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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정신건강 110 브렉시트에 대해서
코리안위클리  2018/11/21, 08:30:50   
▲ 브렉시트는 현실이 불안한 영국인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구원의 마법으로 여겨진다.

‘정신과 의사가 브렉시트에 대해서 무슨 할말이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는데 당연한 질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이유를 대는 것으로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 듯싶다.
브렉시트가 사회속에서 생격나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개개인이 가지는 두통이나 우울증이나 아니면 조증 또는 정신분열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현상과 연결해서 풀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적어 본다. 이런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가 개개인의 정신적 문제도 조명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해서이다.
왜 영국사람들이(투표를 한 사람은 선거권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제외된다) 영국이 유럽 연방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했을까? 어떤 이들은 이것을 ‘미친짓’ ‘자살행위’라고 원색적인 경고나 비방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을 국가를 살리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칭송하고 울기까지도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유럽 연방을 떠나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때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기도 했다.
브렉시트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이민자 유입을 조절하는 것인데 이는 많은 영국사람들이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 기하 급수적으로 유입되는 외국노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자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다른 나라 사람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아주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몹시 매력적인 설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변에서 브렉시트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유럽연합을 벗어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믿음은 어떤 경우에는 거의 종교처럼 굳은 신념이 되어버려서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면 오히려 싸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 기저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대로 가면 자신들의 운명이 점점 비참해지고 앞으로 별로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불안감이다. 물론 이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로 계속되는 긴축정책과 천문학적인 국가 빚이 이유가 된다. 이러한 불안감은 브렉시트를 민족통일처럼 울부짖는 정치가들의 선동에 엄청난 탄력을 받으면서 급기야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것은 한 국가라는 큰 집단에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종종 환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40대 후반 아주머니가 홧병으로 찾아오셨는데 자식 둘을 키워서 대학을 보내고 나니까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마치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이 평생 식모살이만 시킨 자신의 남편이라는 생각에 원망이 생기셨단다. 일단 그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남편이 하는 말이며 행동이며 모든 것이 싫어지고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지금이라도 이혼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변화할 가능성이 제로이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서 이혼 소송을 했다고 한다. 친정이며 시댁에서는 깜짝 놀라면서 설득을 해 보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도무지 이야기가 안 통해서 대화가 진행이 안된다고 한다.
이 아주머니의 기저에 깔려있는 감정은 자신을 버린 자식들과 남편이 대한 엄청난 분노감이었는데 문제는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기 보다는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 쪽에서 가지고 있는 분노가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었다.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분은 보통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니, 선생님. 그건 제쪽에서 화를 낸게 아니고요 그사람들이 그래서 제가 화가 난거예요.” “왜 자꾸 선생님은 제가 화를 냈다고 하세요? 그건 어쩔 수 없이 화가 난 거예요. 왜 선생님은 제 말을 자꾸 못알아들으실까?”
이런 대화가 몇 번이나 반복된다면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까? 대화가 진행되기 보다는 침묵이 점점 잠식해 올 것이다. 이해보다는 판단이나 판결만이 중요할 뿐이다. 사고가 극단적이고 지엽적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더 밑바닥에는 엄마로서 자신의 역할이 줄어들고 아내로서 자신의 모습도 많이 변해서 갱년기와 함께 이제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어떤 ‘구원’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이 환자 분의 경우에는 ‘이혼’이라는 것이 구원의 손길을 제공했듯이 불안한 영국인에게는 브렉시트가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마법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국은 어떨까? 구원투수가 많이 등장하는 상황일까? 1980년대의 한국 사회는 혼란의 극치였다. 대학 캠퍼스 정문에 탱크가 배치되고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생과 고통이 지금보다는 앞날을 가져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영국의 브렉시트에 해당하는 것이 어쩌면 그 당시의 ‘민주화 항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틀림없이 이 글을 보면서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부분이 바로 비슷한 일면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즉 ‘정말로? 어째서?’라는 호기심보다는 ‘맞다, 틀리다’의 판단이 먼저 앞선다면 이 둘이 비슷하다는 것도 어쩌면 인정해야 된다. 물론 그때 시기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80년대에 대한민국이 이룩한 많은 값진 업적들 중의 하나가 민주화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도 살짝 드려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는 민주화가 되고 나서 국민 소득이 무척 증가되었는데 거기에 반해서 계층간 소득격차는 더욱 더 늘어나고 한가지 흥미 있는 건 자살율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못사는 것이 민주화가 안되어서, 저기 윗 사람들이 다 해 먹어서,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한가지 아이러니는 지금의 삶이 더 평준화 되고 행복해졌는지는 꼭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팍팍한 삶이 적폐 때문에 그렇다며 그 청산에 무척 열을 내고 있는 중인데 그것 또한 브렉시트의 정신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비난 보다는 용서, 자기가 믿는 신(God)이 진짜 신이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이런 극단적 사고는 아마도 계속해서 그 생명력을 얻어서 독버섯처럼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나 여러 조직속에서 여전히 끈질기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글쓴이 우 이 혁
wooieehyok@msn.com

약력 : 한국 신경정신과 전문의
영국 정신과 전문의 (소아, 청소년, 성인)
정신분석 정신치료사
현재 NHS 소아 청소년 정신과 컨설턴트
영국 왕립 정신 의학회 전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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