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의 문턱에서
새해가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희망찬 계획과 목표를 세웁니다. 영국에 사는 우리 모두도 예외는 아닙니다. 각 가정마다, 기업마다, 교회마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새해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특히 크리스천으로서, 과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일까요?
삶의 지혜를 성경에서 찾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새해를 맞을 때마다 당장 무엇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을 줍니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것, 부족했던 것을 올해는 반드시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를 몰아세우곤 합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 하는 심정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때로 자녀의 귀중한 일생을 그르치듯, 우리의 조급한 계획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신년의 본질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는 그 삶의 힌트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필요할 때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이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는 우리가 그토록 회복하기를 바라는 ‘초대교회’가 태동하려던 매우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숱한 핍박과 고난을 겪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자 기회를 놓칠세라 질문합니다.
“주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시기적절하고 지혜로운 질문처럼 보였습니다. 드디어 꿈꾸던 회복의 때가 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기대를 뛰어넘는 대답을 주십니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요.”
그것은 너희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선언입니다. 맞습니다. 세상 일은 내 계획과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최종적인 결정과 시간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계획이 아니라 만남으로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전혀 다른 차원의 시작을 제시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나의 증인이 되리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정치적, 환경적 ‘계획’에 몰두했지만,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계획이 아니라 ‘만남’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성령님과의 깊은 관계로 한 해를 열라는 뜻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은 절대적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궤적이 달라집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일생이 달라지는 이유는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지식을 넘어선 ‘경험’을 선사하며, 그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계획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이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구조’입니다. 성경은 이를‘증인’이라고 부릅니다. 증인은 책에서 읽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법정의 증인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사건을 진술하듯, 우리 인생의 법정에서도 필요한 것은 신앙적 지식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실제적인 경험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계획과 목표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펴고, 목표를 적고, 달성 전략을 세우는 데 익숙합니다.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먼저 ‘만남’으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시작은 성령님을 만나는 것이며, 오늘 우리 삶의 시작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다이어리 첫 장에는 어떤 목표가 적혀 있습니까? 이제 그 펜을 잠시 내려놓고 물어봅시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누구와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시작하시렵니까?”
계획보다 깊은 ‘만남’이 여러분의 2026년을 가득 채우시길 소망합니다.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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