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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년간 노벨상 28명 캐번디시랩의 성공 DNA
코리안위클리  2013/05/03, 01:40:42   
▲ 케임브리지 시내 프리스쿨가에 있는 ‘올드 캐번디시랩’. 1874년 설립된 캐번디시연구소는 1974년 이곳을 떠나 현재의 현대식 연구단지로 이전했다.

DNA 이중나선 발견 60년… 비밀은 케임브리지대 ‘펍’에서 풀렸다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케임브리지의 한복판 프리스쿨가(Free School Lane CB2 3RF)에 중세 성당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다. 나무로 된 정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Magna opera Domini exquisita in omnes voluntates ejus’. 우리말로 ‘신의 작품은 위대하다. 그 모든 것을 찾아내는 데 즐거움이 있다’로 번역되는 문장이다.

‘모든 위대한 신의 작품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누리던 이 건물이 바로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이 자랑하는 캐번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가 있던 곳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28명이나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지난 1974년 창설 100주년을 맞아 시내 한복판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웨스트 케임브리지로 확장 이전했다. ‘올드 캐번디시 랩(Old Cavendish Lab)’으로 불리는 5층짜리 고색창연한 건물에는 현재 아무런 연구시설도 없다. 다만 건물 입구 왼쪽 벽에 캐번디시연구소가 있었다는 회색의 사각형 표지판만 있을 뿐이다.

이 표지판에는 ‘캐번디시연구소. 1874~1974. 데본셔 공작에 의해 설립됐고 레이레 경(1908)과 오스틴 경(1940)에 의해 확장되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초대 캐번디시 교수인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로부터, 웨스트 케임브리지로 옮겨갈 때까지 (케임브리지대학의) 물리학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쓰여 있다. 입구 오른쪽 벽에는 이 건물에서 조지프 존 톰슨(1856~1940·19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전자(電子)를 발견했음을 알리는 푸른색 표지판도 붙어 있다.

굴처럼 생긴 이 건물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뒤편 좌측으로 자그마한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외벽에 악어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게 눈길을 끈다. 1933년 지어진 캐번디시연구소 부속 몬드연구소다. 악어 조각은 캐번디시연구소의 전성기를 이끌던 4대 소장 어니스트 러더퍼드(1871~1937·1908년 노벨화학상 수상)의 별명을 제자들이 풍자해 새긴 것이다.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내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더퍼드 교수는 큰 키와 특이한 목소리로 유명했는데, 제자들은 그를 동화 ‘피터팬’에 등장하는 시계를 삼킨 악어로 묘사하며 놀렸다. 이 악어 조각은 러더퍼드의 제자였던 표트르 카피차(1894~1984·197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가 주문한 것이다. 저온물리학의 기반을 닦은 카피차는 캐번디시에서 연구한 자료들을 챙겨 자신의 조국인 구소련으로 가버린 인물이다.

▲ 올드 캐번디시랩 인근 펍인 ‘이글’ 입구 벽에 붙은 표지판.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사실을 처음 알린 곳이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올드 캐번디시랩 인근 펍인 ‘이글’ 입구 벽에 붙은 표지판.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사실을 처음 알린 곳이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나와 20m쯤 걸어가 한 블록을 건너가면 영국 특유의 한 펍(pub) 과 마주친다. ‘이글(Eagle)’이라는 간판이 붙 은 이 펍이 캐번디시연구소 139년 역사에 서 가장 우뚝하게 솟은 이정표를 세운 곳이 다. 1953년 2월 21일, 이 펍에 한 청년이 뛰 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생명의 신비 를 밝혀냈어!” 이 청년이 바로 당시 생물학 계의 최고 숙제였던 DNA 구조를 발견해 낸 캐번디시 연구원 제임스 왓 슨(85·당시 25세)이었 고, 그의 뒤에 서 환호하던 그를 흐뭇하 게 바라보던 또 다른 청년이 왓슨의 연구 파트너였 던 프랜시스 크릭(1916~2004·당시 37세)이었다. ‘이글’에서 거의 매일 점심을 먹던 이 두 청년이 발견한 DNA 이중나선 구 조는 금세기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평가받으 며 1962년 이들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의 영 예를 안겼다. 오는 4월 25일은 이들이 자신 의 위대한 발견을 불과 한 쪽짜리 짤막한 논 문으로 과학전문지 ‘네이처’를 통해 알린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이 펍 입구 벽에도 이 곳이 과학사의 명소라는 것을 알리는 푸른색 둥근 표지판이 붙어 있다. ‘DNA 이중나선 (Double Helix) 1953. 생명의 비밀. 지난 수 십 년간 이곳은 인근 캐번디시연구소의 과학 자들을 위한 동네 펍이었다. 1953년 2월 28 일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DNA가 어떻게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지를 발견해 여 기서 처음으로 알렸다. 2003년 4월 25일 제임스 왓슨이 개봉했 다.’ 이 문구대로 이 표 지 판 은 2003년 당시 75세였던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 제임스 왓슨에 의해 걸려졌다.

