 폭도들의 행동은 분명한 범죄이고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간단하게 규정지었다. 소외계층의 문제 등 잡다한 원인에 관한 소모적 논쟁도 일절 없었다. 일단 비상사태에서는 여야가 입을 맞춘 듯 이견을 내놓지 않고 사태 해결을 우선시하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앞으로 몇 년이 걸려서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과 책임 등을 캐내고 각종 대책을 담은 백서를 내놓겠지만 일단은 여야가 당략을 떠나 국익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태로 영국 사회는 분명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사회제도가 더욱 보수적으로 바뀔 것은 자명한 일이다. 1960년대 이후 자유사상(liberalism)에 의해 꾸준히 추진돼 오던 많은 사회제도가 변할 것이다. 보수당 집권 이후 이미 학교에서 체벌이 부분적으로나마 허용됐으나 이번 사태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 같다. 영국 사회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부성의 결여’를 비롯해 ‘가정해체(family breakdown)’ ‘결손가정(dysfunctional family)’이란 단어가 언론과 정치인의 입에서 새삼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유럽 대륙에는 우풍(右風)이 더욱 거세질 것 같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 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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