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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안 써도 처벌하던 ‘규제 왕국’ 레드테이프 웹사이트 개설하자…
코리안위클리  2014/04/09, 04:38:50   
▲ 영국 정부가 규제개혁에 대한 국민의 제안을 받기 위해 만든 ‘레드테이프 챌린지’ 웹사이트.

내가 겪은 영국의 규제개혁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끝짱 대토론회’에 스코트 와이트먼 주한 영국 대사가 참석해서 영국의 규제개혁 사례를 소개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는 순간 주간조선의 원고청탁을 예상했었다. ‘청탁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이유는 청탁 의도가 분명 ‘영국의 규제는 한국과 달리 합리적이고 간단해서 비즈니스하기가 좋을 것’이라는 데 맞춰져 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내 경험으로는 별로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세상 어디에도 문자 그대로의 이상향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조금씩 낫고 못할 뿐 다 거기가 거기로 비슷하다. 영국 공무원도 다른 나라보다는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천사는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각종 규제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영국 공무원이라고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영어에 ‘만다린(mandarin)’과 ‘레드테이프(red tape)’라는 단어가 있다. 만다린은 거만하고 관료적이던 중국 관리들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비롯되었고, 레드테이프는 불필요한 형식절차를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공문서를 붉은 띠로 묶어두는 옛 정부 관행에서 연유됐다. 영국의 관료제도와 행정편의주의를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영국도 관료주의와 각종 규제가 만만치 않다. 영국은 역사적으로도 ‘규제의 천국’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각 지방과 마을마다 중세 때 시행되던 시대착오적인 골동품 같은 수많은 조례와 규정이 남아 있다. 지금은 사문화되어 적용되지 않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웨일스의 한 마을에서는 일요일에 모자를 쓰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지방에서는 행인이 문을 두드리고 화장실 사용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면 불법이다. 영국 내 어디서든 영국 여왕의 초상화가 들어간 우표를 거꾸로 붙이면 반역죄에 해당한다. 영국의 모든 우표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실루엣이라도 들어가는 상황에서 우표를 잘못 붙이면 반역자가 된다고 하니 영국에는 수많은 반역자들이 매일 생겨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절정을 이룬 영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이 있다. 대기업들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임의로 정한 지방조례를 따르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영국 공무원의 권한은 강력하다. 자신의 권한으로 해줄 수 있는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담당자가 안 해주려고 마음만 먹으면 민원인은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겪은 규제에 얽힌 사연을 풀어 놓으면 각자 책 한 권을 만들 정도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2010년부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자민 연립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규제개혁을 시작했다. 과거 정부들도 시도했지만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캐머런 정부는 악화된 경제 사정을 타개하고 동시에 바닥난 재정 상태를 개선할 수단으로 규제개혁에 매달렸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집권 하반기인 2014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규제개혁의 시동은 정부 내의 각종 규제 개선 위원회와 조직을 통해서 시작되기도 했지만 국민의 참여를 통해서도 개선되고 있다. 법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는 이해 당사자가 제도의 폐단과 불합리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관료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웹사이트가(www.redtapechallenge.cabinetoffice.gov.uk)가 그 국민 제안의 중심이다. 영국 정부의 핵심인 내각사무국(cabinet office)에 속한 이 웹사이트가 영국 정부가 치르고 있는 규제와의 전쟁 본부이고 신문고(申聞鼓)이다.

영국 국민은 이 웹사이트에 규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리고 처리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영국 정부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규제개혁을 국민에게 알리는 도구로 이 웹사이트를 쓰고 있다. ‘레드테이프 챌린지’를 통해 제안되어 개혁이 이루어진 규제개혁이 전체 개혁 성과의 4분의 1을 차지해 금액상으로 3억파운드(5400억원)의 절약효과를 냈다고 이 웹사이트는 전한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참여와 관심이 있을 때 효과를 낸다는 것을 이는 증명한다. ‘레드테이프 챌린지’ 웹 사이트에 따르면 5662개의 규제가 심의 대상이 되어 그중 1142개(20%)가 폐지되었고 1953개(35%)가 개선되었다.

과거 영국 정부가 주도했던 ‘one-in, one-out’에서 더 나아가 ‘one-in, two-out(OITO)’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의 끝장토론에서 스코트 와이트먼 대사가 소개했듯이 규제 하나가 신설되면 그와 관련한 기존 규제 두 개를 없앤다는 뜻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규제개혁을 통해 2013년 12월까지만 해도 12억파운드(2조1600억원)를 절감했다고 영국 정부는 주장한다.

