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손끝에서 부서지고 믿었던 길은 막힌 듯합니다.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보지만 먼지처럼 사라지고 남은 것은 긴 한숨과 가슴속 텅 빈 메아리!
실망은 삶의 일부입니다.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마주할 때 노력에도 풀리지 않는 일 앞에서 자신이나 믿었던 타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때 혹은 변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망을 경험합니다. 삶에 공존하는 기대와 현실, 이 간극의 차이 앞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실망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실망은 정말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실망은 조용히 시작되어 유리창 위로 천천히 번져가는 금처럼 서서히 스며들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합니다. 저무는 석양처럼 마음을 물들이다 잿빛 어둠과 싸늘한 공기만을 남겨놓습니다. 차디찬 얼음으로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희망의 꽃봉오리를 틔우지 못하게 하는 한겨울의 서리처럼 잔인합니다. 남겨진 깊은 상처, 패여진 마음,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자존감,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신뢰, 실망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감정들입니다.
실망은 외면한다고 잊혀지거나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실망을 밀어내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실망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합니다. 억누르는 것이 견디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고 버티어 봅니다.
그러나 실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더 깊은 곳에 스며들어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밀어낼수록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억누를수록 내면 깊숙이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는 무거운 구름처럼 하늘에 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비가 되어 내립니다.
체념과 냉소, 허무와 깊은 불안….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와 우리의 삶에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날려보내려 해도 마음의 한편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아 놓고는 그 검은 그림자를 더욱 짙어지게 합니다. 결국,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실망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할 감정입니다.
“우리의 실망은 더 높은 소망을 가리키는 신호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망을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실망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소망을 발견하라는 초대입니다.
실망을 단순한 고통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함으로 그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망을 경험할 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그리고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실망은 끝이 아니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자 여기, 사건, 상황, 사람으로 인하여 몹시도 슬퍼하고 실망했지만 그 아픔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 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과 백성을 잇는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에도 실망의 순간은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은 깊은 실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가 느낀 실망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실망을 마주하는 방법
실망을 마주할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사무엘은 슬픔과 분노 속에서 마음 가득히 밀려온 실망감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실망을 품은 채 홀로 고통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어쩌면 후대의 다윗에게 시편 62:8절의 신앙을 가르쳐 준 사람이 사무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62:8)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 (삼상8:7).”
“…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삼상9:16)”
이 말씀들은 사무엘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그의 사명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운 사울이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타락했을 때 사무엘은 다시 깊은 실망과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음이니라 (사무엘상 16:1)”
사무엘이 실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계획을,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을 보여주셨습니다.
조성영 목사
글로리아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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