▲ DNA 모델 앞에 선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
▲ DNA 모델 앞에 선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클락 맥스웰(1831~1879)이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면서 문을 연 캐번디시연구 소는 영국이 유럽 대륙을 능가하는 기초과학 인재를 기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캐번디 시연구소의 출발 당시만 해도 케임브리지대 학의 과학적 역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내에 자연과학을 공부 하는 학생은 19명에 불과했다.

교수 연구실에 학생 몇 명을 불러놓고 하 던 전통적인 영국식 도제교육으로는 제대로 된 물리학자의 대량 배출이란 시대적 과제를 맞출 수 없던 상황이었다. 캐번디시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기구와 자재로 직접 실험에 참 여해 볼 수 있게 설계된 연구실(designed to allow students a new practical engagement with equipment and materials)’과 ‘물리 실 험 공 개 강 의 목적의 첫 대형 강의실(first purpose-built physics lecture theatre)’을 갖춘 미국식의 ‘배우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연구소(teaching laboratory)’를 영국에서 처음 시도한 곳이다.

1974년 옮겨간 캐번디시연구소는 연구소 설립 당시의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고색창연한 올드 캐번디시연구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현대식 연구단지다. 캐번디시연구소는 모두 3개의 동으로 이뤄져 있다. 역대 연구소장 이름을 딴 러더퍼드동, 모트(Nevil Francis Mott·1905~1996)동,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1890~1971)동이다. 거의 공장 건물같이 생긴 모트 동과 러더퍼드동 사이에 연구소 본부 역할을 하는 브래그동이 있다. 브래그동 2층에는 프리스쿨가에서 옮겨온 캐번디시의 발자취를 담은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박물관이 있다. 본관 건물 입구 위에는 ‘올드 캐번디시 랩’에 라틴어로 쓰여 있는 문구가 영어로 번역돼 걸려 있다.(The works of the Lord are great, sought out of all them that have pleasure therein.) 이들 연구소 동뿐 아니라 연구원들과 방문 학자들을 위한 네 개동의 현대식 아파트와 각종 편의시설이 연구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이 연구소에는 81명의 교수진이 400명의 학부 과정생과 120명의 석·박사 과정생을 가르치며 연구한다.

캐번디시연구소를 빛낸 인물들과 그들의 연구 성과를 훑어보면 어떻게 이런 대단한 과학적 성취가 한 연구소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왓슨과 크릭을 비롯해, 전기와 자기가 같은 힘이라는 걸 발견해 뉴턴과 아인슈타인 사이에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얘기되는 초대 소장 맥스웰, 전자를 발견한 조지프 톰슨, 핵물리학의 아버지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제임스 채드윅 등 연구소가 배출한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지난 139년간 과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사람들이다. 참고로 캐번디시가 속한 케임브리지대학은 물리학의 아이작 뉴턴과 스티븐 호킹, 그리고 생물학의 찰스 다윈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캐번디시를 빛낸 학자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캐번디시연구소는 물리학의 성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DNA 이중나선 구조라는 생물학계 최고의 발견이 이뤄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설이다. 하지만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위대한 성취에 이르는 과학자들의 도전 과정을 보면 왜 물리학의 성지인 캐번디시에서 생물학의 새로운 기원이 열렸는지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물리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던 생물학계에서는 1952년 미국의 생물학자 앨프리드 허시와 마샤 체이스가 유전정보가 DNA에 의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DNA 구조와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연구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많은 물리학자들을 분자생물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슈뢰딩거는 생명현상이 이성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물리, 화학적 과정에 불과하다고 봤고, 유전정보는 단백질이라는 분자에 담겨 있으리라 추정했다.

1950년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왓슨 역시 연구 방향 결정에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물학을 분자 개념으로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써놓았다”고 평한 왓슨은 자신의 연구를 위한 최적의 장소가 캐번디시연구소라고 판단했다. 당시 캐번디시연구소는 X선 사진을 이용해 생물분자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내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 캐번디시연구소는 1937년 러더퍼드 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돈이 많이 드는 원자핵물리를 포기하고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1915년 노벨물리학상)를 소장으로 앉혀 X선 결정학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 브래그 소장의 수제자가 바로 로절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유대계 여성 과학자로, 그녀는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무렵 X선 촬영을 통해 DNA 구조에 한 발 다가서 있었다.