건축 관련 규제개혁을 가장 큰 성과로 영국 정부는 내세운다. 중복되고 혼선을 이루던 건축 관련 100개의 규제를 10개로 줄였다는 것이다. 집을 짓거나 개증축을 할 때 건축법 때문에 겪은 악몽은 영국인 사이에서는 더 이상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누구나 한두 번은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건축법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가정집의 증개축은 ‘뭐 이런 것까지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사소한 것까지 모두 허가 대상이었다. 하루이틀이면 끝날 간단한 공사도 정식 건축사들의 검토와 설계도면이 요구된다. 공사 시작은 물론 중간 단계에서도 담당공무원이 나와서 현장 확인을 한다.

문제는 그 담당자의 현장 확인이 언제 있을지 몰라 공사를 중단한 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단계마다 확인한 공사도 최종 준공허가가 나오기까지는 최소한 석 달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래서 정말 앓느니 죽는다는 말이 영국인 사이에서 나왔다.

이런 복잡하고 혼선을 일으킨 건축 관련 규정을 이번에 과감하게 줄여버렸다. 이번 개혁만으로도 영국 가정은 연간 6000만파운드(1080억원)의 경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개증축하는 한 집당 최소한 500파운드(90만원)의 금전은 물론 돈으로 단순히 환산이 안 되는 값진 시간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공사 지연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의 효과까지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규제개혁의 효과를 영국인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실례가 될 듯하다. 현재 야당인 노동당에 지지도가 밀려 내년 총선에서 재집권이 우려되는 보수당으로서는 이런 효과가 나오는 규제개혁을 통해 국민의 지지도 제고, 경기 활성화, 고용 증대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영국의 규제와 공무원을 한번 풀어 보자. 영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내 경험에 의하면 영국의 법적 규제는 쓸데없이 까다롭고 엄격하고 철저하다. 그에 비해 영국 공무원들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이고 융통성이 있다. 그래서 영국 정부가 지금 결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개혁만 잘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식당에서 술을 팔기 위해서는 주류취급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류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개인 주류취급 면허(personal license)와 영업장 면허(premises license) 두 개를 받아야 한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대형 슈퍼마켓들도 밤 11시 이후에는 주류 판매 구역에 따로 칸막이를 한다. 판매 시간이 지나면 살 수 없도록 관리한다.

개인 주류취급 면허는 고액의 수업료를 내고 반나절 교육을 받고 그 자리에서 필기시험을 쳐 합격해야 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면 안 되고 취객에게는 술 판매를 거절해야 한다는 ‘판매 자세’부터, 손님이 안전을 위협받는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담당자로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까지 교육받는다. (영국 주류법의 재미있는 점은 미성년자라 해도 법적 보호자와 같이 있으면 술 마시는 것을 식당 주인이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긴 스코틀랜드에서는 최근까지 소량이지만 점심시간에 위스키를 학생들에게 먹으라고 권한 초등학교도 있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을 정도니 영국인에게는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영업장 면허도 만만치 않다. 건축사가 그린 설계도면을 제출하면 담당 공무원이 실사를 나와 모든 것을 확인한다. 현장 실사 때는 무엇보다도 비상구 확보와 비상등 설치 같은 비상시 손님의 안전 확보 여부가 주안점 중의 하나이다. 일정 길이 이상의 식당은 입구 반대 방향에 비상구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류 판매 시간도 지켜야 한다. 주류 판매 허가가 완화되기 전까지 밤 11시가 가까워 영국 펍(pub) 카운터에서 울리는 종소리나 바텐더의 ‘마지막 주문(last order)’이라는 고함소리는 주당들에겐 야속한 소리였다. 지금은 지역 상황에 따라 철야 판매도 허락하지만 전에는 예외 없이 밤 11시까지만 주류 판매가 가능해서 그전에 마지막 주문을 해야 했다. 주당들은 카운터로 달려가서 몇 잔의 맥주를 한꺼번에 주문해 와 천천히 마시기도 했지만 일단 분위기는 썰렁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류 판매에 따른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지키려면 식당 주인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라이선스 검사관이 나올 때쯤 되면 이번에는 어떤 지적을 받을지 무섭기만 하다. 그래서 영국에서 주류 판매 관련 규정을 지키기 귀찮은 식당은 ‘당신이 마실 술을 가지고 오세요(BYOD·Bring Your Own Drink)’라는 표지판을 식당 입구에 붙여 놓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 집은 식당 이문이 붙지 않은 당신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영업전략이기도 하다.

