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21:21-22
1. 성공을 신화로 만드는 사회 속에서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성공은 하나의 결과나 선택지가 아니라 ‘의심할 수 없는 신화(myth)’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기준, 삶의 의미를 정당화하는 최종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은 성공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다고 압박하며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성공은 추상적 개념 - 느끼는 것이 아니라 측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수치화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의되고 증명됩니다. 연봉, 자산, 아파트 평수, 외제차, 브랜드, 대학 , 직장, 팔로워 수, 알고리즘 속 노출 빈도 등.
이때 중요한 것은 절대적 액수가 아니라 상대적 위치, “얼마를 버는가”보다, “또래 대비 얼마나 버는가”가 기준이 됩니다. 충분함(sufficiency)이 아니라 비교우위(relative advantage) 즉, 남보다 앞선 위치로 정의됩니다.
이 구조에서 눈부신 성취 앞에서, 영혼의 깊이는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성공이 명품 브랜드, 신앙은 세컨핸드 숍이 되어버립니다.
2. 사랑을 물으시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은 성취도 결과도 가능성도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전혀 다른 질문을 준비하고 계셨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얼마나 성공했었느냐? 얼마나 성공하고 있느냐?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을 물으십니다!
성취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지만 사랑은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성취는 비교, 경쟁, 마침내 교만을 낳지만 사랑은 화해와 헌신, 겸손을 낳습니다.
성취는 인간을 줄 세우지만 사랑은 인간을 하나님께 이끕니다. 그래서 주님은 묻지 않으십니다.
“무엇을 이루었느냐?”
대신 주님은 조용히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3. 고장난 나침반처럼 흔들리는 사명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내 양을 돌보라”는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부르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곁에 있던 요한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르심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전에 베드로의 마음에는 비교가 스며들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는 늘 보이지 않는 긴장이 흘렀는데 그것은 박해가 아니라 비교였고 위험이 아니라 서열이었습니다.
누가 더 큰 자인가? 누가 더 주님의 곁에 가까운가? 라는 질문은 여러 번 모습을 바꾸어 그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길 위나 집 안에서 심지어 마지막 식탁 위에서도 말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은밀한 청탁을 올렸을 때 그것은 한 가정의 야망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의 마음속에 숨 쉬고 있던 욕망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비교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 자리를 가늠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선은 조금씩 주님에게서 멀어졌고 사명은 고장난 나침반처럼 흔들렸습니다. 비교는 사랑을 흐리게 하고 부르심을 경쟁으로 바꾸고 십자가의 길을 왕좌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부활의 주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조용한 목소리로 답을 내려주십니다.
“그를 내가 올 때까지 머물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4. 인생은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요한복음 21장의 두 인물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한 사람은 뜨겁게 살다 일찍 순교합니다. 베드로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오래 살아 사랑과 이야기를 남깁니다. 요한입니다. 둘중 누가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까요? 베드로와 요한,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삶을 완성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응답한 삶 앞에서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다같이 출발해서 다같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닙니다. 각자 도착해야 하는 결승선이 다르고 출전해야 할 종목이 다 다르니까요. 설령 같은 경기라할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활이 다르고 또한 같은 역활이라 할지라도 다른 속도, 다른 시점, 다른 마지막을 주십니다.
어떤 삶은 빠르게 가고, 어떤 삶은 깊게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앞서가고 어떤 사람은 오래 남아 마지막을 지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리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비교를 ‘자아의 적(Enemy of Self)’이라 말하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할 때 진정한 자아의 가능성(eigen possibility)은 억압된다고 했습니다.
“내적 기준에 따라 자기 삶을 조직하는 인간(inner-directed personality)”이 아닌 “타인과 사회적 평가를 중심으로 삶을 조직하는 인간(other-directed personality)” 으로 살아가면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설령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도 내적 평화는 얻기 어렵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영원히 ‘덜 가진 존재’가 되어 결핍감 속에서 살게 됩니다.
5. 결과가 아닌 과정에 몰입하다.
“그가 어떻게 되든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2)
언뜻 들으면, ‘냉정한 단절’ 처럼 느껴지는 이 말씀은 사실 남의 인생을 보느라고 나의 인생을 놓치지 말라는 방향 교정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비교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따뜻한 인도입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자극’이 아닌‘나를 소모시키는 비교 강박’ 으로부터 나를 해방, 구원시키는 전환점의 제공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베드로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비교 강박’의 쇠사슬을 끊어내십니다.
이후 베드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중심으로 삶을 ‘재설계’합니다.
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몰입하는 삶으로 살아갔습니다. 수천 명이 모여 웅성대던 광장에서도 길 위에서 마주친 이름 없는 한 영혼 앞에서도 혼신을 다해 예수님만 전했습니다. 지나간 자리에는 하나님의 발자국만 남았습니다.
6. 굿바이, ‘비교 강박’
모든 인생은 순간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겪습니다. 비교와 조급함 속에서 마음은 흔들리고 때로는 부러워하고 때로는 분노하다가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조용히 부르십니다.
세상의 영광에서, 성취의 중독에서, 비교의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길로 걸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삶이란 남보다 앞서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내 자리를 지키며 오늘 맡겨진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나로 살겠습니다. 조용히, 흔들림 없이, 끝까지. 아멘.”
이제, 자아의 적: 비교강박, 그 적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Goodbye! 비교 강박.
조성영 목사
런던글로리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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