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7일 양일간 열렸던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EU예산안 협상 타결에 실패하고, 주요 지도자들간의 비난전이 이어지면서 EU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BBC>방송은 18일 정상들간의 설전을 두고 “EU 사상 최악의 파열음”이라고 전했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과 <이코노미스트>는 각각 ‘EU의 리더십 공백’, ‘유럽의 정체성 위기 심화’를 경고했다.
EU 25개 회원국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17일 밤 늦게까지 2007~13년 예산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타결에 실패했다. 진원지는 유럽의 주요 지도국인 영국과 프랑스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프랑스 등이 폐지를 요구해온 예산 분담금 환급 문제에 대해, 프랑스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농업보조금을 삭감하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네델란드와 스웨덴도 자국 분담금이 너무 크다며 협상안을 거부했고, 핀란드와 스페인도 뒤이어 반대표를 던졌다.
문제는 예산안 부결 자체보다 그 전후 과정에서 나타난 EU지도자들간의 내분이었다. 정상들은 통합에 필요한 연대와 희생 정신 대신 국내 정치적 고려와 국익을 앞세운 끝에 각기 분노와 적개심만 안고 돌아갔다고 <뉴욕타임스>는 19일 전했다. 오히려 새로 가입한 동구 10개국이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이 받게 될 보조금 혜택을 일부 양보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놨으나 주요국 정상들에게서 양보와 타협의 미덕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EU 지도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의장국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유럽이 “깊은 위기”로 빠져들었다고 말했고, 주제 마누엘 바루소 EU집행위원회 위원장도 유럽이 “영구적인 위기와 마비”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산안 협상의 결렬로 인해 차기 EU의장국으로 예정돼 있는 영국 블레어 총리의 임무 수행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난항을 겪고 있는 EU헌법 비준 문제뿐만 아니라 터키의 EU 가입 문제 등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회원국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레어 총리는 (예산) 합의안을 거부함으로써 유럽 지도자로서 신뢰를 잃을지도 모르는 도박을 벌였다”고 평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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