식당에 대한 위생검사는 또 얼마나 엄격하고 까다로운지 정기 검사나 불시 점검 때 지적을 받지 않고 넘어가기가 불가능하다. 주방 종업원들의 복장 상태부터 주방 내 바닥 청소는 물론 환풍기의 기름때까지 검사한다. 냉장고나 냉동고 안의 식자재 입고 기일은 필수 점검 사항이다. 식자재 입고 날짜가 외부 포장에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식품 보관 기간도 확인한다. 냉장고와 냉동고 온도 확인은 물론이고 채소의 신선도까지도 그냥 안 넘어간다. 이런 모든 사항을 식당 담당자가 매일 점검 대장에 기재했는지도 확인한다.

▲ 템즈 강변에 위치한 런던 시청

▲ 템즈 강변에 위치한 런던 시청

 
런던 식당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쥐 때문에 일어난다. 런던의 지하는 도저히 파악 안 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쥐들이 노니는 공간이다. 이는 150년도 더 넘은 720㎞의 대형 하수도와 2만1000㎞에 달하는 동네 하수도, 402㎞에 이르는 지하철을 떠올리면 납득이 간다. 런던 지하의 50개에 달하는 사용이 중단된 지하철 역사도 쥐들의 주요 서식처다. 런던 지하를 점령하고 있는 이 쥐들이 하수도를 타고 식당 주방 안으로 먹이를 찾아온다. 런던 식당들은 쥐와의 전쟁을 매일 치른다. 런더너가 핵폭탄보다 더 겁내는 것은 어느 날 런던 지하에 문제가 생겨 쥐들이 한꺼번에 지상으로 몰려 나오는 악몽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위생검사원은 감안하지 않는다. 주방 구석구석 후미진 곳에 검사기구를 들이밀어 꺼낼 때 쥐똥이 한 톨이라도 나오면 비상이 걸린다. 그날은 완벽한 점검을 각오해야 한다. 냉장고를 비롯해 벽에 붙은 가구를 다 들어내고 검사를 치러야 한다. 다른 지적 사항이 나올 경우 당장 영업정지로 들어가지 않고 적절한 개선 기간을 주지만 쥐똥에 관해서는 융통성이 없다. 심하면 그 자리에서 영업정지에 들어가고 전문기관으로부터 방제를 다 했다는 증명이 있기 전까지는 영업을 못한다.

깐깐하고 엄격한 규제와 전혀 다른 면도 겪어 봤다.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영국 공무원들과 관련된 것이다. 내가 관여하다가 최근 운영권을 넘긴 업체에서 내 이름으로 된 주류 판매 허가의 명의 변경을 하지 않아 공무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운영권을 넘겨받은 업체에서는 담당 공무원에게 “명의이전을 하는 중인데 여러 가지 다른 요건의 미비로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을 한 모양이다. 설명을 들은 공무원은 명의이전을 할 때까지 내가 업무에 책임을 진다는 각서를 받아온다는 조건으로 일단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새 업체에서 내게로 각서 요청이 왔는데 남의 일이라 미안하게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상당 기간이 지난 후 놀랍게도 구청 주류면허 담당자가 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한 모양이다. 담당자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내게 각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내 이메일 주소를 묻고 이런 우리의 대화를 메일로 보낼 터이니 동의를 하면 각서를 만들어 자신에게 스캔을 떠서 보내라고 했다.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공무원은 새 업체에 명의이전이 될 때까지 주류 판매를 정지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규정에 맞았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업체가 고의나 악의로 즉시 명의이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정을 이해하면서 기다려 줄 뿐 아니라 직접 내게 전화까지 하면서 독촉을 한 것이다. 이런 영국 공무원의 자세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업체의 선의를 이해해 준 것도 놀랄 만한 융통성이었다.

