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극에 ‘금녀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사극은 TV 드라마에서 지금껏 여성 작가의 진입을 허용치 않아온 유일한 분야. 장대한 스케일, 까다로운 자료 준비, 여성 작가는 묵직한 사극을 쓰기 힘들다는 편견 등은 높은 장벽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방송사들은 젊은 시청층을 사극에 끌어들이기 위해 여성 작가의 섬세한 감각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극의 ‘상품성’을 확인한 여성 작가들도 다투어 도전장을 내고 있다. ‘퓨전 사극’ ‘멜로 사극’ 등 요즘 주목받는 새로운 사극 조류의 배경엔 바로 이런 ‘여성 작가 사극 붐’이 있다.
◆어떤 작가·작품이 있나
SBS <대망>의 송지나 작가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대망>은 가상의 과거를 배경으로 화려한 무협과 청춘 남녀의 애끓는 사랑을 담아내는 ‘퓨전 사극’. 송작가는 “현대물에 싫증이 나서 사극을 시도했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고 말했다. 6일 방송될 KBS 2TV <장희빈>도 여성 김선영 작가의 펜끝에서 나온다. 궁중 여인들의 권력 다툼보다 장희빈과 숙종의 사랑에 무게를 실어낼 예정. 김작가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진 지금 장희빈을 여전히 ‘요부’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12월2일 방송될 MBC <어사 박문수>도 주로 단막극을 썼던 4년차 여성 작가 유진희씨가 공동집필한다. <허준> 이병훈 PD가 새로 연출할 사극도 <신화>를 썼던 여성 작가 김영현씨 머릿 속에서 구상이 이뤄지고 있다.
◆왜 여성 작가인가
최근 2~3년새 사극이 인기 장르로 자리를 굳히면서 홈·멜로 드라마에 안주해있던 여성 작가들이 눈길을 돌렸다. 30대 신진 작가들은 1년 이상 자료를 수집한 뒤, 앞다퉈 사극 PD들에 기획안을 올리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강덕 상임이사는 “역사 인물을 집중 탐구하며 새 분야를 개척하려는 여성 작가가 늘고 있다”고 했다. 방송사들도 이환경·임충·정하연 등 한 손에 꼽는 사극 작가 풀(Pool)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스케일에 대한 집착보다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허준>과 <여인천하>의 성공이 ‘중진 남성 작가’만 사극을 쓸 수 있다는 편견을 깬 것도 한 몫 했다. <장희빈>의 이영국 PD는 “도전적으로 사극에 뛰어들려는 젊은 여성 작가를 자주 본다”며 “사극 작가의 세대 교체와 여성 작가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극은 남성적 드라마?
1980년대 후반 이후 TV 드라마를 여성 작가들이 주도하면서 드라마들이 가볍고 감각적 경향 일변도로 흐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여성 작가들의 사극 진출 붐이 비슷한 부작용을 되풀이 해서는 곤란하다고 경계한다.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여성 작가들이 TV 사극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남성적 드라마인 역사 드라마의 미덕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영국 대표 한인신문 코리안 위클리(The Korean Weekly) Copyright (c) KBC Ltd. all rights reserved
Email : koweekly@koweekly.co.uk
Cavendish House, Cavendish Avenue, New Malden, Surrey, KT3 6QQ,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