캐번디시에서 왓슨과 숙명적 만남을 한 크릭 역시 슈뢰딩거의 영향을 받은 경우다. 물리학을 전공했던 그는 슈뢰딩거의 영향을 받아 전공을 아예 생물학으로 바꿨다. 1947년 캐번디시에서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한 두 청년은 결국 프랭클린의 X선 촬영 연구 성과와 대서양 건너 또 다른 DNA 연구 경쟁자였던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라이너스 폴링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DNA 구조를 입증해냈다. 평생 분자구조를 연구해온 분자생물학의 권위자 폴링은 세포 내 단백질의 모양이 나선일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알파나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단백질 구조를 발표했고 그의 연구는 왓슨과 크릭의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왓슨의 경우에서 보듯 캐번디시연구소가 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데는 외부 피의 수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연구소 개설 후 거의 20년 넘게 연구원을 모두 케임브리지대학 출신들로만 채워오다가 1895년부터 다른 대학에서 수학한 학생들도 석·박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 연구소 연구원(research student)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문호개방 조치를 취했다. 학문 연구의 실무적 경험이나 경력, 혹은 연구 실적을 갖춘 경우는 비록 학위가 없더라도 받아들이는 전향적 자세를 취한 것이다. 개방을 하자 전 세계, 특히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의 인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개방 4년 후에는 전체 연구원의 거의 절반이 외국에서 온 학생들로 채워졌다. 20대의 미국인 청년 왓슨과 아무런 학위도 없던 30대의 크릭이 캐번디시 최고의 업적을 만들어낸 데는 이러한 배경도 작용했다. 이러한 전통대로 캐번디시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연구원들이 찾아오는 등 국제화돼 있고, 특히 최근에는 동유럽과 아시아 출신 연구원들이 많다.

캐번디시연구소가 성공한 또 다른 이유는 적극적인 산학협동에도 있었다. 연구소 설립 당시만 해도 학문적인 목적의 연구소가 상업회사와 협업을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터부시하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캐번디시연구소는 설립 당시부터 자신들의 연구 실적이 상업화되는 것에 “스릴을 느낀다”고 표방했다. 자신들이 얻은 특허를 회사들에 넘겨주고 그 대가로 연구 자금이나 실험기계를 받는 것이 왜 나쁘냐는 자세를 남들보다 일찍 견지하며 외부로부터 연구소 발전에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이 같은 전통을 ‘지적연계(intellectual engagement)와 상호이득(cross fertilisation)’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이런 식의 개방된 사고는 천재적인 인재들을 모으는 데 큰 힘을 발휘했고, 이들이 타인의 눈치를 안 보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실험을 하게 내버려둠으로써 획기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게 했다. 지금도 히타치, 도시바, 슐럼버그 같은 대기업들이 캐번디시연구소를 후원하고 있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최근에도 천체물리학, 고체물리학, 나노전자학, 바이오물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연구소 출신 연구원들은 영국 내 기업들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캐번디시연구소는 ‘케임브리지 현상(Cambridge Phenomeon)’이란 말도 낳았다.

이는 케임브리지시와 인근 지역에 소규모 첨단기술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특이한 현상을 말한다. 2004년 기준으로 영국 내 벤처캐피털 중 무려 24%(유럽연합 전체의 8%)가 케임브리지 근처에 집중돼 있다. 1993년 초부터 5년 사이에만 1000개가 넘는 하이테크 회사들이 이 지역에 사무실을 차렸다. 특히 컴퓨터 관련 회사가 많아 미국 실리콘밸리와 견주어 ‘실리콘 펜(Silicon Fen)’이라 부르기도 한다. 케임브리지대 자료에 따르면 현재 3500여개의 회사가 몰려 있다고 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유럽에서 처음 지사를 세운 도시도 다름아닌 케임브리지다. 그만큼 케임브리지대학을 중심으로 한 ‘실리콘 펜’ 인재의 높은 수준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캐번디시연구소를 조명할 때 케임브리지대학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국 대학 중 가장 튼튼한 재단을 가진 곳이 케임브리지이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 43억파운드의 기금을 가지고 있어 2위인 옥스퍼드대학보다 무려 6억파운드나 많다. 교수가 6000명이고, 학생이 1만8500명이어서 교수 1명당 학생 비율이 3명밖에 안 된다. 일반 직원 3200명까지 감안하면 거의 학생 2명을 교직원 1명이 뒷바라지하는 셈이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를 포함한 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도 맡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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