이런 공무원의 전향적인 자세는 처음 영국에 와서 겪은 주민 주차증과 관련해서도 경험한 바 있다. 식구들이 오기 전 시내 독신자 아파트에 혼자 살 때였다. 차를 구입한 뒤 구청에 주민 전용주차증을 발급받으러 갔다. 담당자 말이 자동차 주소와 명의이전이 안 된 상태라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소와 명의이전은 담당 기관에 서류만 보내면 처리해서 우편으로 보내온다. 하지만 기한이 2주일은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엄청나게 비싼 런던 시내 유료주차장에 주차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망연해 하는 내 얼굴 표정을 살피던 담당자는 제안을 했다. 자동차 등록 서류에 변경 내용을 기재하고 서명해주면 자기가 책임지고 발송할 터이니 그런 조건으로 지금 주차증을 발급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이 서류를 보내면 분명 자동차 등록이 변경될 터이니 발급 요건이 현재는 미비되었지만 며칠 내로 보완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일의 순서를 조금 바꾸는 것이긴 해도 규정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는 게 담당자의 생각이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구한테 욕먹을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민원인의 편리를 생각해 한 제안이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가 영국에서 처음 겪은 공무원의 융통성 있는 업무 자세였다. 당시 한국에서 원리원칙과 규정만 따지던 30년 전의 고압적인 공무원들만 보고 왔던 나로서는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수년 전 런던 중심가 한국 식당을 대상으로 런던의 몇 개 구청이 공동으로 공청회를 한 적이 있다. 주안점은 식당 내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가스 부스터’라 불리는 휴대용 가스버너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손님들 앞에서 불고기나 갈비를 굽고 각종 찌개를 끓이기 위해 한국에서 가지고 온 가스버너가 구청 안전 점검원들에게 지적받은 것이다. 지적 이유는 폭발의 위험 때문이 아니었다. 휴대용 가스버너들이 EU가스 안전마크를 획득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보다는 종업원들의 건강 때문이었다. 휴대용 가스버너는 야외용이라 가스통에서 나온 가스가 완전연소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손님은 일정 시간 지나면 가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장시간 가스에 노출되는 종업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을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냥 사용 중단을 통보하면 그만이었는데 구청들은 공청회를 열어 설명을 하고 식당들과 같이 대책을 협의했다. 그리고는 일정 기간을 주고 개선하라고 했다. 결국 런던 시내 한식당들은 모두 전기그릴이나 도시가스 구이판으로 바꾸었다. 무조건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대책을 같이 마련하고 그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는 점은 놀라웠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겪은 가장 나쁜 경험을 얘기해 보자. 내가 십수년 전에 인수해서 운영하는 식당은 이미 10년 이상 잘 영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 가을 구청의 주방 안전 담당이 점검을 나와서 가스쿠커에 부착되어 가스가 공급되는 파이프가 규정보다 작다고 하면서 전체 교체를 요구했다. 20수년 동안 수많은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항의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파이프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바꾸기로 하고 견적을 받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가정용 파이프 공사비의 딱 3배를 영업용 기술자들이 내놓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다른 업체 두 군데에 더 견적을 받아 봐도 동일했다. 이런 식당 가스파이프는 가스 취급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라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영업용 가스 취급 자격증을 가지고 해당 구청에 등록된 소수의 기술자만 하게 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말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 가격이었다. 구청과 기술자들 간 대단한 짬짜미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영업용 기술자만이 해야 하는 복잡한 일도,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님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액 7200파운드(1300만원)를 들여 수리했다.

그 공사 내역이라는 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3m의 가스파이프 교체와 가스쿠커 몇 개와의 연결부위 부품과 밸브, 마개 등의 교체가 전부였다. 겨우 이틀 작업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인 것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식당 영업에 관계되는 일이라 교체를 하긴 했지만 이제 상황이 진정되었으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레드테이프 챌린지’ 웹사이트에 민원을 올리고 끝까지 파헤쳐보고자 한다. 수십 년을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시간도 주지 않고 교체를 요구했는지, 만일 교체가 안전 규정이 바뀌어서 해야 한다면 간단한 파이프 교체를 굳이 구청에 등록된 소수의 영업장 전문 기술자가 해야만 하는지, 이틀 동안의 간단한 작업에 왜 그렇게 고액을 받아야 하는지를 따지려고 한다. 안 그래도 세금은 오르고(최근 부가세가 17.5%에서 20%로 올랐다) 식자재비, 인건비, 임대료 등이 줄줄이 오르는 판에 식당 업체를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영국 정부를 상대로 따져봐야겠다.

주간조선

글쓴이 권석하

IM컨설팅 대표.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 1980년대 초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유럽 잡지·도서와 미디어 저작권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도서출판 학고재 등의 편집위원. 저서로는 '영국인 재발견(안나푸르나)'.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Watching the English·학고재)’을 번역 출간했다. 영국 국가 공인 관광가이드시험에 합격, 관광가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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